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국민의힘이 윤어게인을 버리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재앙이다

배셰태 2026. 2. 10. 20:08

□국민의힘이 윤어게인을 버리는 것은 재앙이다

Jean Cummings, Political Columnist /Former Publisher, The Asia Post February 10, 2026

정치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하나의 공통된 현상이 있다. 정치인들은 대체로 ‘진실’이 아니라 ‘승리 가능성’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정치만의 특수 현상이 아니라, 어느 국가의 정치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 특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 보수 정치인들의 행태는 도덕적 평가 이전에 전형적인 정치 실패 패턴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국 보수 정치권, 특히 국민의힘이 구조적 붕괴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다.

<정치인의 ‘선거 최대화’ 논리와 이길 수 있는 서사의 오판>

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이 현재 구조적 붕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학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듯, 정치인들이 옳은 길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이들의 ‘선거 최대화’ 논리 때문이다. 정치인은 신념 집단이 아니라 재선을 목표로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정치인들이 정의롭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거에서의 승리다. 이들은 일단 승리해야만 이후에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나 정의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적 비용을 감내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정치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일정 부분 성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정치인이 이길 수 있는 서사를 잘못 판단하는 순간이다. 과연 정치인들은 항상 이길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김민수 최고위원은 최근 다소 충격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윤어게인을 외쳐서는 중간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사실상 윤 어게인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한국 보수가 지나치게 힘이 약하고, 마땅한 선두 주자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그나마 장동혁 대표와 김민수 최고의원이 보여온 열정과 용기에 기대를 걸어왔다.

앞에서 용기를 내어 싸우는 젊은 정치인들과 윤어게인이 힘을 합치고, 보수 진영이 하나로 결집한다면 최소한의 돌파구는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이번 김민수 최고의원의 거리두기 선택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사실 낯설지 않다. 정치란 늘 배신과 계산이 반복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특정 정치인을 백 퍼센트 신뢰하고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애초에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보수 국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의 보수 국민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가. 단순히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싫어서인가. 단순히 윤석열 지지자이기 때문인가. 혹은 근거 없는 음모론에 심취한 집단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의 보수 국민들이 싸우는 이유는, 한국 정치권이 사실을 조작하고 거짓된 프레임으로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부정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체제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와 정황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윤어게인’이라는 구호는 윤석열 전 대통령 개인을 다시 권좌에 올리자는 의미라기 보다, 진실 회복과 정의 구현을 요구하는 상징적 구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부정선거 문제에 대해 침묵했고,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이는 해당 사안이 잘못이었다는 전제를 스스로 먼저 깔아버린 행위였고, 그 결과 보수 국민들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정당성의 끈을 정치권 스스로 잘라버린 셈이 되었다.

결국 이는 정의의 문제보다 자신들의 재선과 정치적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한 것인가.

거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청년들과 함께 거리에서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적극적인 보수 세력을 패싱한 채 중도와 샤이 보수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계산.. 숫자에서도 밀리고, 명분에서도 밀리는 상황을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믿은 오만. 그 결과가 지금이다.

<중도 환상’과 ‘엘리트 분리 증후군’: 자멸로 가는 실패 모델>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 국민이 왜 분노하는지, 왜 거리로 나오는지 그 이유를 듣고, 설령 불리하더라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진정한 정치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임이 모이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다르다. 국민은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연장해 주는 도구로 취급되고, 목소리가 커질수록 관리해야 할 불편한 세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윤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들은 정치권에 의해 고립되고, 중도층에게는 ‘이상한 사람들’로 낙인 찍힌다. 그 결과 보수는 싸울 명분과 에너지를 동시에 상실하게 된다.

중도와 샤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이들은 앞장서서 투쟁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다만 흐름을 관망하다가 세력이 강하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이동할 뿐이다. 따라서 윤어게인 세력과 거리의 움직임이라는 실제 동원 기반을 배제한 채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판단은 정치 현실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싸워 봤자 소용 없다”, “보수 정치인들은 썩었고",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는 청년들의 체념이 확산 된다면, 이는 정당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꺾이는 순간이 된다.

