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밥과 법]귀족과 속물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경향신문 2015.01.06(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01062107275&code=990100
장은주 교수가 <정치의 이동>에서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능력이 정의다”라는 ‘메리토크라시’(능력자 지배체제) 신봉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재화가 ‘능력’에 따라 분배되고 있지 않음은 외면하거나 은폐하고 있다. 조현아를 비롯하여 각종 물의를 일으키는 재벌 3세들이 ‘능력’이 확인되어 그 자리에 올라 재화의 핵심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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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물학적으로 결정·유지되는 ‘사회귀족’의 위세는 막강하다. ‘정치귀족’은 표를 위해 발품이라도 팔아야 하며 ‘법복귀족’은 공부라도 해야 하지만 ‘사회귀족’은 태어나는 순간 ‘슈퍼 갑’이 되며 그 지위는 대대손손 유지된다. 이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키기는커녕 자신의 지위와 부를 유지·확장하기 위해 범법을 일삼는 경우도 많은데 그래도 처벌은 가볍다. ‘정치귀족’이나 ‘법복귀족’들이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걸며 이들의 눈치를 보거나 구명(救命)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경제범죄를 엄벌하는 미국 등 다른 자본주의 나라는 벌써 경제가 망해야 했다. 매우 드물지만, 능력 있고 절도 있는 ‘계몽귀족’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사회귀족’과 달리 사회구성원의 압도적 다수는 일자리, 방 한 칸, 자식 교육 등을 평생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사회귀족’의 행태에 불만을 느끼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으니, 분노를 삭이며 자기 앞가림하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사회귀족’이 지배하는 회사에 들어가는 경우는 바로 ‘사회노예’가 된다. 자신과 가족의 밥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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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답답하고 전망은 우울하지만 희망을 만드는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봄을 준비하는 개울물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두 사람의 절절한 토로를 떠올린다. 정치권력에 맞선 윤석열 검사의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권력에 맞선 박창진 사무장의 “나는 개가 아니다”. 각성한 주체에게 두려움은 없다. 윤 검사의 말, 청와대와 법무부와 검찰청 앞에 새겨야 한다. 박 사무장의 말, 전경련 앞에 새겨야 한다. 나아가 모두 초·중·고교 교과서에 넣어야 한다.
시민은 민주공화국의 원칙에 충성할 뿐이다. 선두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V자 대형으로 유지하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러기 리더십’은 민주공화국의 리더십이 아니다. “여러 불충한 일로 대통령께 걱정을 끼쳤다”라고 반성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충성론 역시 민주공화국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자는 봉급을 위해 노동을 팔 뿐이지, 인격까지 파는 것은 아니다. 회사 밥을 먹는다고 그 회사 ‘오너’의 ‘개’가 되어야 한다면, 그 회사는 ‘동물농장’이다.
윤석열과 박창진이 되는 것, 쉽지 않다. 그러면 이효리를 따라 해보자.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당해 월급과 집을 빼앗긴 노동자들에게 이효리는 4만7000원의 ‘노란 봉투’를 보냈다. 또한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이창근, 김정욱 두 사람을 응원하기 위해,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되면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겠다고 약속했다. 새해 사회 곳곳에서 제2, 제3의 윤석열, 박창진, 이효리를 보고 싶다. 박노해의 시 구절처럼,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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