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4.11.17(월) 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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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봐야지`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주말 새벽 7시 상영분까지 매진 사례. 주변에서는 벌써 두 세번씩 봤다며 난리다. 단언컨대 스탠리 큐브릭 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비견할 만 하다 했다. 할 수 없이 급한대로 2D 영화관에서 봤다. 지극히 상투적인 감탄사지만 `정말 대단`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인터스텔라` 얘기다.
한국 영화가 간신히 할리우드 작법에 익숙해지고 제법 흉내를 낸다 싶었는데 `할리우드는 역시 할리우드, 천재는 역시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 했다고나 할까.
이제 겨우 죽을 힘을 다해 따라잡았나 했더니 어느 새 상대는 저 멀리 우주로 지평을 넓혀 도망 간 느낌. 아무리 종종걸음을 쳐봐야 우리는 결국 `팔로어( Follower)`일 뿐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일 수는 없겠구나 하는 밑바닥 열패감. 세계 8위 무역대국, IT강국 이라고 자신하지만 결국 주변국,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태생적 한계 까지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고작 영화 한편 갖고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부쩍 영화 밖 현실에서도 비슷한 절망감, 비슷한 열패감의 토로를 자주 접한다.
삼성전자의 한 CEO는"왜 애플, 구글 같은 혁신을 못하느냐", "중국 샤오미, 화웨이가 치받고 오는데 대책이 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넥타이부터 느슨하게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심장부터 꽉 조여오는 답답한 느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몸짓이다. 실적이 고꾸라지기 전부터 내부에서는 일찌감치 눈에 불을 켜고 탈출구를 찾아봤지만 역사적 한계, 언어적·문화적 한계를 절감할 수 밖에 없었노라고 털어놓았다. 한 사회가 켜켜이 층층이 쌓아온 문화적·역사적·경제적 자산과 토양 없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은 차치하고 외국인만 보면 여전히 울렁증부터 생기는 세대들이 쥐어 짜낼 수 있는 아이디어 자체가 다르고 실험해볼 수 있는 토양이 다르더라고 했다. `페이스북`의 프로토타입(prototype:원형) 이었던 싸이월드의 실패나 페이스북보다 진일보 했으되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카카오톡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자 한계더라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50여년 만에 징검다리 건너뛰듯 압축성장하고 그나마 성공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 자리매김한 것 자체가 어찌보면 천행이요 기적이었노라 했다.
패스트 팔로어가 되기 위해서는 일사분란한 전진, 좌고우면하지 않는 돌격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직은 군대 이상의 상명하복, 정부 뺨치는 치밀한 관료주의의 결을 갖게 됐다. 복종하고 순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잡스 같은 창조적 인재, 구글 같은 창의적 기업문화를 왜 진작에 갖추지 못했느냐고 닥달하니 자신들도 답답하단다. 사회 전체의 문화적, 과학적, 경제적, 정치적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만이 홀로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고도 했다.
아주 비슷한 고백을 현직 고위 관료에게서도 들었다. 우리나라의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주력 수출품목 13개를 놓고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10년 후에는 불과 2개 품목밖에 남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단다. "11개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품목은 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처럼 누가 봐도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산업들에 왜 쏟아붓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또 `사회·문화·역사적 한계`를 들고 나왔다.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이야말로 수십년, 수백년 동안 쌓인 기초과학 및 기술적 토양과 자산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분야란다. 말 그대로 우리와 선진국 사이에는 `인터스텔라(interstella:별과 별 사이)`만큼의 간극이 있다고 했다. 기술적·사회적 격차를 단숨에 좁힐 기적의 웜홀(Wormhole)도 없다. 심지어 이 분야만큼은 중국이 우리의 추격자가 아니라 선구자다.
경영학 구루인 세스 고딘은 최근 SERICEO와 인터뷰에서 `이카루스 신화`를 얘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달로스가 이카루스에게 `너무 높게 날면 태양에 밀랍이 녹아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 것만 기억할 뿐 실은 `너무 낮게 날아도 바닷물과 안개에 날개가 젖어서 빠져죽을 수 있다`고 경고한 사실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고딘은 그러면서 요즘 한국인들, 한국기업들이 너무 안전한 길만 찾아서 너무 낮게 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젊은이들은 의대, 로스쿨, 대기업, 공기업만 찾고 대기업은 선대의 유산과 외형을 지키기에도 급급하다. 지금의 안전지대가 내일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우르르우르르 한곳으로만 몰려간다. IT벤처로 돈을 벌어 곧장 전기자동차, 태양광, 우주항공 등 미래산업에 올인하는 엘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같은 용감한 CEO는 언감생심이다. 40대 벤처신화의 주인공들 조차 고작 몇백억만 생기면 곧장 은퇴와 은둔의 길로 사라져 버리는 게 우리 현실이다.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 한국경제는 지금 정처가 없다. 일본식 장기불황에 대한 경고만 요란할 뿐 그저 제자리에서 빙빙 돌 뿐이다. 이대로 영영 경제 미아(迷兒)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더 높이, 태양에 더 가까이 날아보려는 모험심, 기업가정신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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