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중동엔 답이 있나
조선일보 2015.03 24(월) 이종석 논설주간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50323037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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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나가면 무슨 할 일이 있대?"
B "노가다(막노동) 같은거 아니겠어"
A "그런 일 하러 중동까지 가라는거야?"
B "적어도 여기보단 일자리가 많다는 거겠지..."
A "국내엔 일거리 더 없으니깐 해외 나가서...각자 찾아보라는거 아냐"
B "거 참, 여기선 할 일 없으니 해외로 나가라는건데...입양아나 우리 신세나 다를게 뭐냐?"
지난주말 일산 근교 대형 커피체인점. 옆테이블 청년들의 대화가 가슴을 찔렀다. "청년실업률 높다는걸 이제 알았나" "해외로 나가라는건 무슨 얘기?" "중동 일자리가 여기보다 좋다는건가" 등의 대화가 이어졌다. 며칠 전 보도된 대통령의 중동 진출 발언에 대한 반응이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했다. '니가 가라! 중동', '청년들 부글부글' 등 격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커피숖 청년들의 대화 내용과 인터넷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다.
청년 중동진출 발언은 대통령이 먼저 꺼낸게 아니다. 지난 11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중동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청년 취업 문제를 중동 진출로 해결하자"며 운을 뗐다. 이 때는 별 반응이 없었다. 청년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대책 가운데 하나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19일 대통령이 이 카드를 다시 꺼내면서 불거졌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 진출을 해보라"며 "다 어디 갔느냐고(하면), 다 중동 갔다(할 정도로 해보라)"고 지시했다. 참석자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 날 대통령은 '청년들이 국내를 모두 비우고 가야 할 정도'로 중동 일거리가 양질(?)의 것인지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보내보라는 식으로 언급했다. 이후 청년들의 분노게이지가 높아졌다. 그들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추임새 정도로 제시한데 대한 반발이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취업은 인생 항로를 가늠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선택받을 수도 없는 처지다. 가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취업준비생 신세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준비해야 취업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현재의 청년실업 사태는 한국의 산업구조와 기업 고용구조, 경기상황 등이 맞물린 복합 산물의 결과다. 어느 것 하나를 풀면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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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 스위스의 취업 구조를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다만 청년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을 갖춘 사례가 있다면 배우고 참조할 필요는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땅의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취업대책을 제시하는게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그래도 정 방법이 없다면 그 때 가서 해외로 나가라고 얘기해야 한다. 충분히 고민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먼저 등떠밀듯 해외로 내보내려고 하는 것은 정부가 할 도리가 아니다.
"니가 가라! 중동" 이 시대 청년들이 고하는 겸손하면서도 격한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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