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책 안 읽어서 사랑스럽다?
오마이뉴스 2015.02.25(수) 박기석 이대용 기자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41373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진중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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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서는 미디어로서 이미지의 가치를 강조한다.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대한 빌렘 플루서의 사유를 담은 '그림의 혁명'. ⓒ 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는 좁은 의미로 TV, 방송, 라디오, 잡지 등의 매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캐나다의 문명비평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넓은 의미의 미디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라고 정의했다.
동물은 땅을 팔 때 제 발로 파지만 인간은 도구를 이용한다. 맥루한의 말대로라면 이 도구 또한 미디어다. 도구가 인간과 세계 사이의 매개체인 것처럼 미디어는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이런 의미에서 체코 태생의 커뮤니케이션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최초의 미디어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그는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그리고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의 변화를 설명하며 각 시대의 인간관을 분석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11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빌렘 플루서가 제시한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미디어의 변화와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주제로 강의했다.
최초의 미디어는 이미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를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f) 같은 구석기시대 여인상, 주로 짐승들이 그려진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 그리고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문자문화 이전에는 인간이 세계에 관한 정보를 이미지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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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복된 시행에도 불구하고 주술이 소용이 없다는 걸 언젠가는 깨닫습니다. 인간과 세계가 다시 끊어집니다.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분별력을 갖게 된 시점에서 더 이상 이미지가 가진 주술성을 믿지 않게 됩니다. 이미지가 예술이 되면서 세계와 인간의 관계가 낯설어집니다. 그 때 등장하는 두 번째 매개체가 텍스트입니다."
의식을 재구조한 문자의 등장
문자를 이용해 인간은 세계를 기록하게 됐다. 진 교수는 "새로운 이미지의 등장은 과거의 생각이 매체만 바꿔서 나타난 것을 뜻하지 않는다"며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한다"고 말했다. 문자의 등장은 다른 사고방식의 등장을 의미한다. 자연을 관찰해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고 그것을 법칙으로 확정하면서 자연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텍스트 문화는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집니다.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는 알파벳(alphabet)이고 하나는 넘버(number)입니다. 알파뉴메릭코드(alphanumeric code)라고 하는데 문자와 숫자 코드 두 가지 이질적인 결합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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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교수에 의하면 문자의 개발은 새로운 사고방식의 등장이다.ⓒ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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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세계를 담는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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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교수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가 다시 끊어져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해석이 강조됐다고 말한다.ⓒ 박기석
세계와 인간의 관계가 다시 끊어진다. 이제 사람들이 텍스트를 믿지 않는다. 진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사람이 상당히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이라서 팩트보다는 해석을 강조한다"며 "팩트라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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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자연과학이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는다. 인문과학은 세계에 대한 해석이라고 보고 자연과학은 세계 그 자체라고 보지만 결국 그렇지 않다. 진 교수는 이에 대해 "자연과학에 대한 근대 인식이 무너진 것은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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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자연과학자가 주는 세계의 모습을 '세계의 모상'(세계를 그대로 찍은)이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자연과학자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세계의 모상'이 아니라 해석된 모습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상은 모상이 아니라 모형이다. 지금은 우리가 가진 기술과 관측 범위 내에서는 모형이 사용되지만 발전하면 폐기될 수 있다. 이 모형을 안다고 해서 세계 자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형은 굉장히 실제적인(practical)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가정하고 아직까지 쓰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과학도 그렇고 인문과학도 그렇고 '텍스트가 곧 세계다'라는 생각을 접어버리면서 세계와 인간은 다시 낯설어 진다.
텍스트의 죽음과 이미지의 재등장
오늘날 사람들은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활자를 소비하지 않는다. 책이나 신문을 읽는 일보다 텔레비전,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보는 데 더 열중한다. 이와 같은 활자매체의 죽음을 맨 처음 예견한 사람이 맥루한이다. 그는 1964년에 쓴 <미디어의 미래>에서 활자시대의 종말과 전자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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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는 문자와 이미지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대용
디지털 시대를 연 컴퓨터도 개발 초기에는 텍스트의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컴퓨터 이용 방법이 변한 게 좋은 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즈'를 개발하기 전에는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수많은 명령어를 일일이 기억해야 했다. '도스'라는 컴퓨터 운영 체제가 문자를 매개로 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 당시 컴퓨터는 문자문화 도구였다. 그러나 운영 체제가 '윈도우즈'로 바뀌고 난 뒤 우리는 그림으로 된 명령어(아이콘)을 마우스로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 PC통신을 할 때는 아주 긴 글을 자세히도 썼습니다. 그러면 댓글도 성심성의껏 달았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죠? 동호회 게시판에 긴 글을 쓴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째 '스크롤 압박', 둘째 '누가 세 줄로 요약해 주세요', 셋째 '참 좋은 글입니다',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는 의사소통의 형식이 이미지 중심으로 변했고 글은 부차적 요소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신문은 텍스트문화의 총화입니다. 요즘 신문업계가 힘들다고 하는데 이는 (활자시대가 끝났다는 점에서) 당연합니다. 신문회사들이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하는 것은 이미지 중심의 문화에 적응하려는 시도입니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그리고 현재의 디지털 시대까지 미디어는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다시 이미지로 변해왔다.
