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가 상호(순환)출자의 자양분이 되다
2008년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약칭함)를 부활하자는 논의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벌 대기업들이 제과빵집, 치킨 사업 등 동네 상권에 마구 침입해 국민 여론이 악화하며 살며시 고개를 치켜드는 것입니다.
출총제는 1987년에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힘 있는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계열사를 확장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고 만든 제도입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억제, 업종 전문화 유도, 순환출자 금지 등이 구체적인 목표였습니다. 이 제도는 2008년 폐지됐는데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친기업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출총제를 폐지하자 재벌 대기업들이 득달같이 동네 상권에 침입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재벌그룹은 주로 제조업과 건설업, 금융업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출총제가 폐지되자 대기업이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중심인 서비스 업종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어왔습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고사시키는 기업형슈퍼마켓(SSM)부터, 자동차 정비업, 외식업, 제과제빵, 치키점까지 셀 수도 없습니다. 재벌의 상호출자도 출총제 폐지가 자양분이 됐습니다. 출총제가 폐지된 5년 동안 국민 여론이 악화해왔던 연유는 이러했습니다.
한편 대기업 지배구조를 악용해 자기 그룹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삼성전자나 LG전자의 가전제품 가격 짬짜미 같은 일들도 국민에게 공분을 사 큰 저항에 부딪히거나 집단 소송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동네 상권 침입, 일감 몰아주기, 그리고 독과점 짬짜미 등은 자영업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출총제 폐지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속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는 곳곳에 있습니다. 2008년 이후 자동차, 가전제품, 휘발유 등 상품 가격은 크게 올랐습니다. 이것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입니다. 반면, 자영업은 주로 내수 관련 사업으로 서비스업에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이 서비스업 가격은 대부분 인건비가 차지하는데, 이 인건비가 대기업 제품과 비교해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물가 상승도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형태로 진행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난 2008년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인데 크게 보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돼서 발생된 현상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민 생계가 위협당하는 심각한 문제인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문제거리인 출총제를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일찌감치 권력이 된 재벌과 대기업 눈치를 살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반성장 운운하며 출총제 부활이 다시 거론되는 까닭은 이렇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복개공사를 하겠다는 출충제는 과연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요? 26년 동안 출총제 폐지로 똑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반복됐던 만큼 제도 개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울하게도 여든 야든 정치권이 출총제를 제대로 실천할 의지가 없는 듯 합니다.
촐총제의 근본 목적은 공정 거래, 대기업 독식 금지, 업종 전문화입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대기업이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명확히 긋기는 어렵겠지만, 정부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업종에는 대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업종에는 공정 거래 제도를 강화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물론 이 방법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재벌 개혁의 최대 핵심은 역시 계열사 간 '상호출자 금지'입니다. 이것만이 재벌 오너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며 한국 경제가 재벌 자본주의에서 대중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상호출자 금지와 출총제 부활의 요구가 엄청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아는데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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