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朝鮮칼럼] 초보들의 범퍼카 돌진...시끄럽고 무능한 국민의힘의 보수 정치

배세태 2021. 8. 23. 15:12

[朝鮮칼럼] 초보들의 범퍼카 돌진...시끄럽고 무능한 보수 정치
조선일보 2021.08.23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1/08/23/XYBDGODSF5E2HHTJ6ZVEFDWZJA/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늘 좌절하고 번민했다. 분명 우리가 더 똑똑하고 심지어 선거 자금도 저들 못지않게 쓰는데 왜 못 이길까? 언어심리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은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레이코프가 볼 때 보수주의자들의 정치관은 ‘엄격한 아버지’ 모형에 따라 작동한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험한 곳이고, 부모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수는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가족을 보호하고, 부양하며, 옳고 그름을 가르칠 책임을 진다. 보수의 고정 지지층인 35~40%는 이런 관점으로 정치를 넘어 세상만사를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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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후보와 만나 건전지 모양의 픽토그램(Pictogram) 완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보수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원칙은 그러한 세계관에서 파생된 것이다. 보수는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모든 이가 자신의 운명을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제한다. 따라서 자유시장주의와 친화적이다. 스스로 절제하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수성가의 원칙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권위, 자기 책임, 시장 경쟁, 자수성가는 평범한 미국인이라면 대체로 동의할 만한 원칙이다. 레이코프가 볼 때 보수의 프레임이 진보의 프레임보다 강력한 것은 그런 원칙과 가치를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의 프레임을 극복하는 것은 대중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영리한 슬로건을 만드는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진보의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10여 년 전에 유행했던 프레임 이론을 다시 꺼내 드는 이유가 있다. 국민의힘이 빠져 있는 난맥상을 짚어보기 위해서다. 레이코프는 민주당 지지자였고 프레임 이론은 진보 진영의 승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2021년 한국 정치의 맥락에서는 더불어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더 큰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권에는 정권 교체 낙관론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보수의 고정표 40%,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한 중도 20%를 합치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층 40%를 넉넉하게 이길 수 있다는 표 계산이 근거였다. 나는 여의도 정치권의 내부자가 아니므로 그런 정치공학적 논리가 얼마나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을 상대로 이미 프레임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의 가치는 ‘스스로를 돕는다’로 압축된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 호소력을 지니려면 정치인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건 유능한 면모를 드러내야 한다. 정치인의 목청이 높은 사회가 시장주의자에게 유리한 곳은 아닐 테니, 가급적이면 유능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안 될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보는 정치인이 시끄러운 것을 단점이라 여기지 않는다. ‘남을 돕는다’는 가치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여론을 환기시킬 수만 있다면 당장 성과가 없어도 지지자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그렇다. 그는 옳건 그르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를 생산하는 ‘시끄러운’ 정치인이다. 게다가 계곡 평상 철거 같은 전시 행정을 통해 유능한 행정가라는 이미지를 쌓아 왔다. 심지어 자수성가한 인물이기도 하다. 보수의 핵심 가치 중 큰 부분을 선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능한 정치인을 원하는 중도, 더 나아가 보수의 집토끼도 위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어떠한가? 최근 쏟아져 나온 온갖 논란과 불협화음을 떠올려보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연거푸 실언을 하며 ‘유능한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깎아 먹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막후에서 갈등을 조율하기는커녕 본인이 트러블메이커로 맹활약 중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유능한 사람들이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바람직한 보수 정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치 초보들이 범퍼카를 타고 서로를 향해 정신 사납게 들이받는 놀이동산에 더욱 가깝다.

‘시끄럽고 무능한 정치’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론조사가 어떻건 이런 식으로는 야당이 이기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보수의 가치에 걸맞은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8월 25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예비경선 후보군 비전 발표회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경선 후보들이 장점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도록 이준석 대표부터 ‘조용하고 유능한 정치’의 길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