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정부영 칼럼]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는 아주 쉬운 방법

배셰태 2026. 2. 18. 16:21

[정부영 칼럼]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는 아주 쉬운 방법
트루스데일리 2026.02.15 정부영 트루스코리아 대표
https://www.truth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60

- 좌파는 진실에 분노하고 우파는 거짓에 분노한다

                        정부영 트루스코리아 대표

정치의 본질은 가치의 충돌이다. 그러나 그 충돌이 언제나 진실과 사실에 기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을 들여다보면,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정책이나 제도 이전에 ‘진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우파는 거짓에 분노하고, 좌파는 진실에 분노한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다.

좌파 정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도덕적 우월감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정의와 선의 독점자처럼 포장하며, 반대 진영을 악과 불의의 집단으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그 화려한 언어의 이면에는 거짓말·말 바꾸기·위선·왜곡·조작·날조가 일상처럼 반복된다. 사실이 드러나도 사과는 없다. 대신 또 다른 해명, 또 다른 구실로 진실을 덮고 왜곡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거짓을 스스로 믿는 단계에 이른다.

조지 오웰은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했다. 오늘의 한국 정치가 바로 그 시대다. 좌파는 진실을 불편해한다. 진실은 선동을 방해하고, 감정 동원을 차단하며, 도덕적 가면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팩트다. 반면 우파를 자극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우파는 사실과 법치·책임이라는 기준 위에서 분노한다.

좌파의 또 다른 속성은 편 가르기다. 사회를 동반자와 협력의 공동체로 보지 않고, 적과 동지의 전장으로 인식한다. 국민은 흙수저와 금수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로 갈라지고, 정치적 반대자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증오는 미덕이 되고, 책임은 사라진다. 개인의 실패는 언제나 제도 탓·국가 탓·가진 자 탓으로 전가된다.

좌파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지만, 법치에는 관대하지 않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은 악법이 되고, 위법과 탈법은 ‘개혁의 과정’으로 미화된다. 정부의 돈과 권한은 공적 자산이 아니라 사적 도구처럼 사용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가장 도덕적인 집단임을 자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위선은 단순한 거짓말보다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 도덕을 외치며 비도덕을 행할 때, 사회는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대북 인식에서도 차이는 분명하다. 좌파는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만 보며, 안보 위협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 남침 전쟁조차 내전으로 흐리고, 대한민국을 지킨 동맹을 점령군으로 폄훼한다. 반면 우파는 평화를 원하지만, 그 전제는 현실 인식과 힘의 균형임을 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며, 안보 없는 인권은 공허하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좌파는 선전과 선동에 능하다. 언어를 바꾸고 개념을 왜곡해 현실을 재단한다. 반미를 외치면서도 미국으로 향하고, 평등을 말하면서 특권을 누린다. 교육 평준화를 주장하지만 자녀는 예외다. 규칙은 타인에게만 적용된다. 불리하면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고, 여론이 악화되면 언론과 제도를 공격한다.

이 모든 현상의 공통점은 하나다. 진실보다 서사가 우선되고, 책임보다 명분이 앞선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우파의 정치 철학은 경험과 현실, 점진적 변화에 기반한다. 자유와 책임, 법치와 안보를 국가 공동체의 토대로 삼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거짓을 거짓이라 부를 최소한의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 위에 서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자를 적으로 돌리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좌파가 진실에 분노하고 우파가 거짓에 분노하는 이 역설적 현실이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의 갈등은 사라지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많은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