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이재명식 부동산 정책의 모순] ‘거래절벽 방지’라는 이름의 정책 실패 자백

배셰태 2026. 5. 12. 05:51

<‘거래절벽 방지’라는 이름의 정책 실패 자백>

By Jean Cummings U.S.–Korea Affairs Columnist / Former Publisher, The Asia Post
May 11, 2026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정말 한심스럽다. 이것은 단순히 정책을 조금 잘못 설계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부동산 시장을 중앙 권력이 마음대로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전형적인 ‘지시주의 통제’의 발상 그 자체다.

이재명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억까”라고 치부하며, 세입자가 있는 1주택자에게도 매도 기회를 주되 매수인을 무주택자로 한정하고, 기존 임차인의 잔여 임대기간이 끝난 뒤 입주하게 하며, 그 유예 기간도 최대 2년을 넘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갭투자 허용이 아니라 거래절벽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이것이 법률적 의미의 갭투자 허용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투기를 막겠다며 강한 규제를 세워놓고, 그 규제 때문에 거래가 막히자 다시 예외 조항을 만들어 시장에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것을 ‘거래절벽 방지’라고 부르지만, 시장은 이를 정책의 후퇴이자 규제의 빈틈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거래절벽을 막겠다는 말 자체가, 애초에 정부가 만든 강한 규제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규제를 세게 해서 매물을 끌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를 세금과 대출로 압박하면 집주인들이 버티지 못하고 매물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시장이 얼어붙고 거래절벽 조짐이 보이자, 이번에는 세입자가 있는 집의 매매, 이른바 ‘세 낀 매매’에 예외를 열어주는 방안을 꺼내 들고 있다. 임차인의 잔여 계약 기간을 최대 2년까지 인정해주겠다는 식이다.

이것이 바로 이재명식 부동산 정책의 모순이다. 투기를 막겠다며 규제를 강화해놓고, 그 규제로 거래가 막히자 다시 예외를 뚫어준다. 매물을 끌어내겠다며 집주인을 압박해 놓고, 막상 매물이 잠기자 다시 시장에 퇴로를 만들어 준다. 이런 방식으로는 시장이 안정될 수 없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가 언제 또 규제를 뒤집을지 모른다는 불신만 키울 뿐이다.

이재명은 매수인이 2년 이내 반드시 보증금을 내주고 직접 입주해야 하므로 갭투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가 정한 문구만 보고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입자가 있는 집의 매매 예외가 열리는 순간, 시장은 그것을 ‘세 낀 거래’의 제한적 통로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이 당장 전면적인 갭투자 허용이 아니라고 해도, 갭투자 심리와 세 낀 거래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부동산 시장에서 신호는 법 조항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기대 심리는 정부의 설명보다 먼저 반응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집을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세를 놓는 사람도, 세를 사는 사람도 모두 미래의 제도와 가격을 예상하면서 움직인다.

그런데 정부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규제를 뒤집고, 시장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시 예외를 만들고, 여론이 나빠지면 또다시 규제를 꺼내는 식으로 움직이면 시장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는다. 이는 정부가 스스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신은 결국 자본 도피와 장기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개발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재건축, 재개발, 임대사업, 주택 공급은 모두 긴 시간과 큰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 정책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면 누가 장기 투자를 하겠는가. 결국 공급은 줄고, 거래는 위축되고, 시장은 얼어붙을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두 세입자와 무주택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재명식 부동산 정책의 문제는 하이에크가 지적했던 ‘지식의 문제’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하이에크가 말한 지식의 문제란, 시장에 필요한 정보가 중앙정부의 책상 위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과 현장에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집주인이 왜 팔지 않는지, 세입자가 왜 움직이지 않는지, 어느 지역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 어느 가격에서 거래가 성사될 수 있는지 같은 정보는 중앙 권력이 다 알 수 없다. 그 정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판단과 가격 신호 속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매수인은 2년 안에 반드시 입주해야 하니 갭투자가 아니다”라고 제도 조건을 설명하지만, 실제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매도자, 매수자, 세입자, 투자자, 대출 조건, 지역별 수요, 전세가율, 향후 가격 기대가 모두 얽혀 움직인다.