이재명은 과거 “굳이 건드릴 필요도 없으며, 그냥 두면 자기들끼리 싸우다 무너질 것”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빠져 있는 핵심 오류는 이른바 ‘중도 환상’이다. 중도를 고정된 성향 집단으로 착각한 채, 가장 강하게 싸우고 있는 세력과 거리를 두면 중도가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서 중도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확신의 결과로 따라오는 집단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엘리트 분리 증후군(Elite Detachment Syndrome)’이다. 이는 엘리트 정치인이 자신이 대표해야 할 대중과 정서적으로 단절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금 '국민의힘'이 보이는 태도가 정확히 여기에 해당한다. 헌신적으로 싸우는 지지층을 동반자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리스크로 인식하는 순간, 정치는 대표가 아닌 관리의 영역으로 전락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자기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과 정치와, 동원 능력을 상실하는 초기 붕괴 단계에 진입해 있다. 이는 음모도, 감정 과잉도 아닌 정치학 교과서에 그대로 등장하는 실패 모델이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수 국민들에게 싸울 이유를 하나씩 제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치 세력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에서 먼저 무너진다.

<역사적 상처의 ‘회피’가 아닌 ‘정면 돌파’ 필요성>

여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중요한 맥락이 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장동혁 대표의 단식 투쟁 현장을 직접 찾아 단식을 만류하는 장면은, 많은 보수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방문이 아니라, 박근혜 지지층과 국민의힘이 다시 한 번 정서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문제에 대해 명확한 지지 입장을 내지 않고 물러서 있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보수 내부의 지지층 구성과 세대적 감정 구조를 의식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윤 전 대통령 지지층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정책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돌파하고 해결해 나가야하는 문제이지 회피할 문제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층에게 윤석열이라는 인물은 '탄핵의 칼날을 휘두른 검사'라는 낙인이 깊게 새겨져 있다. 반대로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층은 그가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좌파 세력과 정면으로 맞선 '투사'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정당 지도부는, 이 역사적 비극을 '체제 수호'라는 더 큰 가치 아래 녹여내는 용광로 정치를 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지지세만 유지하려는 '계파적 계산'에 머물러 있다. 이는 국민의힘의 '구조적 붕괴'를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디지털 보수 연대와 청년의 힘>

또한 윤어게인 청년들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문제는 한국 보수 진영 전체가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직시해야 할 사안이다..

세상은 이미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외부, 특히 미국의 전략적 도움 없이는 스스로 정치권의 부패한 구조를 혁파하기 어려울 만큼 체제 위기가 심화된 상태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미국 정치권의 심장부에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내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 세력은 누구인지를 한국의 보수진영이 잊고 있다.

이들이 누구인가? 구태의연한 방식에 머물러 있는 장년층이 아니다. 바로 SNS를 무기로 전 세계 보수 진영과 실시간으로 교신하는 젊은 청년들의 디지털 활동이다.

지금 한국의 ‘국민의힘’과 기성 정치권은 본인들 보다 한국의 청년들이 미국의 보수 주류 세력과 훨씬 더 깊고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특히 "터닝포인트 USA(TPUSA)"를 필두로 한 미국의 신보수 세력과 한국 청년들의 강력한 접촉은 이미 단순한 교류를 넘어섰다.

이 연대는 한국 내 체제 위기 세력에 대한 실질적인 국제적 제재를 끌어내고 있으며, 침묵 속에 묻혔던 부정선거 문제를 국제 사회의 공론장으로 끌어 올리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 지도부와 안일한 중장년층은 이 거대한 지각변동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인식해 본 적이 있는가? 청년들이 미국 보수 진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른바 ‘자유의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동안, 기성 정치권은 여전히 낡은 계산법에 매달린 채 자신들이 이미 시대의 흐름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안일하고 구태한 정치를 반복하는 위험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민수 최고위원이 윤어게인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들과의 손절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충격이라고 느낀 점이 바로 이부분이었다.

