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미중 패권전쟁] 미국의 패권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 한국 좌파들의 치명적 오해

배셰태 2026. 2. 6. 10:44

□미국의 패권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 – 한국 좌파들의 치명적 오해

Jean Cummings, Political Columnist /Former Publisher, The Asia Post February 05, 2026

2025년 4분기 미국 경제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성과를 거두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애틀랜타 연준의 GDPNow 모델은 한때 연율 5.3% 라는 경이적인 추정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당초 전문가 예상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중국의 4분기 성장률이 4.5% 내외에 머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분기별 성장률에서 미국이 중국을 앞지르는 이례적인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는 세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를 묻고, 보수는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또한, 좌파는 합의가 질서를 만든다고 믿고, 보수는 압도적 힘이 질서를 강제한다고 본다.

좌파들이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의 가장 큰 오류는, 트럼프가 국제 협정 탈퇴, 무역 전쟁,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 패권)"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66개에 달하는 국제 협정을 파기하고, 그들의 시각에서는 동맹국들을 소외시켰으며, 이란, 중동, 베네수엘라 문제에서의 과도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결과로 트럼프가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스스로 앞당겼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BRICS와 66으로 상징되는 다극화 질서, 탈달러화, 중동 블록의 부상을 더 빠르게 진행시켰고, 미국 패권의 침식 속도 역시 빨라지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좌파들의 치명적인 헛점은 전형적인 ‘제도, 합의 중심 패권관’에 갇혀, 현실주의적 패권 작동 원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좌파와 보수는 미국 우선주의에 대해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가장 중요한 구조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

좌파들은 동맹, 다자 협력, 규범 유지가 패권을 유지시켜 준다는 리버럴 국제질서 공식으로만 보기 때문에 항상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현상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바라보면, 이러한 국제기구의 탈퇴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이라고 보고, 국제관계에서 마찰을 겪으면 국가가 쇠퇴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패권이 약한 국가들에게나 통하는 관리 방식이며, 패권이 살아 있을 때의 작동 방식이 아니란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들이 놓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패권의 힘은 다자간의 협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할때서 오는 비대칭에서 생기는 것이란 점이다.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진짜 균형은 상대가 “협력하지 않으면 더 손해”라고 느낄 때 만들어진다.

그 전제는, 첫번째 군사력이다. 그리고 금융 지배력, 결제 통화, 제재 능력 등 이 모두가 한 축에 집중돼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 패권이다. 그리고 이걸 동시에 가진 나라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하나 뿐이다. 특히 기축통화인 달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달러 패권은 “모두가 미국을 좋아해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유지된다는 점이다. 무역 결제, 원자재 가격, 부채 구조, 금융 파생상품, 제재 시스템, 이 모든 게 달러 기반으로 얽혀 있다. 탈달러를 외칠 수는 있어도, 대체 시스템을 완성한 국가는 없다.

그래서 트럼프의 행동을 “패권 붕괴 가속”으로만 보는 건, 힘의 작동을 결과가 아니라 감정으로만 해석한 것이며 지금 한국의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좌파들이 민족자주주의와 반제국주의라는 정서적 프레임을 통해, 미국의 패권을 곧바로 ‘폭력’이나 ‘굴욕’의 문제로 환원해버린다는 점이다.

이들은 동맹을 협력의 수단이 아니라 종속의 상징으로 이해하며, 미국과의 연대를 국가 전략이 아닌 사대주의로 치환한다. 그 결과 외교는 현실의 문제에서 이탈해, 국익이 아니라 자존심과 분노의 언어로 재단해, 실제로 미국을 이용한 자국의 이익을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감정에 몰입된 한국 좌파들의 이러한 오판이 치명적인 이유는,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구조적 전환 속에서 미국의 우방국들이 중국을 패싱하고 핵심 산업과 자본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이 어쩌면 국가의 운명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최대의 호황 기회마저 스스로 걷어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강력한 우방 관계를 유지하며 신뢰를 축적했다면, 한국의 내수 제조업과 산업 전반은 지금과는 정반대의 흐름, 즉 전례 없는 호황 국면에 진입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정권 출범 직전까지만 해도, K-산업 전반이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관심과 수요를 얻고 있었던 현상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수요자들은 이재명 정권 이후 한국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급격한 이미지 추락은 단순한 외교 실패를 넘어, 한국 경제와 산업 구조에 스스로 상처를 입힌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듯, 국가 이익의 문제를 자존심과 이념의 문제로 치환하며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 결과다.