중앙 권력이 “이 정도 조건이면 괜찮다”고 판단해도, 실제 시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하이에크가 말한 중앙 통제의 한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재명식 부동산 정책은 바로 이 기본을 무시하는 것이다. 마치 대통령이 책상 위에서 명령 하나 내리면 집주인은 매물을 내놓고, 세입자는 보호되고, 집값은 안정되고, 투기는 사라질 것처럼 착각한다. 이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복잡한 생태계를 행정명령으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위험한 권력자의 오만이다.

정부가 공급 확대와 법적 안정성 같은 기본 조건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가격, 거래, 임대시장, 심지어 아파트 단지 출입구 디자인까지 감정과 명령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하이에크가 경고한 중앙 통제의 치명적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재명의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정책을 못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시장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 태도다. 시장을 모르는 권력이 시장을 고치겠다고 나서면,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에게 세금과 대출 압박을 가하면 집주인들이 정부 뜻대로 매물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발상이다. 실제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집주인들은 세금 부담이 커지면 매물을 거두거나, 임대료를 올리거나, 거래를 보류한다. 손실을 그대로 떠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정부가 “투기 제로”를 외치며 규제를 세우면 겉으로는 정의로운 정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규제가 실제 시장에서 어떤 비용을 만들어내는지를 봐야 한다. 공급이 줄고, 거래가 막히고, 임대료가 오르면 그 비용은 결국 세입자와 무주택자에게 돌아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사중손실, 즉 규제로 인해 시장 전체가 잃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부자를 때렸다고 말하지만, 실제 부담은 서민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를 때리면 서민이 산다”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이 얼마나 위험한 포퓰리즘인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부자 대 서민이라는 감정적 구호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집 가진 사람을 압박하면 집 없는 사람이 좋아질 것이라는 사고는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발상이며, 시장의 실제 작동 원리를 무시한 이런 무모한 접근은 결국 공급을 위축시키고, 거래를 막고, 경제 전체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진짜 어이가 없는 것은 아파트 문주, 즉 단지 출입구 디자인까지 정부가 규제하려 든다는 점이다. 반포 래미안트리니원이나 방배 디에이치방배 같은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문주가 너무 화려하면 주변에 위압감과 위화감을 준다며 설계 축소 압박을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발상인가.

조합원들이 자기 돈으로 짓는 아파트 단지의 출입구까지 국가가 “서민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주관적, 이념적 이유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재산권과 소비 선택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다. 물론 안전 문제나 도시 미관에 관한 합리적 기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화려해서 위화감을 준다”는 식의 감정적 기준으로 민간 재산의 설계와 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것은 보이는 부의 차이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낮추려는 전형적인 하향 평준화의 발상이요 공산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사유재산권과 소비자 선택의 자유다. 시장 수요에 따라 고급 디자인을 선택하고, 자기 돈을 들여 더 나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을 “위화감”이라는 감정으로 막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부의 축적 자체를 불편해하고, 드러나는 차이를 국가가 지워야 한다고 보는 사회주의식 평등주의에 가깝다.

이재명은 왜 자꾸 시장의 자율성과 사유재산의 축적을 불편한 것으로 바라보는 공산주의체제 모델에 끌리는 것인가. 그가 말하는 부동산 개혁은 과연 주거 안정을 위한 현실적 정책인가, 아니면 부의 축적 자체를 죄악시하고 국가가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이념적 충동에 가까운 것인가. 부동산 정책은 부자를 미워하는 감정으로 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거 문제는 국민의 삶과 자산, 금융, 노동, 지역 균형, 세대 간 자산 형성까지 모두 연결된 복잡한 문제다.

뉴욕 맨해튼 주변의 고급 주거지,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부유한 도시들, 두바이처럼 자본과 개발이 집중되며 만들어낸 화려한 도시 공간들을 모두 불평등의 상징으로만 볼 것인가. 물론 그런 도시들에도 빈부 격차와 주거비 상승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들은 자본, 산업, 금융, 기술, 관광, 건설, 서비스업이 결합해 거대한 경제 활동을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유한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시장 참여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가 열렸으며, 사회 전체가 그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있다.

