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人文學 리포트] 청춘이 지나간 자리에도 봄은 온다
매일경제 2015.05.15(금) 이채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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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극장 스크린을 점령한 가운데, 들꽃 같은 영화 하나가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는 귀여운 영화지만 주인공은 아이들이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영화에서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라는 호칭보다 `금님`(윤여정 분)과 `성칠`(박근형 분)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호명된다.
성칠이 금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질문이 "이름이 뭐요?"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대체로 노인들을 이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일 뿐이다.
우리는 노인들을 이름을 잊은 존재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이나 로맨스는 가당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수상회`에서 성칠과 금님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러한 편견을 무색하게 한다. 완고하고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성칠은 소녀 같은 천진난만함을 여전히 간직한 금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에 감춰져 있던 섬세한 감성들을 끄집어낸다. 레스토랑에 미리 가서 주문과 결제방법까지 예행연습하는 모습은 일본 영화 `전차남`에서 첫 데이트를 앞두고 미리 연습해보는 젊은 남자의 설렘과 다르지 않다. 동네 사람들 모두 성칠의 데이트를 응원하는 모습도 유쾌하고 따뜻하다. 전화해도 되느냐는 금님의 말 한마디에 전화기를 베개 옆에 놓고 자는 성칠의 모습은 기다리는 것이 있음이 행복한 일임을 새삼 보여준다. 성칠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환하게 웃는 금님을 보면서 딸 민정은 걱정하지만 "우리 나이엔 이런 게 다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라는 금님의 말은 황혼의 로맨스가 왜 특별한지 깨닫게 한다.
<중략>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과 가족이 확장되어 내 아이만 챙기지 않고 내 가족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선택 불가능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혈연중심 가족주의에 매몰될 때 분명 불행해지는 사람이 있다. 금님은 화단에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을 보고 반색하며 성칠에게 그 꽃이 `막핀 꽃`이라고 가르쳐준다. `막핀 꽃`은 가을에 다시 피어난 봄꽃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인생의 봄인 청춘이 지나갔어도 봄날은 다시 올 수 있다. 남은 날은 적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소중한 것이다. 소소한 행복 하나까지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이다. 금님과 성칠이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살아 있는 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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