잘못된 국가 정책이 냉정한 계산 대신 감정과 이념에 의해 결정될 때, 그 대가는 결국 국가 전체가 치르게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프렌드 쇼어링' 정책에 따른 반도체, 배터리 보조금 수혜와 차세대 에너지 공급망 선점이라는 천문학적인 실익을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 기회비용의 상실은 결국 한국 핵심 산업의 공동화와 국가 경쟁력의 영구적인 후퇴라는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로 직결될 것이다.

트럼프의 관점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해지는 순간은, 동맹이 미국을 떠날 때가 아니라 미국을 무시해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국가들이 늘어날 때다. 그래서 그는 국제 협정을 깨고, 관세를 부과하며, 안보 비용을 청구하고,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분명 인기도 없고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 그러나 이는 패권을 재각성시키려는 제국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동맹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통해 질서를 다시 각인시키는 방식이다. 그 결과, 트럼프 이후의 미국 패권은 약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노골적이고 강경한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이를 불편해하거나 거부할 수는 있지만, 거부한다고 해서 힘의 구조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현재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이다.

BRICS, 다극화, 탈달러 흐름도 마찬가지다. 이는 트럼프 때문에 새로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이미 누적돼 있던 불만과 구조적 한계를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만든 결과에 가깝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극화는 미국이 약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미국이 다시 힘을 행사할 때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강자가 힘을 쓰면 약자들은 연대하려 한다. 그러나 그 연대 자체가 곧 미국이 여전히 최강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좌파들은 트럼프의 미국이 ‘착하지 않기’ 때문에 패권이 무너진다고 본다. 그러나 패권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미국의 패권은 국제사회에서 약해 보이는 순간에 무너진다. 역사적으로 어느 쪽이 맞았는가. 정답은 후자다.

결국 달러를 쥔 패권국만이 이러한 게임을 거칠게 밀어 붙일 수 있으며, 트럼프는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때문에 미국이 위험해졌고, 미국이 붕괴할 것”이라는 좌파적 프레임은 현실의 힘의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은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잇따른 우려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한미동맹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시장과 외교 무대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미국의 패권은 지금 시점에서 어느 국가도 쉽게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를 비판한다고 해서 한국의 국익이 자동으로 증진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좌파들은 주권과 자존심을 앞세워 감정적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대결이 과연 한국에 이익을 가져올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이어질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의 협력 속에서 성장해 온 국가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미국의 협력 없이도 독자적으로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 봐야 한다.

지금의 한국이 세계 패권국인 미국을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여유로운 위치에 있는지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관세가 다시 25%로 인상되자 한국 측 인사들이 급히 워싱턴으로 향해 “약속을 지키겠다”고 설득에 나섰지만, 워싱턴은 이들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약속도 지키지 않고 거짓만 반복하는 신용이 없는 정부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향후 한국에 경제 위기가 닥친다면, 그때도 다시 미국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 미국이 “미국을 침략자라 비난하더니 이제 와서 왜 도움을 구하느냐”고 선을 긋는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지를 갖게 될 것인가. 미국 없이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재명 지지자들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이 굶주리던 시절, 독일까지 찾아가 사정을 하며 국가 재건을 위한 자금을 끌어 왔다. 그것을 비굴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국가 지도자로서 국가를 살리기 위해 감당해야 할 책임있는 행동이었는가.

지금의 이재명 정권은,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강대국 앞에서 체면을 내려 놓을 각오와 현실 감각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질문을 회피한 채 자존심과 이념만을 앞세운다면,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르게 될 것이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라이베리아의 조셉 보아카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백악관을 방문해, 고령의 몸으로 매우 정중한 태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천천히 영어로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더 이상 중국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는 트럼프에게 투자를 요청했고, 당시 이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아카이 대통령은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읽고 있었다는 점에서 영리했다.

미국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면, 체면을 앞세우는 대신 고개를 낮추고 국익을 요청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는 굴욕이 아니라, 상대의 힘을 이용해 결과를 얻어내는 전략이다. 사업에서 계약을 따낼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존중하고 설득하는 기술은 굴종이 아니라 실력이다.

보아카이 대통령은 트럼프가 미국에 도움이 되는 국가, 그리고 미국과 강한 동맹을 원하는 지도자에게는 언제든 기회를 열어 둔다는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선택했고,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절제되고 예의 바른 태도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다.

보아카이 대통령처럼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적 실익을 얻는 것이, 세계 패권을 쥔 국가의 지도자를 끊임없이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세계 최빈국의 대통령 조차 현실을 읽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이재명 정권이 보여주는 현실 감각의 부재는 한국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든다.

<백악관 포스팅>

황금의 시대가 왔다

**지멘스 에너지(Siemens Energy)**가 미국에 **무려 10억 달러(1,000,000,000달러)**를 투자하며, 전국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업을 확장한다!

출처: Jean Cummings 페이스북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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