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반지성주의는 오늘날 메인스트림...이재명은 반지성주의 포퓰리스트이다■■

배세태 2021. 5. 5. 18:38

 

※반지성주의는 오늘날 메인스트림(mainstream)이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의 권위적 승인을 무시하는 태도지만, 때로는 놀랄만큼 박식하고 정교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타와 사실들, 논리들을 동원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반지성주의 논지들은 뭔가 해결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찜찜함을 남긴다. 확증 편향이나 순환오류를 갖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들이 내린 답을 합리화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문제의 출발선에 대한 검토나 전제를 다른 쳬계로부터 검증해 타당화시키는 그 어떤 논증도 하지 않는다. 지성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태하는 태도다.

※반지성주의적 포퓰리즘

보수와 진보가 모두 실패한 정치적 공간에 등장할 주인공은 '반지성주의적 포퓰리즘'이다. 이재명이 그런 류의 반지성주의 포퓰리스트다. 그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책이나 주장을 이해해서가 아니다. 그의 태도 때문이다.

히틀러가 그렇게 등장했다. 그가 쓴 '나의 투쟁'은 한 마디로 유식해 보이는 개소리 일색의 반지성주의의 결정판이었지만 독일 대중들은 열광했다.

나찌의 장교들은 거리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빵값이 오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빵값이 내리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빵값이 제 자리에 머무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가 찬성하는 빵값은 나찌가 정하는 바로 그 빵값이다."

대중들은 이 말에 열광적으로 환호했다고 피터 드러커는 '전체주의의 기원: 경제인의 종말'에서 썼다. 드러커는 하도 황당해서 친구에게 물었다고 한다. '자네 저 말을 믿나?'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도 참... 저 말을 누가 믿나?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드러커는 그때 독일이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상황으로 갈 것을 확신했고 망명을 준비했다.

대중들이 반지성주의에 열광하는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다. 막다른 상황의 지금 여기에서 무언가 해결을 선언하는 태도가 중요해서 열광한다. 그런 대중들에게는 어떠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호소도 실패한다. 길에서 방황하는 것보다는, 설령 그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다. 어쨋든 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