한국의 보수진영은 지금 거리에 나온 청년들이 얼마나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세력들인지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놀라웠던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윤 전 대통령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일부 지지층을 의식해 윤어게인 세력, 특히 거리에서 싸워 온 청년층과 거리를 두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보수의 동원력과 미래를 동시에 훼손하는 안타까운 선택이며 국민의힘을 붕괴 시키겠다는 말과 다를바 없는 발언이다.

<네팔의 사례 -청년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세계적 정치 변혁>

이미 해외에서는 이 청년 네트워크가 국가의 운명을 바꾼 실례가 존재한다. 최근 네팔의 낡은 정치를 뒤흔든 주역은 SNS 네트워크로 무장한 10대와 20대 청년들이었다.

다가올 선거에서 이들 20-30대 청년 세대는 스스로 선거위원회를 창설하고, 디지털 기술을 동원해 선거를 직접 관리하며 투표의 무결성을 지키는 주체로 나섰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이 바로 이 청년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인가? 이들이 한국의 '윤어게인' 청년들처럼 미국의 보수 가치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강력한 신뢰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엘리트가 아니라, 자신들과 가치를 공유하며 투명성을 요구하는 청년 세대를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하고 있다. 즉,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보수의 싸움은 지지층 수호인가, 국가 생존의 문제인가>

-대통합의 결단-

지금 한국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회손하고있는 친북, 친중세력의 위험한 질주를 막고 나라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급선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 세력들은 좌파세력들이었고, 그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내던져 준 부역자들은 국힘 내부에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를 정면 돌파하려 했다가 역시 내부의 배신자들에 의해 실패했다.  

정부 내 친중, 친북 세력을 척결하고, 무너진 국가 체제를 바로 세우는 일은 그 어떤 파벌의 이해관계 보다 우선하는 보수의 절대적 가치다.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가 해야 할 선택은 ‘윤어게인’과 거리를 두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겁한 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당 지도부가 내부의 배신자들을 척결하고, 정치적 명운을 걸고 맨 앞에 서서, 진정한 보수 연합을 만들어내며, 보수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를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몸을 사리며, 정의와 진실을 내던져 버리고, 분할 관리 정치를 펼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의힘은 구조적 붕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거리에 나가 있는 청년들을 외면하는 순간, 국민의 힘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

<미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 - MAGA가 보여준 지지층 결집의 승리>

미국의 MAGA 역시 처음부터 주류로 받아들여진 세력이 아니었다. 언론과 정치권, 학계로부터 음모론 집단, 극단주의 세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집단이라는 낙인이 끊임없이 붙었다.

더욱이 당시 미국은 좌파 세력이 국가 전반을 거의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수가 붕괴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과 거리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공개적으로 이들을 지지하고 함께 했으며, 그들의 분노와 문제 제기를 미국 정치의 실체적 목소리로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함께하겠다”, “내가 싸우겠다”, “내가 제거하겠다”고 말하며,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선택을 감행했다.

이 선택은 미국의 중도와 샤이들을 움직이게 만든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는 강력한 ‘신호 효과’를 만들어냈다.사회적으로 음모론자로 낙인찍힌 세력과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함께 서는 순간, 관망하던 다수는 이렇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저들을 틀렸다고 규정해온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트럼프와 보수 정치권이 MAGA와 함께 강하게 결집하자, 침묵하던 샤이 보수와 중도층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장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확신과 결집된 힘을 확인한 뒤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MAGA는 ‘극단적 소수’에서 ‘지배적 소수’를 거쳐, 결국 다수 연합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반대로 지금 한국 보수 정치권이 하고 있는 선택은 이와 정반대다. 가장 강하게 싸우고 있는 세력과 거리를 두고, 그들을 부담스러운 리스크로 분리한 채, 중도와 샤이만으로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명심해야 한다. 정치에서 중도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확신의 결과로 따라오는 집단이다. 가장 결집된 세력과 함께 서지 못하는 정치권은, 중도의 선택 또한 받을 수 없다.

이 점에서 현재 국민의힘의 전략은 도덕적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실패한 선택이며, 이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Jean Cummings 페이스북 2026.02.10
https://www.facebook.com/share/p/1Aj6PjkJyE/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