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지금은 ‘청년시대’① / 조계완
한겨레 2015.04.05(일)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685528.html?recopick=5
<중략>
산업화시대에 우리가 노동문제를 “개인적·집단적 절망과 고뇌”로 목도했다면, 똑같은 절망의 얼굴, 고뇌의 무게로 지금 ‘청년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밥집에서도, 올해 들어 짧고 길게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전직 기획재정부 장관, 대기업 부사장, 은행장, 민간경제연구소장, 어느 사모펀드 대표까지 대화 중에 묻지 않아도 ‘청년’을 말했다. 분별없는 젊음에 대한 기성세대의 충고도, 흘러간 옛노래 같은 패기와 격정의 청년예찬도 아니다. 돈·주택뿐 아니라 일자리가 하나의 ‘자산’이 된 시대, 암울한 일자리에 “쓰러져가는”(사모펀드 대표) 청년 얘기다. 봄꽃 아래에서도 다들 우울한 어조로 청년을 걱정할 정도다. 바야흐로 가히 청년시대다.
생산(경제성장)·내수의 침체, 대기업 갑질, 재벌기업 경영승계, 정치세계의 대립·갈등까지도 “삶의 중심 이슈”라고 제각각 유효성을 주장하기를 그치고, ‘청년’ 앞에 무력하게 휩쓸려가는 형국이라면 과장일까? 그런 점에서 ‘청년시대’는 역설적으로 청년이 기이하게 물구나무선 우리 시대의 사회경제적 표현이다.
<중략>
만연한 청년실업엔 정치와 경제를 담당하는 집단·세력의 어떠한 진영논리도 표면적으로는 개입돼 있지 않다. 진영을 불문하고 정치·경제·사회 각 영역이 자기 일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열패감 속에 도서관 한구석에 앉아 있는 청년들은 이런 ‘기성’ 조직에 준열한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전통적인 ‘생산’보다는 자긍심을 갖고 일할 청년 일자리 ‘배분’이 더 호소력 있는 과제로 등장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과는 거꾸로 위험한 것은 사상이 아니라 기득권이다. ‘물가당국’ 한국은행도, 경제성장 문제에 집착해온 직업 경제학자 논객도 학설을 넘어 차분하게 ‘고용의 도덕성’에 침잠해야 할 때다.
■[한겨레 프리즘] 지금은 ‘청년시대’② / 조계완
한겨레 2015.05.03(일)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689554.html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아낀 비용으로 청년을 고용하면 기업에 손해가 나지 않도록 재정을 지원해 주겠다.” 기획재정부가 요즘 내놓은 청년실업 대책이다. 인센티브를 동원해 개별 기업의 행동을 청년고용 쪽으로 유도하겠다는 심산이다. 사실 청년고용은 외피일 뿐이고 목적은 임금피크제 확산에 있다는 심증이 짙은데, 상을 주든 벌을 주든 “경제주체는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정책이다.
한 해 2550만명(2015년 3월 취업자)이 창출해내는 총부가가치 1485조원(2014년)의 생산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어두운 고용’의 젊은이들이 한국 경제를 덮치면서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청년실업은 시장논리를 거스르는 ‘사회적’ 접근의 대응을 도모하지 않으면 암울한 나날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풍부하다는 건 삶의 경륜이 가르치는 바다. 청년일자리 함수는 온갖 변수와 요인이 개입·관통하는 고차방정식이다. 몇 가지로 분해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저성장 기조와 각종 경제정책, 노동절약적 숙련편향 산업구조라는 기술적 요인, 피하기 어려운 세계화 조류, 노동조합 같은 제도적 요인들이 다양한 층위에 뒤엉키며 중첩돼 있다. 역설적이게도 기업이 고용을 미룬다고 발표하면 즉각 주가가 오를 정도로 기이한 경제에 우리는 살고 있다.
<중략>
자본주의 경제는 일정한 성장을 성취한 단계에 들어서면 경제보다 ‘사회’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청년들이 통과하고 있는 불임의 계절은 국내총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생산 손실’을 넘어 마음에 깊게 그어진 사회적 상처를 남긴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일축해버리는 빈곤한 대책의 바탕엔 사회적 처방의 부재가 깔려 있다. “오직 성장만이 근본 대책이다.” 자원 재분배를 통해 시장을 교정하는 제도를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수립·실행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내뱉는 이 고약한 말도 청년에겐 아무런 위안도 될 수 없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고시 준비할 때 암기만 하고 가슴으로 체득하고 깨닫지는 못한 것일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다. 임금피크제 같은 사실상의 읍소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주도면밀한 분석과 합리적 확신에 기초해 나날이 악화하는 청년실업에 진지하고 정교하게 개입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대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득불평등이 과거에 진보개혁가들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또 광범하게 용인되고 있는 것처럼, 청년실업도 점차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방치되는 경로를 밟게 될지 모른다. 1분기 영업이익 6조원대의 삼성전자처럼 번영을 구가해온 우리 경제와 기업은, 때 묻지 않은 발랄한 연애도 포기한 채 비탄 속에 ‘때 묻은’ 취업 고뇌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겸손해야 하는 건 아닐까? 청년 노동권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서 새로운 용어와 가치 개념으로 절박하게 말해져야 할 때다.
'시사정보 큐레이션 > 국내외 사회변동外(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계부채, 세계의 경고 속 태평 대한민국...경기부양책, 묘약인가? 마약인가? (0) | 2015.05.04 |
---|---|
[공유정치] 한국 정치를 공유경제 기업 '우버' 택시에 태우고 싶다 (0) | 2015.05.03 |
한국, 중소기업 일자리 급감...산업 수요 측면에서 본 고용 상황과 시사점 (0) | 2015.05.03 |
2014년도 기술수준평가...한국 10대 전략기술, 미국 추격· 중국 쫓아온다 (0) | 2015.05.03 |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샌드위치 신세...한국, 제조업 전반 위기감 고조 (0) | 2015.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