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윤-한 회동 막전 막후] 한동훈, ‘명예혁명’ 시도했지만… 성급한 권력투쟁이 ‘大事’ 그르쳐

배셰태 2024. 10. 24. 17:25

한동훈, ‘명예혁명’ 시도했지만… 성급한 권력투쟁이 ‘大事’ 그르쳐
문화일보 2024.10.22 허민 전임 기자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4102201030230000001

허민의 정치카페 - 윤-한 회동 막전 막후

- 韓, 여권 주도권 꿈꾸며 세세한 요구안 내밀어… ‘특검법 못 막을까 걱정’ 협박성 발언도
- 尹은 담담하게 반론 제시하며 권력누수 방어… 결과적 빈손 회동으로 與 분열 위기 커져

윤석열 대통령과의 21일 회동에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세운 전략은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요구안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면 좋고, 아니더라도 대통령권력과 싸운 대안권력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은 ‘주도권 유지’ 전략으로 대응했다. 여권 2인자인 당 대표의 대국민 여론전에 말릴 경우 1인자인 대통령이 돌이킬 수 없는 권력 누수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 대표의 명예혁명은 실패했다.

◇대화의 복기

대통령실 등 여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 보면 한 대표는 이날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 즉 대외활동 중단·인적 쇄신·의혹 규명 절차 협조에 대한 수용을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특별감찰관 임명과 여야의정협의체 조속한 출범 필요성도 밝혔다. 한 대표는 특히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김 여사 특검법’ 통과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과 여당 인사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담담하게 대응했다. 첫째, 대외활동 중단과 관련해서는 “김 여사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고 이미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둘째, 인적 쇄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조목조목 알려주면 그 내용을 보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 셋째, 여사 의혹 규명 문제는 “검찰 수사를 먼저 지켜보자.” 명태균 관련 의혹은 “대통령을 겨냥한 건데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이런저런 해명을 하는 게 어색하지 않으냐.”

두 사람은 야당의 탄핵 공세 및 헌정 유린 행태에 공동 대응하고 4대 개혁 추진에도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만나기 전엔 회동 사실과 의제 등이 대국민 여론몰이 성격으로 사전 공개된 것에 대해 상당히 언짢아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이날 회동에서 한 대표는 세세하게 요구했고 윤 대통령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관전평이다.

대통령실 고위 인사 A 씨는 “내용과 흐름을 보면 성공적인 회담인데 왜 밖에는 ‘결렬된 회담’이다, ‘빈손 회담’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알려졌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여권 인사 B 씨는 “한 대표가 외려 실패한 회담이 돼야 대통령을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고 보는 건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막전 막후

윤-한 회동은 사실 재·보선에 대한 걱정으로 성사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싱가포르·라오스 등 동남아 3국을 순방하면서도 해외 현지에서 정진석 비서실장과 윤-한 회동과 관련해 두 차례나 통화를 했다.

첫 번째 통화는 7일 필리핀 마닐라에 있을 때. 정 실장은 윤 대통령에게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한 대표와의 면담 필요성을 건의했고,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 당 대표가 선거 때문에 바쁠 테니 투표일인 16일 이후로 추진하라”며 이를 수용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갈등 때문에 선거가 어려워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회동 건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통화는 10일 저녁 라오스에 체류 중일 때. 윤 대통령은 재·보선 현황을 궁금해하면서 정 실장에게 한 대표와의 면담을 차질 없이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부산 금정과 같은 집권당 텃밭에서 패할 경우 여권의 동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에 윤-한 회동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인적 쇄신,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3대 요구를 내걸고 이미 열흘 가까이 대국민 선전전을 펴온 상태였다. 한 대표가 회동에 임한 일차적 목적은 윤과 한, 둘 사이의 갑을 관계 역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의 국정 운영 정상화 요구는 윤 대통령에게 자신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라는 촉구이자, 김건희 여사의 ‘아웃’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와 통했다. 즉 윤석열-한동훈의 권력투쟁이자 한동훈-김건희의 인정투쟁이었다. 한 대표의 궁극적 목적은 대통령의 완전 승복을 받아내 정국 주도권을 쥐는 것에 있었다. 그러려면 대통령과의 권력투쟁은 필연적이며 여사 관련 의혹이 그 매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을 수 있다. 대통령의 긍정적 화답을 끌어낸다면 여권 내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고, 실패해도 대통령권력과 싸운 대안권력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과거로부터 배우기

