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아베노믹스의 길, 초이노믹스의 길

배셰태 2014. 12. 9. 07:59
[세상 읽기] 아베노믹스의 길, 초이노믹스의 길 / 이강국

한겨레 2014.12.08(월)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이 길밖에 없다.” 14일 총선을 앞둔 일본의 아베 총리가 외치는 구호다. 바야흐로 아베노믹스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자 일본 정부는 2차 소비세 인상 계획을 연기하며 의회를 해산했다. 중앙은행은 10월 말부터 돈 풀기를 더욱 강화하며 배수진을 쳤고 단기국채 금리는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이 엄청난 거시경제의 실험을 현지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사실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 중 양적완화만 표적을 맞혔을 뿐 다른 화살들은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했다.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은 소비세 인상은 정책의 실기였다. 아베노믹스를 지지하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크루그먼은 지난달 도쿄까지 찾아와 아베 총리에게 소비세를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실질임금이 15개월 넘게 마이너스 성장이니 서민들에게 증세의 충격이 더욱 컸고, 소비가 위축되자 경기는 다시 침체에 빠졌다. 엔화가 약세인데도 무역수지는 적자이고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으며, 무디스는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끌어내렸다.

 

그럼에도 아베노믹스의 완전한 실패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를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돌아왔고 주가와 기업의 이윤은 급등했다. 문제는 그 효과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20년이 넘은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수 있다는 국민의 기대를 부추긴 것 자체가 아베노믹스의 성과다. 이번 선거에서도 일본 국민들은 아베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디플레이션을 넘는 다른 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한다.” 초이노믹스는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의 초엽에 있다며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선언했다. 높아지는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동산대출에 대한 규제를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생각은 위험천만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가 넘는 상황에서 정부가 빚을 권하는 것은 일본의 장기불황의 뿌리가 거품 붕괴와 부실채권 급등임을 망각한 것이다. 마지못해 금리를 내리는 한국은행의 모습은 통화정책의 효과도 의심스럽게 만든다. 한편 재정확장을 이야기하면서도 사회복지 지출에는 소극적이고, 재정이 우려된다며 담뱃값을 올려 서민생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쯤 되면 지도에 없다는 그 길이 혹시 막다른 길은 아닐까 우려된다.

 

이제 아베노믹스가 어려움에 빠지자, 초이노믹스도 경기부양보다 구조개혁에 더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불황을 막고 경기를 살리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경기부양 자체가 아니라 바람직한 경기부양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 경제에 어떤 구조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해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구조개혁이란 미명하에 기업이나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만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에서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 모두가 나아가야 할 길은 역시 임금 인상과 가계소득 증가 그리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길이다. 그것이 경기부양의 수단과 구조개혁의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아베 총리도 아베노믹스의 선순환을 위해 임금 인상을 독려했고, 최경환 부총리도 가계소득 증가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과 함께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정치적 노력이 꼭 필요할 것이다. 경제는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지만 한국 사회와 정치는 그래도 일본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한국이 그 새로운 길을 일본에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