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정재승 KAIST 교수“1주일중 하루 사색·이틀 소통..창조성 기르는 나의 방법”

배셰태 2015. 4. 11. 13:34

“1주일중 하루 사색·이틀 소통… 창조성 기르는 나의 방법”

문화일보 2015.04.11 (토) 임정환 기자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15040801033503018001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개인 작업실에서 작은 뇌 모형을 들고 창의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1인5역’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를 위해 처음 정재승(43·바이오 및 뇌공학) 카이스트 교수와 접촉한 것은 올해 초였다.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연락도 쉽지 않았다. 전화도 잘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신이 없었다. 거의 이메일로 연락을 취했다. 지난 3일 가까스로 그를 만났다.

 

<중략>

 

“기자님은 한가하세요? 회사가 한가하게 내버려 두지 않잖아요.” 정 교수의 말대로 현대인은 모두 바쁘다. 그러나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대부분 헛헛함이 밀려온다. 잠자리에 누워 ‘오늘 뭘 했지’라고 자문하지만 대부분 일없이 바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소모됐을 뿐, 창조적인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략>

 

“많은 경우 창의적 아이디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들의 생산적인 재배열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보는 게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냥 빈둥거리면서 우리 분야에서 경쟁자들이 뒤지는 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뒤지는 게 필요하지요. ‘아이들링(idling)’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냥 빈둥거리는 겁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 주창되는 이때에 빈둥거림이 창조적 아이디어의 원천이라니. 차는 남산 1호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길이 막혔고, 생각도 어지러워졌다.

 

“책이나 잡지를 뒤적거리든가, 영화 보고 딴생각을 한다든가 하는 게 아이들링에 가까운 것입니다. 혼자 이런저런 사고, 실험들을 하는 거지요. 그러다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다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제점이 자명해지거나 아이디어가 발전하는 거지요. 다른 아이디어와 합쳐지기도 하고요. 이런 방식을 통해 아이디어가 성숙해지고 풍성해집니다.”

 

정 교수는 혼자 조용히 보내는 사색의 시간과 소통의 시간이 둘 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흔히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으로 브레인스토밍을 먼저 떠올리기도 하지만 브레인스토밍만으로는 좋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만 강조한 결과기 때문이다. 반대로 혼자 방안에서 흰 종이에 아이디어를 끼적이기만 해서도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없다.

 

<중략>

 

사실 이 같은 원칙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창의력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이기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정 교수는 창의와 혁신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경 과학자로서 조언했다.

 

나이가 들면 뇌의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떨어집니다. 어렸을 때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술도 마시면서 논쟁을 즐기고, 그러면서 내 인지적 세계가 확장되고 변형되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고정되지요. 정치적 세계관이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게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계속됐다.

 

“사람들 초미의 관심사가 재테크나 교육 같은 것인데 경제적 계급이 다르면 허심탄회한 얘기가 어렵습니다. 또 미적 취향이 다르면 같이 취미생활을 하기도 어려워요. 결국 정치적 성향이나, 경제적 계급, 미적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공감과 위로를 받는 대화가 휴식시간에 벌어지는 겁니다. 직장은 다른가요? 함께 일하는 사람과 같이 밥 먹고 비슷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니까 그들과만 소통해서는 혁신적인 사고가 어렵지요. 결국 일터에서도, 주말에도, 사고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를 주고받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창조적 영감을 얻을 곳이 없습니다. 물론 위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의 혁신 관점에서는 도움이 안 됩니다. ‘내 삶에 창의적인 영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나와 전문 분야가 다르거나, 다른 경험을 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거나, 하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사회 전체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사회의 복잡도(complexity)가 높아질수록 하나의 정답을 내기란 점차 오리무중이 돼간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처방할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치료가 까다로운 질병일수록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어난다. 같은 사람이라도 나이나 직업, 성별 등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 교과서적인 처방을 내리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이때 필요한 것이 인지적 유연성이다. 변수들이 많아서 인지적으로 유연하게 학습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창의성이 개인의 덕목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필수재인 이유다.

 

<중략>

 

그렇다면 창의와 혁신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지식의 흘러넘침(Knowledge spillover)’이 이뤄지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환경에 놓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를 예로 들었다.

 

<중략>

 

“혁신은 계획대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설명될 뿐이지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에 기회들이 있었고, 환경이 좋았고,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우연의 조합’으로 이뤄진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미리 혁신을 알 수 없습니다. 우연의 조합이 이뤄질 확률이 높도록 그저 미리 다양하게 준비할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던지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