여권 투 톱의 성공적인 회동 사례는 2010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의 독대 회동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기 직전인 그해 8월 21일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극비리에 만났다. 이-박 회동의 최대 성과는 둘의 갈등이 여권 분열로 치닫는 것을 막고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도록 한 데 있었다.

회담의 특징은 ①‘이명박 정부의 성공’(박근혜)과 ‘정권 재창출 노력’(이명박)의 ‘주고받기’였다. 여당 실권자 박 전 대표가 먼저 국정 협력을 약속했고, 이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로 화답했다. ②2인자는 1인자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 인적 쇄신을 거론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항마 발탁’이라는 의혹을 받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의 권한을 존중했고 권력투쟁으로 비칠 여지를 스스로 차단했다. ③회동은 극비로 진행됐다. 홍상표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조차 회동 성사 직전까지 ‘낌새만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여권의 1, 2인자가 어떻게 만나기로 했는지에 대한 그 어떤 사전 정보도, 대국민 여론전도 없었다.

그 결과, 회동의 의미와 흥미는 극대화됐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온전한 임기 완료를 위해 협력했고, 이 대통령은 공정한 대선판을 보장했다. 박근혜는 2년 4개월 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이겼다. 정치 고수 두 사람의 금도와 타협과 건설적 차별화가 만들어낸 3.53%포인트 차 승리였다.

윤-한 회동은 한 대표의 사전 공개와 대국민 여론전으로 이미 실패를 잉태했다. 한 대표는 사전에 독대 요청설 및 여사 관련 의제들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회담의 성공 기준점을 높였다. 그 어떤 결과도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는 내용은 있을 수 없게 됐다. 중앙 정치무대 활동 경험이 부족한 지도자와 참모들이 만들어낸 아마추어리즘의 전범이었다.

◇실패한 명예혁명

한 대표의 ‘김건희 아웃’과 정국 주도권 잡기를 위한 명예혁명은 일단 실패했다. 성급한 권력투쟁으로 대사(大事)를 그르쳤다. 윤 대통령의 실점도 크다. 무엇보다 여권의 분열 위기감이 커졌다.

■ 용어 설명

‘명예혁명’, 즉 Glorious Revolution은 1688년 잉글랜드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 의회가 국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을 옹립. ‘유혈사태’를 피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음.

‘이명박-박근혜 회동’은 2010년 8월 21일 둘의 독대 회동.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 노력’의 ‘주고받기’를 통해 친이-친박 계파 갈등 극복과 당 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

■ 세줄 요약

대화의 복기 :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여사 대외활동 중단·인적 쇄신·의혹 규명 협조 등을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대통령도 담담하게 화답. 韓은 여차하면 ‘김 여사 특검법을 못 막을까 걱정된다’ 취지의 ‘협박성’ 발언도.

막전 막후 : 윤-한 회동은 10·16 재·보선에서 패할 경우 여권의 동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에서 대통령이 결단. 반면 한 대표는 회동 전부터 대국민 선전전을 펴오면서 여권 내 주도권 잡기를 위한 권력투쟁을 벌인 것.

실패한 명예혁명 : 한 대표의 ‘김건희 아웃’과 정국 주도권 잡기를 위한 ‘명예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 성급하고 어설픈 권력투쟁으로 대사를 그르쳐. 여권의 분열 위기감이 커졌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실점도 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