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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무늬만 IT강국’ 새 기준이 되다

배셰태 2010. 5. 27. 17:38

아이폰, ‘무늬만 IT강국’ 새 기준이 되다

한겨레 IT/과학 2010.05.26 (수)

 

출시 6개월…통신환경 대변화
‘안방 장사’ 제조사·이통사
SW·콘텐츠 후진성 드러내
인터넷 환경·통신서비스 등
‘지각 대응’ 이후 거센 추격전

» 아이폰 국내 출시 이후에 나타난 변화들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은 아이폰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모바일 후진국’고백했다.

 

오는 28일 애플 아이폰이 국내 출시된 지 6개월이 된다.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이 80여개국에 보급된 뒤에야 국내에 들어왔지만, 국내 정보통신시장과 아이티 산업에 끼친 영향은 어느 나라보다 컸다.

 

케이티(KT)는 지난 22일 아이폰이 70만 가입자를 넘었다고 밝혔다. 아이폰이 출시된 88개국 가운데 1년 안에 50만대 넘게 팔린 곳이 미국 등 7개국인 것을 고려하면 국내의 ‘아이폰 열풍’이 확인된다. 판매대수가 50만대에서 60만대에 이르기까지 27일 걸렸는데, 60만대에서 70만대 도달 기간은 25일로, 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는 그만큼 시장을 내줘야 했다. 국내 휴대전화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올해 1월 57%이던 것이 4월에는 50.7%로 떨어졌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용자의 비교와 평가는 더 부담스럽다.

 

» 아이폰출시 이후 국내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추이

손민선 엘지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아이폰 열풍에 대해 “단말기 제조기술, 이동통신 서비스, 모바일 인터넷 이용환경 등에서 국내 아이티 업계가 뒤진다는 것을 자성하게 된 게 무엇보다 큰 영향”이라고 평가한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와 통신 서비스회사들은 궁지에 몰렸지만 소비자는 환호했다. 스마트폰 가격과 데이터요금이 크게 내려갔다. 데이터요금이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지고, 정액상품이 등장했다. 이통사들은 ‘네이트’ ‘멜론’ 같은 폐쇄형 서비스도 개방하고, 단말기의 ‘기능 배제(스펙다운)’관행도 없앴다. 또 ‘매출에 도움이 안된다’며 찬밥 대우하던 무선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투자 경쟁에 나섰다.

 

강국현 케이티(KT) 마케팅전략담당 상무는 “그동안 제조사 영향력과 이통사의 사업모델이 결합해 만들어진 통신사업의 ‘닫힌 정원’(walled garden) 서비스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음성 매출이 줄고 데이터 부문이 늘어나는 세계시장의 흐름과 반대이던 국내 이통사의 매출 구조도 비로소 달라졌다. 케이티 집계로는, 아이폰 사용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440메가로 일반 이용자보다 44배 많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이통사와 손잡고 펼치던 ‘안방 장사’의 이점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이통사와 함께 더 많은 단말기 보조금을 제공하게 됐고, 제품마다 아이폰의 성능과 가격에 비교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아이폰과 비교하면 어때?”라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했고, 이통사와 제조사들은 세계적 인기제품을 경험한 ‘똑똑하고 까다로운’ 소비자 앞에서 곤혹스러워졌다. 이미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도 업그레이드라는 새로운 서비스 요구가 생겨났다.

 

아이폰의 콘텐츠장터인 앱스토어는 반도체와 단말기 등 하드웨어 제조 경쟁력 위주의 국내 아이티 산업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가치를 일깨웠다. 제조사와 이통사간의 끈끈한 협력보다 소비자와 외부개발자들을 끌어들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업계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지각 대응’을 아프게 경험한 국내 업체들은 특유의 ‘빠른 추격’에 나섰다. 삼성과 엘지, 팬택 최근 1㎓ 중앙처리장치를 탑재한 안드로이드 운용체제 기반의 스마트폰인 갤럭시에스(S), 옵티머스큐(Q), 시리우스 각각 선보이며 전용 응용프로그램들도 내놓았다. 삼성은 200여개, 엘지는 100여개의 애플리케이션을 자체 개발해 스마트폰에 탑재하고 있다. 삼성은 최근 국외시장에 독자 운영체제 ‘바다’를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빨리, 싸고, 그리고 완성도 높게 ’ 하드웨어를 만들던 방식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이폰 열풍은 시장에 없던 새로운 가치와 생태계를 만들어낸 ‘창의성’이 핵심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지난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아이폰 출시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폰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폐쇄된 한국의 이동전화 시장을 깨뜨려 개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대로 현실이 된 지난 반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