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바나나의 저주에 걸린 한국 부동산
KBS뉴스 2015.01.08(목) 박종훈 기자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1&oid=056&aid=0010114445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2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가계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5%나 된다. 이에 비해 미국 가계 자산 중에서 부동산 비중은 32%에 불과하고, 일본도 41%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1989년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 일본의 70%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특히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은퇴에 가까울수록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을수록 부동산 비중이 높아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의하면 30대가 가구주인 경우 가구 순자산의 69%가 부동산이었다. 그런데 이 비율이 나이에 비례해 높아지면서 60세 이상 가구주의 경우 순자산의 무려 90%가 부동산이었다.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30대 가구주의 경우 평균적으로 자신의 소득과 비슷한 금액의 빚을 지고 있지만, 60대 이상의 경우 자신의 소득의 무려 1.6배에 이르는 대출을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대출을 갚아나가는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나이가 많을수록 오히려 자신의 소득에 비해 더 많은 빚을 지고 부동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맹신, 레밍스를 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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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부동산에 대한 맹신은 마치 ‘레밍스(Lemmings)’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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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집값이나 주가가 한창 오를 때 상승장에서 뒤쳐질까 두려워 남을 따라 경쟁적으로 위험한 투기에 빠져드는 현상을 ‘레밍스 효과(LemmigsEffect)’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너무나 과도하기 때문에 이미 기성세대 안에서는 더 이상 부동산에 투자할 새로운 수요를 찾기가 불가능하다. 결국 남은 것은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가 사주는 길 밖에 없는데, 젊은 세대의 인구는 2차 베이비부머에 비해 반 토막으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시간제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2030세대의 임금 상승률은 기성세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경제 상황이 완전히 변했는데도 기성세대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부동산 상승기에 뒤처질까봐 전전긍긍하며 부동산만 부둥켜안고 노후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바나나의 위기를 닮은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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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부분 국민들이 부동산에 매달린 상황에서 언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상황은 바나나의 멸종 위기를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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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넘는 힘은 ‘종(種)의 다양성’이다
이처럼 하나의 생태계가 비슷한 유전자로 통일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개체수가 아무리 많아도 유전자가 단일화되어 있는 경우에는 하나의 충격만으로도 멸종에 가까운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부동산 시장의 부동산 쏠림 현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전체 부동산 비중이 가구 순자산의 80~90%를 차지할 만큼 대부분 국민들의 자산 배분이 편중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이나 신흥국의 금융 불안 같은 작은 충격만으로도 전체 시스템이 흔들리는 위기로 치닫게 될 수 있다.
실제로 1989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꺼질 당시 일본 가계의 부동산 비중은 70%로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부동산 투기에 성공한 연예인이 매일 TV에 출연해 자신의 부를 자랑했고 국민들은 이처럼 부동산 투기에 성공한 사람들을 우상처럼 여겼다. 그런데 버블을 우려한 일본 금융당국이 금리를 올리자 순식간에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버블이 붕괴된 근본 원인은 갑자기 긴축 정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정책 당국의 금리 인상 같은 작은 충격조차 못 견딜 만큼 부동산 시장의 쏠림 현상이 너무나 심각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잡계 경제학(Complexity Economics)의 시각으로 볼 때 당시 일본 정부의 긴축정책은 이미 '임계 상태'에 있던 부동산 버블을 터뜨린 방아쇠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당장 방아쇠만 막겠다는 생각에 집착해 빚더미를 더욱 부풀리고 부동산에 대한 쏠림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부동산 부양책을 융단폭격처럼 퍼부으면 일본과 같은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과도한 부동산 부양책은 소비와 투자 같은 생산적인 활동에 쓰일 돈까지 부동산 시장으로 몰아넣어 경기 불황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만 더욱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우리 경제를 마치 캐번디시라는 단일 품종으로 통일된 바나나 농장처럼 작은 경제 변수의 변화만으로도 흔들릴 수 있는 매우 취약한 경제 구조로 만들고 있다. 만일 우리 정부가 ‘바나나의 멸종 위기’가 주는 중요한 교훈을 무시하고 국민 전체를 계속 ‘레밍스’처럼 몰아간다면 그 끝에는 무시무시한 벼랑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비극을 피하려면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전에 주어진 이 소중한 '골든 타임'에 부동산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정책을 써나가야 한다. 만일 지금처럼 쏠림 현상을 방치하다가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2010년대 후반이 되면, 버블 붕괴를 막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본 기자가 연구한 '진화 경제학(EvolutionaryEconomics)'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무엇보다 '종(種)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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