인간이 세계를 창조하는 시대로
근대철학에서는 세계를 객체(object),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을 주체(subject)라고 불렀다. 곧, 모든 근대철학의 패러다임은 주객관계가 기본틀이었던 셈이다. 인간 개인의 주관을 강조하는 주관주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객관주의, 그리고 실재론이나 관념론 모두 주체와 객체를 나누고 그 관계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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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서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 이상 인간과 세계의 주객관계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세계는 인공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 이상 세계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세계를 바꾸고 변형시킵니다. 여기서 세계가 객체라는 의미는 사라집니다. 객체의 개념이 없어지면 동시에 객체를 인식하는 주체도 의미를 잃게 됩니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주객관계로 바라보던 패러다임이 무너지게 되는 거죠."
포스트-히스토리 이전에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세계를 바꾸는 방식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변형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시대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던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1996년 영국에서 양을 복제한 뒤 현재는 토감(토마토와 감자의 합성식물), 무추(무와 배추의 합성식물) 등 지금까지 없던 합성생물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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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박기석
인간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DNA를 창조해낸다. 디지털시대 인간은 생명창조의 근처에까지 와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은 주체가 아니다. 자기 상상을 앞으로(pro) 던져(ject) 실현해나가는 존재, 즉 기획자(projector)다. 근대시대에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게 중요했다면 디지털시대에는 인간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앞에서 설명했던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텍스트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지를 매개로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했습니다. 이때 인간은 주술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죠. 문자가 생기고 나서 사람들은 문자를 매개로 한 기술적 이성을 중시하게 됩니다. 문자문화의 도래죠. 그런데 디지털시대에 더 이상 텍스트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게 되고 인간은 다시 이미지를 미디어로 택하게 됩니다. 문자문화가 퇴조하면서 기술적 이성은 힘을 잃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세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미지를 매개로 한 상상력이 기술적 이성을 만나게 된 이 시대는 기술적 상상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술적 상상력과 달리 상상 속 세계를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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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기술적 상상력은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갖는다.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력보다 그 기술을 꿈꾸는 상상력이다.
기술 경쟁에서 상상력 경쟁으로
몇 해 전부터 중국의 과학기술이 한국 산업계를 턱밑까지 따라잡았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삼성전자가 6개월만 가만히 있으면 중국 회사가 똑같은 제품을 반값에 출시할 수 있다고 삼성전자의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시대의 경쟁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디지털시대의 인간은 새로운 세계를 기획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경쟁은 상상력 경쟁입니다.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삼성은 계속 기술력을 높이지만 그렇다고 경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경쟁 없는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애플 경우가 그렇습니다. 애플은 디자인을 꾸미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로 불리지만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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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시대는 기술적 상상력이 시대라고 말하는 진중권 교수.ⓒ 이대용
진 교수의 말처럼 잡스는 IT 업계의 창조주라 불린다. 반면 삼성전자는 '카피캣'(copycat: 모방꾼)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둘 차이는 기술적 상상력의 존재 여부였다. 그렇다면 기술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디지털 이미지는 문자문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래밍돼 있는 것처럼요. 프로그램은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이미지는 문자로 돼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이미지를 해석하려 해도 남이 만든 이미지 밑에 깔려 있는 텍스트를 읽어내야 합니다. 누군가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책을 안 읽어서 사랑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문자문화시대가 지났다는 것을 함의하는 말인데 이는 틀린 말이죠. 텍스트를 무시하고 이미지에만 몰두한다면 포스트-히스토리의 인간이 아니라 프리히스토리의 인간이 됩니다. 기획에서 중요한 것은 한 마디로 문자를 가지고 이미지를 그리는 능력입니다."
..이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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