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포스트모던 이코노미] '산멉시대의 모범생' 대한민국, 탈산업화가 관건이다

배셰태 2015. 4. 23. 16:17

[모종린의 포스트모던 이코노미] 탈산업화가 관건이다

조선일보 2015.04.23(목)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5042101147&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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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실패한 모범생의 징후가 보인다. 모범생은 처음으로 나쁜 성적을 받을 때 허무하게 무너진다. 요즘 한국 경제가 딱 벽에 부닥친 모범생의 모습이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산업시대의 모범생이었다. 세계가 칭송하는 수출주도 경제발전 모델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 되었다. 모범생으로서의 성공이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한국 경제는 1960년 이후 석유 위기, 민주화 위기, 금융위기 등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한국 경제가 위기와 더불어 성장했다는 주장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문제는 자신감의 붕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성장 모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요즘은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든지 한국의 미래 전망과 성장 모델에 대한 불안이 팽배하다.

 

한국의 자신감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휴대폰,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동시 불황이다. 지난 2014년,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7% 감소했으며, 현대자동차의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6% 줄어들었다. 한국 경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부진은 한국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유례없는 현상이다. 1997년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중에도 이들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온전했고, 이를 발판으로 한국 경제는 도약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경제 양극화가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수출주도 성장모델의 문제가 공론화되었을 때에도 그 문제의식이 주력 산업에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주력 산업을 유지하며 낙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시되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한국경제의 성공모델 자체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대기업, 수출, 제조업 중심의 대한민국 간판 산업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시장, 기업지배구조, 포퓰리즘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점들이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한국 기업과 산업이 탈(脫)산업화 경제, 즉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것이 진짜 문제다.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도 포스트모던 이코노미를 피할 수 없다. 포스트모던 이코노미는 가치, 개성, 자아실현, 삶의 질 등 탈물질적 가치가 소비와 생산을 지배하는 경제다. 1960년대 이후 시작된 탈산업화의 영향을 받은 서구에는 이미 서비스, 문화콘텐츠, 창조 산업 중심의 포스트모던 이코노미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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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탈물질적 가치가 기업의 생산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업은 탈물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을 생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 사회 책임성, 공유와 개방성 등 그 과정에 있어서도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포스트모던 경쟁력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분야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경쟁하는 스마트폰 산업이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등 전자제품으로 새로운 문화를 개척하고,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그 문화를 판매하는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의 대표 주자다. 애플은 이단 정신, 즉 혁신적인 기술로 개인을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문화적 정체성을 그들의 제품에 매력적인 가치로 담아냈다. 그래서 소비자는 애플 상품을 통해 혁신과 변화의 가치를 소비하게 된다.

 

반면, 아쉽게도 삼성전자는 애플과 달리 뚜렷한 문화 정체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가 아이폰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면, 갤럭시폰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삼성전자가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트모던 소비자는 삼성전자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이며,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가 어떤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려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애플이 중심에 서 있는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에 진입하는 새내기로서, 삼성전자는 지금 치열한 자아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의 미래를 맞이하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자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가치 변화, 이에 대응하는 기업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이야기꺼리는 많다. 한국에서도 포스트모던 경쟁력으로 성공하는 기업과 도시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성공 모델의 공유야말로 더욱 많은 한국 기업과 산업이 포스트모던 이코노미에서 성공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