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한국의 현실, 소리 없는 붕괴...추락하는 중산층에 날개는 없다

배셰태 2015. 9. 28. 12:48

[모래시계 중산층]추락하는 중산층에 날개는 없다

한겨레 2015.09.24(목) 이완 기자

http://m.media.daum.net/m/media/economic/newsview/2015092413200678521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0377.html

 

계층 이동에 성공한 줄 알았지만 어느새 빠르게 밀려난 중산층 3인 인터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주저앉아 다시 일어서기 힘든 한국의 현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분석한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는 한국 중산층이 붕괴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된 '소리 없는 붕괴'는 이석균(45·가명)씨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겉보기에 그는 어엿한 중산층이지만, 그 속에선 가족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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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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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산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불과 4년 전 희망퇴직을 택했던 결심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이씨는 이제 와선 헷갈린다. 당시에는 현명한 결심이라 여겼지만, 이제 그는 가정이 해체될까 걱정한다. "빚이 점점 늘어나니까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부부끼리 잘 안 해요. 스트레스 받는 걸 서로 피하려 하니까. 이러다 가정이 파탄 나면 (비싼 주거비를 감당해가며 자녀 교육 환경이 좋은) 이곳으로 안 오느니만 못한 거죠."

 

그는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불안하죠. 예전에 들었던 연금저축, 주식 같은 거 전부 깼고, 지금 버는 돈도 빚 갚는 데 쓰고 있으니까.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50대들이 산속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나도 산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가끔 불안해져요." 그는 '불안'이라는 단어를 자꾸 꺼냈다.

 

한국의 많은 40대가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나마 편의점과 매점을 운영하는 이씨의 형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김정민(44·가명)씨에겐 그런 유의 자산이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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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문제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교육비

 

그래도 그의 수입은 반토막이 난 상태다. 사무관리직으로서 그의 마지막 연봉은 5600만원이었다. 지금은 3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생활비는 예전에 비하면 아껴쓰죠. 주말에 외식하던 것도 하지 않고, 올해는 휴가 때 어디 가지 않았어요. 아껴쓰다보니 거기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김씨의 생활이 빠듯한 이유는 주거비와 교육비 때문이다. 아파트를 살 때 받은 대출은 김씨가 부모님을 돕는 과정에서 더 늘어났다. 김씨는 월 55만원씩 갚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안심전환대출로 바꿔서 55만원은 그대로인데 원금까지 갚아나가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4학년인 아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월 70만~80만원이다. 아이들은 태권도장과 드럼학원, 미술학원을 다니고 학습지를 풀고 있다. 아들은 드럼을 배우고 싶어 했고,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학교 등 공교육에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팍팍한 살림에도 김씨가 부담해야 할 몫이 됐다. 주거비와 교육비만 합쳐도 김씨 수입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약사 보조로 일하는 아내가 월 110만원 정도를 벌자, 수입은 지출과 비슷해졌다.

 

신광영 교수는 한국 사회의 임금 문제를 논할 때 빠뜨리기 쉬운 게 교육비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안 쓰는 지출이 있다는 것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게 교육비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사교육비 비율이 가장 높다. 공적 방식으로 교육을 해결하면 중산층이 누리는 안정된 삶, 높은 삶의 질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그런 교육비까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박기준(50·가명)씨도 "불안하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 강남의 한 고층 빌딩에 자신만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는 중간계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직장인의 꽃'이라는 임원 직함도 지난해에 달았다. 그에겐 연봉 1억8천만원과 자동차가 따랐다.

 

3년 전까지 맞벌이를 한 아내와 함께 2009년 서울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42평 아파트로 늘렸다. 집을 살 때 받은 대출은 다 갚았다. 두 아이에게 드는 사교육비 170만원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뿐만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프로그램도 듣고 있다.

 

박씨의 삶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꿈일지 모른다. 물려받은 재산이 특별히 없더라도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가고, 대학 졸업 뒤 열심히 일해 임원까지 됐다. 그는 출근하기 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건강도 다진다.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매달 250만원을 저축한다. 그런 그는 왜 불안할까.

 

연봉 1억8천만원 임원, 그도 불안하다

 

"주위 친구 10명 가운데 두세 명만 지금 직장을 다녀요. 그들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항상 불안해하죠. 저도 언젠가 퇴사를 하면 아이들을 대학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돈을 벌면서 부담하는 것과 돈을 벌지 않으면서 부담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을 부양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씨 자신은 20여 년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에게 스스로 중산층으로 여기냐고 물었다.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해요." 상류층은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상류층?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장 정도 돼야 상류층이죠."

 

모두가 몸부림이다. 중산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무너지고 있는데, 중산층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은 도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