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세의 경제포커스] 2013년의 경제 위기
- 조선일보 2013.10.23(수)
웅진·STX·동양·팬택… 쓰러져가는 대기업들
치열한 글로벌 무대에서 비즈니스 모델 못 찾고
곳곳서 中에 막혀 좌초, 하나하나 白旗 들어…
노쇠한 기업들 대체할 신흥 글로벌기업 키워야
2013년 한국 경제는 위기를 또 하나 맞고 있다. 그룹 반열에 올라 있는 대기업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웅진·STX·동양그룹이 차례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샐러리맨 신화 중 하나였던 박병엽 부회장의 팬택도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또 다른 중견 대기업들이 다음 타자로 아웃될 처지에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사실상의 '부도 도미노'는 1997년에 겪은 적이 있다. 당시 한보철강·삼미·진로·대농·기아·해태 등이 연속으로 무너지면서 그해 말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에 치욕적인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하지만 지금 많은 기업이 무너져도, 우리가 다시 IMF 위기 같은 것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외환 보유액도 상당하고, 경상수지도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거시 안전망은 국가 부도를 막을 순 있어도, 글로벌 무대에서 차례로 무너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몰락을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1997년의 부도가 성장 시대에 취해 대기업이 과다한 차입과 방만한 경영을 한 탓이라면, 올해 진행되고 있는 대기업의 몰락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이 백기(白旗)를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STX와 팬택은 조선·휴대폰 등에서 중국의 저가 공세를 견디지 못했고, 웅진과 동양은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하지 못하고 국내의 과잉 업종에 뛰어들었다가 넘어진 경우다. 돈을 벌지 못하니까 빚이 불어나고, 이 빚을 시장에서 기업어음(CP) 등으로 돌려 막다가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경제 전문가 가운데는 지금이 외환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외환 위기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중국 변수가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외환 위기 직후에는 아직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무대에 등장하지 않아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 대기업들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들에 막혀 곳곳에서 좌초하고 있다. 삼성처럼 중국보다 몇 수 앞선 기업들은 살아남아서 막대한 이익을 내지만, 중국과 거리를 벌려 놓지 못한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막연한 불안감이었던 중국의 위협이 드디어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중국의 공격을 받은 기업들 가운데 '약한 고리'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 2013년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미국의 출구 전략 여파로 신흥 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한국으로 몰리자 외국인들이 순매수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이들이 사들이는 종목은 몇몇 글로벌 기업에 국한돼 있다. '바이 코리아' 훈풍에 취할 법한 국내 자산운용업계 펀드매니저들의 목소리도 조심스럽다. 삼성·현대차 등 몇 그룹을 빼고 나면 나머지 그룹들이 과연 장기적으로 생존이 가능한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기업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자본주의의 자연법칙이지만, 우리는 노쇠한 기업들을 대체할 만한 신흥 글로벌 기업을 키우지 못한 채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 민주화와 창조경제의 구호가 요란하지만 이 속에 절박한 위기의식은 없다.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 기업에 덜미를 잡힌 우리 기업들이 나가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부도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이 위기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규제를 풀고 비즈니스 환경을 국제화해 새로운 기업을 키우고, 기존 기업의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삼성 등 살아남은 몇몇 기업에 들어가려는 젊은이들의 슬픈 '입사 행렬'만 더욱 길어지고 말 것이다.
'시사정보 큐레이션 > 공유·사회적 경제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먼 지원금 쳐다보는 협동조합 '우후죽순' (0) | 2013.10.23 |
---|---|
마무리 안된 경제민주화 마무리 선언-이주명 아시아경제 논설위원 (0) | 2013.10.23 |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앗아간 서민경제 (0) | 2013.10.23 |
청년들에게 아직 협동조합은 '붐'이 아니다-새사연 보고서 (0) | 2013.10.21 |
서울시 연령별·지역별로 본 협동조합의 현 위치-새사연 보고서 (0) | 2013.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