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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나라' 미국도 협동조합이 200만 개

배셰태 2013. 12. 2. 12:27
'자본주의 나라' 미국도 협동조합이 200만 개!

 프레시안 2013.12.02(월)

 

[편집국에서] 협동조합, 민주주의, 선진국의 함수관계

 

<중략>

 

협동조합과 민주주의

11월 29일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에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베라 자마니 교수 부부를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볼로냐는 세계적인 협동조합의 도시이고 자마니 부부는 협동조합 분야 석학이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훈련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탈리아에는 어떤 협동의 전통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자마니 교수 부부는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등 도시공동체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탈리아는 11세기부터 자치도시가 발달했다. 지금도 행정구역에는 '꼬무네(comune)'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공동체성이 중시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도 협동조합이 발달된 곳은 볼로냐가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 등 이탈리아 북부 지방이다. 남쪽 지방에서는 협동조합이 활발하지 않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그 원인의 하나로 남부 지방의 '마피아'를 꼽았다. 민주주의적 자치 전통이 강한 북부 지방에서는 협동조합이 성장해왔으나, 폭력적인 조직 문화가 강한 남부 지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마니 교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만 협동조합이 200만 개"라고 했다. 미국이 자본주의의 상징인 나라이지만 협동조합은 민주주의가 발전한 선진국일수록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협동조합 활성화 정도를 선진국의 지표로 사용한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2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는 등 협동조합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협동조합들이 '준비' 없이 생겨나고 있다는 걱정이 크다. "다섯 명만 모이면 된다"는 홍보에 협동조합이 일종의 '기업 설립의 자유'로서 기능할 뿐, 협동조합 운영을 위한 민주주의 훈련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협동조합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학급회의 반찬 사건을 떠올린 것도 그와 같은 이유이다. 학급회의 시간에도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이 아닌, 선생님 개인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사례. 비단 기자 개인의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더 넓게 보면 우리 사회는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이렇게 흘러온 셈이다. 협동조합에 필요한 리더십은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이다. 그래야만 이익을 덜 내더라도 오래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니 어디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아직 먼 것 같다. 민주주의는 '합의'와 합의를 위한 끊임없는 토론과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다수의 힘', '절차적 정당성' 등 결과만 강조되고 있다.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이 정도인데 협동조합인들 잘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 1000년의 자치 도시 공동체 전통. 부럽다. 까마득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기본이 안 돼 있는 민족은 아니다. 우리 또한 두레와 품앗이의 수천 년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다만 잊고 있을 뿐. 이제 다시 시작됐을 뿐이다. 더 많은 협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 협동조합 그 자체가 최고의 민주주의 훈련장이다. 특히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일 만큼 좋은 교육이 있을까. 감히 "협동조합이 한국 민주주의 미래"라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