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12.3 비상계엄은 좌파화로 굳어지던 정국에 저항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단독 전투

배셰태 2025. 12. 3. 22:06

※12.3 비상계엄은 좌파화로 굳어지던 정국에 저항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단독 전투

계엄 선포한 지 1년, 당파를 떠나 몇 가지는 분명히 평가할 수 있다. 노골적 친북주의 및 과반수 만능주의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점, 선거제도 특히 부정 논란의 핵심인 사전 선거제도의 개선 요구는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여권이 당당하다면 사전 선거일 축소 등의 제도 개혁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미 무너졌고 그 판결은 법관의 출신 지역과 임용 권력 소스 등을 고려한 세속의 예단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며 헌재소장이 재판관을 개별적으로 특정 판결로 끌어들이는 괴이한 ‘정치’ 과정이 판결에 관행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 계엄으로 시선을 돌려놓는 바람에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뒤집을 재판을 중단시켰지만, 이재명의 이 임시 지위를 당연시 하지 않겠다는 정서를 확인한 점, 이 와중에도 북중러 vs 한미일 구도 속에서 대통령은 한국의 전략적 생존 방향에 모호하다는 점, 온건한 무혈 계엄은 교만한 군중 및 반대 정파에 의해 이처럼 조롱받을 것이므로 앞으로 어느 대통령이건 일단 계엄을 선포한다면 강포한 유혈 사태를 취하라는 역설을 가르친 셈인데 이는 특히 법원이 내란죄로 판결을 내린다면 더욱 그럴 거라는 점.

촛불 광기로 길들여진 군중주의, 정부 각료들에 대한 끝없이 이어진 탄핵 소추와 의도적 국정 마비 야기, 과반수의 폭거로 권력분립 헌정이 무너졌고 대통령은 좌파의 조롱 대상이 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헌법이 부여한 계엄이라도 발동하여 이를 국민 모두에게 국정 의제화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윤석열은 우파에게서 조차 영원히 거부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부시(아버지)와 고르바초프가 냉전 종식을 선언한 날(1989년)이나, 윤석열 계엄(2024)은 한국은 좌우 열전 상황에 있음을 알려 준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개인의 정치적 손익 계산에서만 보면, 남는 게 하나 없을 필패의 게임임은 알고 있었다. 당시 술을 마셨을 거라는 추측은 경박한 평가이다. 최고 결정자의 정책 결정에서 내밀한 사적 동기는 중요하지 않고 내려진 결정이 중요하다.

존 F. 케네디는 가끔 그의 지적 수준을 초과하는 말을 했다: “최종적 결정의 핵심이란 관찰자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으며, 흔히 정책 결정자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The essence of ultimate decision remains impenetrable to the observer - often, indeed, to the decider himself).

중요한 점은 12.3 계엄이 윤석열 대통령의 진의와 개인적 이해가 무엇인지는 별개로, 좌파화로 굳어지던 정국에 저항하는 대통령의 특별하고도 최종적인 저항의 결정이었다는 국면이다. 이 의미로 한국 정치사에서 이 날을 기억할 수 있다. 그게 대통령의 단독 전투였음은 군, 내각, 경찰 등이 실증해 주었다.

내란을 인정하고는 선처를 받는 거래를 해서도 안 되고, 사과가 이미 남아도는 철에 사과를 강요해도 결코 사과해서도 안 된다. 타락한 법원에 의해 처벌을 선고 받을지언정 최고 정책 결정자의 도덕적 자부심을 지키는 것이 좌파에게 완패하지 않는 길이고 이 조치가 한국 정치에 주는 경고의 의미를 남기는 것이다.

출처: 김행범(부산대 행정대학원 교수) 페이스북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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