그런데 이재명의 사고는 부의 형성과 도시 성장의 과정을 복합적으로 보려 하기보다, 부자와 고급 주거지 자체를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부유한 지역을 없애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주거와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시장의 길을 넓히는 것이 해답이다.

이재명이 정말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부자를 억누르고 시장을 통제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동산을 계급투쟁의 도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공급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이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고급 주거지를 미워한다고 서민 주거가 안정되는 것이 아니다. 강남의 문주를 낮춘다고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과시가 아니라 공급 확대다. 수요가 있는 곳에는 주택 공급을 늘리고, 재건축과 재개발을 합리적으로 풀고, 임대시장이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금과 대출 규제도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흔들 것이 아니라, 시장이 예측할 수 있는 원칙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집주인도, 세입자도, 무주택자도, 건설사도 장기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공급 확대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규제만 쌓는다. 규제를 쌓다가 거래가 막히면 예외를 주고, 예외를 주면 다시 갭투자 심리와 세 낀 거래 수요가 살아날 수 있다. 그것을 막겠다며 또 규제를 강화하면 매물은 잠기고 임대료는 오른다. 이것이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의 악순환이며,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이재명이 말하는 “거래절벽 방지”라는 표현은 오히려 자신의 정책이 만들어낸 시장 경색을 스스로 드러내는 말이다. 시장은 이런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가 오늘 만든 규제가 내일 또 바뀔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매도자는 버티고, 매수자는 기다리고, 세입자는 불안해진다.

유럽의 과도한 규제 국가들이 이미 실패로 보여준 경제논리를, 이재명은 이제 와서 다시 추진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이를 보면서 대체 이재명이 원하는 국가의 모습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성공한 사례를 모델로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남들이 이미 실패한 모델을 뒤늦게 따라가겠다는 경제논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성장해온 한국의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그것은 서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공급을 위축시키고 자본의 활력을 떨어뜨리며 결국 경제를 후퇴시키는 통제주의적 실험일 뿐이다.

임대료를 억누르고, 개발을 제한하고, 시장을 지나치게 통제하면 처음에는 서민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주택 공급은 줄고, 주거비는 오르고, 젊은 세대와 저소득층은 더 좋은 주거지에서 밀려난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시장은 다른 방식으로 복수한다.

결국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은 논리적으로도 일관되지 않고, 시장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투기를 잡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투기 심리가 다시 들어올 틈을 만들고, 서민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세입자와 무주택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면서 오히려 정책 불확실성을 키우고, 주거 안정을 말하면서 사유재산권과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려 한다.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은 무능한 정책 실험일 뿐 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 불신에서 출발한 통제주의적 발상이다. 그는 시장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의심하고, 자본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죄악시하며, 사유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할 때 언제든 손댈 수 있는 통제 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이런 사람이 부동산 시장을 건드리면 결과는 뻔하다. 부자를 때리면 서민이 산다는 단순한 포퓰리즘은 결국 시장 전체를 왜곡시키고, 그 부담은 다시 서민에게 돌아온다.

부동산은 국민 자산 대부분이 걸린 복잡한 시장이다. 한 사람의 명령과 분노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이 불편하다고 해서 시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고급 주거지가 보기 싫다고 해서 서민 주거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을 억지로 누르면 그 압력은 다른 곳에서 터진다. 세금으로 누르면 임대료로 터지고, 대출로 누르면 거래절벽으로 터지고, 거래를 막으면 매물 잠김으로 터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재명은 부동산 정책에서 손을 떼는 것이 제일 낫다. 시장 자율을 존중하고, 정부는 공급 확대와 예측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하면 된다. 지금처럼 부동산을 이념의 실험장으로 만들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서민과 무주택자다.

부동산은 분노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명령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사회주의식 상상력으로 실험할 문제도 아니다.시장 원리를 무시한 권력이 부동산을 건드리면,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출처: Jean Cummings 페이스북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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