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집에 대한 정책을 그르치면 어느 정권이든 뭇매를 피할 수 없다

배셰태 2014. 12. 18. 08:39

[장경덕 칼럼] 집에 대하여

매일경제 2014.12.18(목) 장경덕 논설위원

http://m.mk.co.kr/news/headline/2014/1538434

 

박근혜정부는 3년 후 이맘때 집권 5년의 경제 운용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다. 차기 지도자는 새로운 5년의 청사진을 펼칠 것이다. 이때 집값은 핵심적인 득점 포인트가 될 것이다.

 

모든 집에는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스며 있다. 집에 대한 정책을 그르치면 어느 정권이든 뭇매를 피할 수 없다. 정부가 하루하루 집값을 지켜보며 애를 태우는 건 당연하다. 집값은 가계빚 폭탄이 끝내 터져 버릴지, 마침내 소비가 살아날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정부도 집값이 지나치게 치솟거나 갑자기 추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소득 증가 속도에 비추어 적당히 올라주기를 바랄 것이다. 시장이 그 바람대로 움직일지 보려면 우선 몇 가지 지표를 살펴봐야 한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말 주택 시가총액은 901조원으로 그해 가계부문 가처분소득의 2.7배였다. 2012년 말 집값은 총 3094조원에 이르렀다. 가처분소득의 4.2배다. 가계의 소득 창출 능력에 비해 시장이 훨씬 빨리 커진 것이다.

 

집값 총액은 환란 때인 1998년 2% 남짓 줄어든 것을 빼면 지금까지 줄곧 늘어났다. 2002년부터는 해마다 10% 넘게 늘어 6년 새 두 배가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에도 집값 총액은 거의 매년 소득보다 빨리 불어났다. 가계 대출은 외환위기 이후 네 배로 불어났다. 2012년 1000조원을 넘어섰다. 소득이 더디게 늘어도 빚을 많이 늘리면 주택시장은 커진다.

 

지난 20년의 주택시장 흐름에서 몇 가지 정책적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가격과 물량 효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중략>

 

둘째, 명목가격과 실질가격을 구분해야 한다.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늘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집값은 오르게 된다. 집값 총액이 3000조원을 웃돌고 가계빚이 1200조원을 넘어선 터에 디플레이션 덫에 빠지는 건 최악이다. 예상을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 집을 가진 이들, 그중에서도 빚을 얻어 집을 산 이들이 가장 유리해진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낭패를 본다. 정부는 어느 선에서 균형을 잡을지 결정해야 한다.

 

셋째, 집을 살 능력과 집을 살 의지는 별개다.

 

<중략>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은퇴기에 접어든 가운데 그들의 집을 사줄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는 환란 때 경제 활동을 시작했고 자가 주택에 대한 열망도 낮은 편이다. 베이비부머의 자녀들인 에코세대(1979~1985년생)는 최악의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각 세대의 처지를 고려해 주택 수요기반을 넓혀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의 집값은 아베 정부의 무차별 통화 살포 덕분에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30년 전 수준을 웃도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주택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집에는 누군가의 꿈이 서려 있고 탐욕이 점철돼 있으며 온갖 갈등의 뿌리가 뒤엉켜 있다. 집을 짓고 정책을 다루는 이들에게 보다 치열한 고민과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