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혁명…무너지는 ‘9 to 6’
한국경제 2015.05.04(월) 이정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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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출근 전쟁’이 앞으로는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9 투(to) 6’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표준 근무시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13일부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율 출퇴근제’를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국내 대기업들은 물론 행정자치부와 같은 공공 기관까지 유연 근무제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업무 시간의 변화를 넘어 국내 기업들의 조직 문화가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과 삶의 균형’과 ‘높은 연봉’. 이 둘 중에서 직장인들이 더욱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2014년 11월 글로벌 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링크트인은 씨티그룹과 함께 이에 관한 재미있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1040명의 링크트인 회원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무려 64%가 ‘10%의 급여 인상’ 대신 ‘업무 시간의 자유’를 선택했다. 기업들이 업무 방식에서 ‘약간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의 만족도나 효율성을 그만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하는 이유다.
텅 빈 금요일 오후, 삼성전자의 달라진 풍경
“금요일 오후 2시쯤 되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주말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고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뜻하는 신조어)을 즐기기도 하고요.”
삼성전자 지원 부서에 근무 중인 5년 차 직장인 황모 씨는 자율 출퇴근제 시행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금요일’을 꼽았다. 삼성전자에서 지난 4월 13일부터 전면 시행하고 있는 자율 출퇴근제는 몇 가지 요건만 충족되면 직원들이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 조건이란 것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주당 40시간, 주 5일, 하루 최소 시간만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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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인사담당 관계자는 “자율 출퇴근제는 궁극적으로 ‘스마트 워크’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임직원들에게도 수시로 이 제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도를 높이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기 때문에 시행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실제로 2012년 3월부터 3년간 연구·개발(R&D)과 디자인 직군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하면서 이 제도를 보완해 왔다. 그보다 앞선 2009년부터는 임직원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 중 원하는 때 출근해 근무할 수 있는 자율 출근제를 시행했던 바 있다. 이미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 이와 같은 유연 근무제 시스템이 낯설지 않은 셈이다. 인사담당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시장 환경이 직원들의 절대적인 ‘근무 양’보다 업무 집중도나 효율성 등 ‘근무의 질’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로 변했다”며 “직원들이 개인 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하면 창의력을 높이는 데도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향후 해외 사업장에도 이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 등 다른 전자 계열사도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명칭은 제각각…핵심은 ‘스마트 워크’
삼성전자의 자율 출퇴근제를 계기로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인 국내 대기업들 역시 주목받고 있다. 유연 근무제나 책임 근무제 등 명칭은 제각각이지만 제도를 시행하는 목적은 같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보다 유연한 조직 문화를 통해 ‘스마트 워크’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네이버·LG그룹·한화그룹·SK그룹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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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대기업을 넘어 중소기업과 공기업에도 자율 출퇴근제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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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행정자치부에서도 4월 20일부터 자율 출퇴근제를 시범 실시 중이다. 행자부에 근무 중인 공무원은 본인의 담당 업무 등을 고려해 하루 4~12시간, 주 5일, 주당 40시간 근무라는 세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행자부는 자율 출퇴근제를 다른 중앙 부처와 지자체에도 적극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직원의 행복이 회사의 경쟁력
‘퇴근할 때 눈치 보지 말고 당당히 퇴근할 것’, ‘당신 삶이 먼저이니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말 것’. 소프트웨어 업체인 제니퍼소프트의 업무 규칙 중 하나다. 중소업체지만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 회사는 주당 35시간만 근무하면 출퇴근 시간에 제약이 없다. 이처럼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율 출퇴근제 확산에 동참하고 있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직원들의 ‘칼퇴근’을 어렵게 만드는 눈치 문화를 없애는 게 먼저란 얘기다.
정경식 LG생활건강 조직문화팀장은 “단순히 출퇴근 시간만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조직 문화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며 “보고 시스템이나 회의 문화 등 전반적인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LG생활건강의 근무시간 원칙에 따르면 모든 임직원이 공통적으로 근무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회의는 모두 이 시간 내에 이뤄진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모든 보고서는 1페이지 이내로 작성하는 제도 또한 시행 중이다. 이는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보고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을 쏟는 것은 ‘임원들의 인식 개선’이다. 그는 “국내 기업 문화는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충성스럽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직원들에게 아무리 ‘야근하지 마라’고 외쳐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는데 용기 있게 사무실을 떠날 수 있는 직원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LG생활건강만 하더라도 유연 근무제를 실시한 지 10년이나 됐지만 모니터링을 실시하며 사후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이는 네이버 또한 마찬가지다. 네이버 홍보 담당자는 “책임 근무 제도는 글로벌 모바일 시대 위기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빠르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큰 그림에서 시행된 제도 중 하나”라며 “수직적이고 딱딱한 조직 문화를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로 바꿔야 기업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조치”라고 말했다. 그만큼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의 하나로 조직 문화 개선이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본부제를 폐지하고 몸집을 줄인 ‘셀 조직’을 확대했다. 또한 수직적인 직급을 없앴고 인사·총무·복리후생 과정에서 결재의 70%가 본인 전결로 이뤄지는 ‘결재의 본인 전결화’를 운영하는 등 다방면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네이버 인사담당 관계자는 “책임 근무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에 앞서 지난해부터 약 4개월간 시범 운영을 거쳤다”며 “그 결과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고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직원들의 ‘업무 성과에 대한 책임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기업 정보 전문 업체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조직 문화는 기업의 매출이나 성과로 직결되는 부분이 아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직원들의 ‘개인적 행복’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공감대가 국내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문화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업체인 만큼 향후에는 이와 같은 자율 출퇴근제가 전반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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