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잘 설계한 '사회안전망'으로 불황 속 영국에 300조 원을 안겨 준 ‘비밀병기’

배셰태 2015. 3. 30. 19:56

불황 속 영국에 300조 원을 안겨 준 ‘비밀병기’

KBS 2015.03.30 (월)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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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20]

 

불황으로 대량 실업이 일어날 때 실업급여는 경제를 지키는 중요한 파수꾼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실업급여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약해 재정 안정성이 급속히 악화되어 가고 있는데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실업을 당한 근로자들이 실직 이후 5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2009년 기준으로 평소 임금의 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8%의 4분의 1도 되지 않아 단연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근로자들은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정작 유사시 제대로 된 실업 보장은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청년 실업자를 구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실업부조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실업부조’는 고용보험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청년 실업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끌어 올려, 보다 나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다. 기초연금을 도입한 OECD국가들 중 상당수가 채택하고 있는 아동수당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래를 지키는 소중한 버팀목인 청년과 아동이 사회안전망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청년과 아동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면 나태해져서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통념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오판 때문에 불황에 대처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회안전망을 허투루 여기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실제로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잘 설계한 사회안전망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최악의 경제 불황 속에서 국가경제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가장 유효한 성장 동력이다. 특히 청년과 아동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투자다.

 

■ 단돈 12만 원이 안겨준 300조 원의 경제 기적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로 유명한 조앤 롤링(Joanne Rowling)은 28살의 나이에 폭력을 일삼던 남편과 이혼을 하고, 갓 태어난 어린 딸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사는 동생을 찾아갔다. 완전히 무일푼이었던 롤링은 그곳에서 친구에게 돈을 빌려 간신히 초라한 공공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딸을 키워야 했던 롤링이 일자리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영국 정부가 일주일에 70파운드, 우리 돈으로 12만 원씩 주는 생활 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 같은 사회안전망의 도움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자, 롤링은 교사자격증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소설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롤링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나와 집 근처 카페인 ‘엘리펀트 하우스(Elephant House)’에서 온종일 앉아 그 유명한 ‘해리포터’를 쓰기 시작했다.

 

1995년 롤링은 해리포터 1권을 완성해 대형 출판사 12곳에 원고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줄 알았던 해리포터에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1997년 미국의 대형 아동 서적 전문 출판사인 ‘스콜라스틱(Scholastic)’이 찾아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라는 제목으로 미국판 출판 계약을 하고 10만 달러의 거금을 계약금으로 내놓았다. 이후, 본격적인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해리포터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해리포터는 영화와 뮤지컬, 음악, 게임까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면서 무려 308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렸다. 또한 조앤 롤링 자신도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 2010년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세계 여성 부자 순위 14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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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황을 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사회안전망이다

 

경제 불황이 시작되면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이 늘어나 소비가 줄어든다. 그 결과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일자리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불황이 장기화된다. 이 때 사회안전망은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의 소비를 유지시키고 재취업을 도와 불황의 악순환을 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촘촘하게 잘 짜인 사회안전망은 단지 그 혜택을 보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불황에서 지키는 중요한 버팀목이 된다.

 

이 같은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바로 ‘경기 자동안정화 기능(Automatic Stabilizer)’이라고 한다. 경기 자동안정화 기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기불황이나 호황이 왔을 때 정부가 임의로 재정지출이나 세율을 변경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작동해 경기 변동 폭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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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불황이 닥치면 국가가 이같은 경기 자동안정화 기능을 미리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자동안정화 기능이 빈약한 경우에는 결국 임의적인 경기 부양책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정부가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심각한 시차 문제를 안고 있다. 때문에 결국 경기 불황이 본격화된 다음에야 시행되어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회안전망은 불황으로 직장을 잃거나 극빈층으로 추락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지출되기 때문에 바로 소비와 투자로 연결될 수 있는 데 반해, 일시적이고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은 일반적으로 ‘업자’들에게 지출되고 전달경로가 복잡하기 때문에,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언제 중단될 지 모르는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계가 이를 믿고 소비와 투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 그래도 부패한 국가는 인위적인 부양책을 선호한다

 

이처럼 사회안전망의 경기 부양효과가 훨씬 강력하지만, 부패한 국가는 인위적인 건설경기 부양책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자동화된 사회안전망과 달리,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에는 힘 있는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들이 쉽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사업을 벌여 지역구를 관리하려는 정치인이나 나랏돈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고위 관료들은 자동안정화 장치를 마련하는 것보다 유사시 특정 업체나 지역 사업에 돈을 퍼주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그런데,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있을 때는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이 아무리 비효율적이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성장률이 정체되는 시기가 오게 되면, 경기 부양을 빌미로 소중한 국가예산을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사업에 투자하거나 특정업자에게 퍼주던 과거 방식으로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이익집단에만 이득을 주는 비효율적인 경기 부양책을 과감히 솎아내고, 그렇게 확보한 예산을 ‘해리 포터’를 만들 수 있는 사회안전망에 투자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은 ‘치료제’라기 보다는 ‘예방접종’과 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일단 불황이 시작된 후에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현재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불황’이라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우리 경제를 엄습하기 전에 하루 빨리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서둘러 우리 경제를 지킬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확고히 구축해야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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