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한 기업의 R&D가 온 나라를 먹여 살린다
조선일보 2015.05.09(토) 윤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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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국제경제학 3대 권위자' 엘하난 헬프먼 하버드대 교수의 조언
올해 초 국제통화기금(IMF)은 수출 제조업 중심의 한국식 경제 모델이 향후 성장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의 내수는 여전히 저조하고, 물가상승률은 낮으며, 대외 충격에 노출돼 있는 데다, 비(非)제조업 분야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제조업 수출에 대한 성장 의존도가 높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최근 "한국 경제가 저(低)성장·저물가·저투자·저소비 같은 패턴을 밟으며 20년 전 일본의 장기 불황 초입기를 닮아가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국내총생산(GDP)에서 투자 비중이 줄어들었고, 국가 채무가 늘어났으며, 물량 위주의 수출에 따라 수출 채산성이 악화됐다는 점을 그 징후로 꼽았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1980~1990년대 연평균 9%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성장률이 5%대로 떨어졌다. 2011년 이후에는 연평균 성장률이 2~3%대로 하락해 세계 평균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한국이 정말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이라면 이를 타개할 방법은 있을까. 성장의 동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지난달 연세대를 SK 석좌교수 자격으로 방문한 엘하난 헬프먼(Helpman·69)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답은 결국 연구·개발(R&D)을 통한 혁신뿐"이라며 "특히 R&D에 투자한다면 그것은 제조업이지, 서비스업에서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도, 수출 중심의 몸집 불리기도,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길러내는 직업교육도 모두 성장을 이끌어내는 효율적인 대책은 아니며, 특히 서비스업 분야를 키운다며 서비스업에서 R&D를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헬프먼 교수는 폴 크루그먼(Krugman) 프린스턴대 교수, 진 그로스먼(Grossman)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국제경제학 분야의 3대 권위자로 평가 받는다. 크루그먼 교수는 헬프먼 교수에 대해 "나에게 전문가로서의 성실성(professional integrity)과 학문적 엄격함(intellectual discipline)이 무엇인지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에 앞서 총재직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를 설득하기 위해 이스라엘 총리가 직접 미국을 찾았지만, 학문 연구를 위해 학교에 남기로 해 화제가 됐다.
헬프먼 교수는 폴 로머(Romer) 뉴욕대 교수와 함께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을 정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생적 성장 이론이란 경제성장에서 기술을 미지의 외부 요인(외생 변수)으로 간주하던 통설을 깨고, R&D와 같은 의도적 노력을 통해 축적된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기술 혁신으로 한 국가가 장기적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R&D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 상식적인 해답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R&D 투자가 낮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R&D'란 것인가요?
"R&D는 기본적으로 'R&D 확산 효과(R&D spillover· 한 국가, 지역, 기업의 연구가 다른 국가, 지역,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를 낳습니다. R&D에서 나온 결과물이 해당 분야에만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산업과 인접한 다른 분야에도 혜택을 불러온다는 겁니다. 기업이 R&D를 하게 되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 결과물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새로운 제품'입니다. 삼성이 R&D 에 힘쓴 결과 새 스마트폰이 개발되는 것이 대표적이죠. 삼성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은 사용자들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을, 연관 산업군에는 새로운 혁신의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새 스마트폰의 성능을 활용할 수 있는 새 프로그램(앱)이 개발되고, 여기서 다른 기업들도 돈을 벌 수 있죠.
둘째는 '지식'입니다. 여기서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특허'가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지식을 뜻합니다. 특허로 보호받지 않는 지식은 경쟁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고, 여기에 다른 지식을 합쳐 새로운 지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홀로는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기업이나 국가도 지식을 자유롭게 활용해 혁신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지식에 기반한 혁신은 국가의 경제 생산성을 높입니다."
―제품을 개발하는 R&D와 지식을 만들어내는 R&D는 때때로 그 형태가 다릅니다. 어떤 형식의 R&D를 장려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중략>
―실제로 한국 정부도 외국 기업의 R&D 센터 등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략>
―경제성장세가 둔화하면서 한국에서는 이대로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한 채 주저앉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 국가의 소득수준이 매우 낮다면 일단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제조업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서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도시에 거주하게 합니다. 충분한 노동력이 공급되면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를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돈을 법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해 모든 국가가 겪어온 성장 과정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을 거듭해 점점 복잡해진다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바로 생산성 향상입니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처럼 해외 기술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적으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려면 결국 R&D에 투자를 해야만 하는 겁니다. 현재 한국은 이 단계에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까지 해외 기술에 의존해 성공을 거듭한 나라일수록 새로운 R&D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관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지금까지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제대로 된 기술만 받아들이면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중국도 경제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이렇게 '중진국 함정'에 빠질 경우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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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하난 헬프먼 하버드대 교수는 연세대 상경대 창립 100주년 기념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은 거듭 경제가 발전하면서 복잡해진 상태이며, 여기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R&D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고운호 객원기자
R&D는 제조업에서, 확산은 서비스업에서
<중략>
―그러나 서비스 분야에 직접 R&D 투자를 해서 안 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중략>
―그렇다면 어떻게 제조업에서 서비스 분야로 R&D 성과를 확산시킬 수 있을까요?
"문제는 '장애물'입니다. 예컨대 의료 서비스산업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의사나 간호사 등 종사자들이 컴퓨터 기반의 시스템을 원하지 않았었다는 점입니다. 혁신적인 컴퓨터 체계가 잘 정착하려면 의사들이 직접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새로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는 불편함이나 심리적인 거부 반응 때문에 정착이 쉽지 않았습니다.
늘 사람이 장애물입니다. 새로운 혁신 기술이 나타나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제대로 활성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많습니다. 결국에는 이런 장애물을 어떻게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하는지가 확산 전략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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