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지구촌 커지는 빈부격차… ‘잿빛 그늘’ 짙어지는 한국

배셰태 2014. 5. 30. 09:06

[wide&deep] 지구촌 커지는 빈부격차… ‘잿빛 그늘’ 짙어지는 한국

국민일보 2014.05.3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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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의 쏠림’ 글로벌 리포트

 

지난 3월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 한 권이 빈부격차 이슈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파리경제대학의 소장파 교수 토마 피케티가 펴낸 ‘21세기 자본론’ 얘기다. 책은 “‘돈이 돈을 버는 속도(자본수익률)’가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소득증가율)’보다 빠르다”며 현재의 세습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국내에서는 가을에 번역본이 출간되는데, 기다리지 못해 해외에서 비싼 배송료를 물어가며 영문판을 직접 구해 읽는 독자가 적잖다.

 

연구방법에 반론이 만만찮고 자료 조작 의혹도 일었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문제의식만큼은 세계 경제계가 공감 중이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는 지난 27일 런던에서 열린 ‘포용적 자본주의’ 콘퍼런스에서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에 대중의 불만이 크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영국 왕위계승 1순위인 찰스 왕세자도 이 자리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기업이 공동체와 환경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파국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진보 진영이 질시하는 국제통화기금(IMF)조차 빈부격차의 위기를 언급한 지 오래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5일 브레턴우즈 연례회의에서 “늘어나는 소득 격차가 세계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에는 “소득의 불균형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내고 부자 증세를 주장,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연 빈부의 격차는 어느 정도로 빨리 진행되고 있으며, 얼마나 심각한 문제일까.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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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한국에는 3000만 달러 이상 자산가가 지난해 말 현재 1565명으로 나타났다. 투자은행 UBS와 글로벌금융업체 웰스엑스(Wealth-X)가 조금 더 보수적으로 집계한 통계에서는 이 숫자가 1390명이다. 이들의 자산을 합치면 한해 국가 예산과 맞먹는 270조원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상위 1%의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46%를 차지하고 있다”고 최근 진단했다.

 

◇빈자

 

정글의 사자처럼 부자가 몸집을 불릴 때 빈자의 처지는 위태로워진다. 특히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보고서가 가리키는 수치보다 더욱 비참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6일 발표한 ‘OECD 2014 통계연보(Fact Book)’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빈곤갭(Poverty Gap) 비율은 39%로 스페인(42%)과 멕시코(41%)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3위를 차지했다. 빈곤갭이란 빈곤 가구의 소득이 빈곤선(최소 생활이 가능한 소득 수준)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표현한 수치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는 가난한 이들이 보통 수준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OECD에서 3번째로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소득 불평등의 다른 척도인 ‘지니계수’를 보면 한국의 위상은 조금 올라간다. OECD 통계연보의 최신 지니계수는 0.31로, OECD 34개국의 평균치와 같다. 이 수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을 나타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니계수가 실생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가 대표적으로 이를 지적한다. 그는 통계 방법의 잘못 때문에 한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가 실제보다 상당히 온건히 표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통계청의 지니계수는 가계동향조사가 산출 근거인데, 소득 상위권이 축소 신고를 하는 등 허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통계청 통계 대신 국세청의 소득세 정산 자료에 근거해 파악한 지니계수는 0.371로 치솟았다”고 강조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OECD 하위 5위권이다.

 

부의 양극화는 깊어가지만 국가가 빈곤갭을 메워줘야 할 사회복지 공공지출 수준은 절망적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공공지출 정도는 국내총생산(GDP)의 9.3%로 최신 통계가 확보된 OECD 32개국 가운데 최하위 멕시코(7.4%) 바로 위인 3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치(21.8%)의 절반도 안 되고 프랑스(32.5%)나 덴마크(30.8%)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금융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버는 사회’를 고발하는 피케티 열풍을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가난’을 운운하며 희생자 가족이 더욱 큰 상처를 입었던 세월호 참사를 미성숙 자본주의의 반성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미국 UC산타크루즈대의 크리스틴 홍 교수는 지난 21일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포린폴리시인포커스(FPIF)에 기고한 글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는 자연스럽게 박근혜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업 편들기’에 대한 격노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참사를 두고 “자본주의의 이 어두운 단면은 한국이 세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장밋빛 이야기의 이면”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