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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事物)인터넷과 만물(萬物)인터넷

배셰태 2015. 3. 9. 09:04
[데스크에서] 事物인터넷과 萬物인터넷

조선일보 2015.03.09(월) 최원석 국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08/2015030802714.html?outlink=facebook

 

물건이나 제품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것을 '사물(事物)인터넷'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Internet of Things(IoT)'란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의 'Things'와 한국어의 '사물'이 같은 뜻이란 얘긴데 과연 그럴까?

사전적 의미로 보면 잘못된 번역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사물'이 지닌 본뜻을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물을 '①일과 물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③법률 사건과 목적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 규정하고 있다. 사물을 ②의 뜻으로 해석한다면 'IoT'를 '사물인터넷'으로 번역해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물은 본래 '사(事)'와 '물(物)'이 합쳐진 말이다. '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건·개념을 뜻하고, '물'은 눈에 보이는 실체인 물건·제품 등을 의미한다. 사무(事務)를 본다고 하면 '사'에 관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물욕(物慾)은 '물'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이렇게 구분해서 이해한다면 사물인터넷은 원래 용어를 부정확하게 옮겨 개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한자어 문화권이며 제조·IT 강국인 일본과 중국에서는 IoT를 어떻게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을까? 일본에서는 '모노[物]의 인터넷'이라 부른다. '모노'는 일본어로 물건·제품 등을 뜻한다. 일본인의 물건 만들기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하는 '모노즈쿠리[物作り·물건 만들기] 정신'에 들어가는 그 모노이다. 사(事)는 '고토'라고 하는데 물건이 아니고 의식(意識)이나 사고(思考)의 대상을 뜻한다. 일본에서 모노와 고토는 엄격히 분리해 사용한다.

중국에서는'IoT'를 '우롄왕(物聯網)'이라고 부른다. '물건[物]과 연관된 망(網)'이라는 뜻이다. 'Things'는 '物', 'Internet'은 '網', 'of'는 여러 용법 중 하나인 '관련(關聯)되다'라는 의미의 '聯'으로 번역했다.

국어사전도 '사'와 '물'을 혼동해 사용하고 있으니 사물인터넷이라는 번역에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례가 한국이 '사'와 '물'의 세계를 구분하는 데 덜 민감하거나 외국 용어의 번역이나 한자어 사용에 대한 정확성을 세밀히 따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또 최근 부가가치 창출의 중심이 물에서 사의 세계로 이동해 가고 있는데 사물(事物)을 언어적으로 구분해 이해하지 않는 것이 한국인들이 이런 시대 흐름에 대한 생각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생긴다.

'IoT'의 번역으로 '물(物)인터넷'이나 '물건인터넷' 등은 어감이 별로라서 꺼려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IoT'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만물(萬物)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이란 용어를 써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