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마지막 지키던 70년대생(90년대 학번) 40대들도 떠난다...문재인 정권은 씨종자까지 한꺼번에 털어먹어 ■■

배세태 2021. 4. 7. 09:25

[태평로] 마지막 지키던 이들도 떠난다
조선일보 2021.04.07 이동훈 논설위원
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1/04/07/FFYJSTOB3FEPZE6Q5E4XL6QF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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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한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장에 모인 유권자들./국회사진기자단

보궐선거 여론조사 가운데 40대 유권자의 보수 야당 후보 지지가 여당보다 높은 경우가 있었다. 야당 후보가 높지 않은 조사도 대부분 여야 후보가 40대에서 접전 중이었다. 이 수치가 놀랍게 느껴졌다.

기자는 1970년생이다. 70년대생들이 주축인 40대 정서를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한다. 70년생들은 민주화 이후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80년대 학번들은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90년대 학번들은 선배들 ‘덕’에 혁명과 진보를 외쳤다. 민주화 이후 봇물을 이룬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이 적지 않다. ‘법 공부 해보겠다고 책을 샀더니 유물변증법’이란 농담이 농담 아닌 시절이었다.

60년대생들은 ‘난쏘공’을 읽으며 우회했지만 적지 않은 70년대생은 마르크스 레닌과 김일성 저작선을 읽으며 바로 내달렸다. 80년대 대학가 화장실 벽에 ‘민주주의 만세 독재 타도’가 씌어 있었다면 90년대엔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 만세’가 씌어 있었다. 70년대생들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도상(圖上)일지언정 혁명을 꿈꿨다.

그런 70년대생들이 사회에 뛰어들었을 때 IMF가 찾아왔다. 겨우 취업했다가 몇 달 만에 잘린 이들이 수두룩했다. 70년대생들이 맞닥뜨린 우리 사회와 자본주의의 첫인상은 냉혹했다. 적지 않은 70년대생들에게 보수 정당은 악과 동의어였다.

미군 장갑차 희생 여중생 추모 촛불에 이어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을 들었다. 보수 정권 시절 광우병 집회, 탄핵 집회로 끊임없이 정권을 흔들었다. 진보 정당과 민주당 사이를 오갔을 뿐 보수 정당은 애초 선택지에 없었다.

20대에 노무현(62%)을 뽑고 30대였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66.5%)을 밀었다. 작년 총선에서 민주당(64.5%) 압승에 크게 기여했다. 평생 외곬 진보와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다. 그런 세대에서 보수 야당 후보 지지가 앞섰다. 이것은 비유컨대 60대도 아니고 70대 노령층에서 보수보다 진보 지지가 더 나온 것과 마찬가지 사태다.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민주당 사람들 표정에선 난감함, 조급함이 읽힌다. 그런데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이번 선거 패배가 아니라고 본다. 내년 대선도 아니라고 본다.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진보의 근원에 대한 회의가 한 꺼풀씩 쌓여갔다.

조국은 공정과 정의를 희롱했다. 윤미향은 위안부로 돈벌이를 했다. 박원순은 진보의 성 의식을 발가벗겼다. 남인순은 여성운동을 이용했다. 장하성, 김상조, 박주민의 위선과 가식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권은 진보를 참칭한 업자들의 놀이터였고, 가치를 팽개친 패거리 좌파들의 잔치판이었다. 한 꺼풀씩 쌓인 회의가 무시 못할 높이가 됐다. 진보는 위선과 동의어가 됐고 진보 가치는 시중의 조롱감으로 추락했다.

노무현의 실패는 회복할 수 없는 실패는 아니었다. 무능으로 욕먹었지만 가치까지 비난받진 않았다. 문 정권은 씨종자까지 한꺼번에 털어먹었다. ‘진보가 고작 이런 거였냐’는 경멸과 냉소가 이 정도로 넘실댄 적이 없다. 그 지표가 40대의 이탈이다.

40대는 빛바래고 찌들었을지언정 혁명의 추억을 가슴 한편 넣어두고 살던 세대다. 50대는 미련 없이 털어냈지만 40대는 미련스레 ‘비겁한 자여 갈라면 가라’고 해왔다. 진보를 내세운 이들을 지지했고, 차선으로 민주당을 선택해왔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 하나둘 지갑을 챙겨 떠난 잔칫상에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는 이들이 문 정권은 씨종자까지 한꺼번에 털어먹었다. 40대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도 이제 떠나가려 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것이 진보이고 혁명을 꿈꾸던 자들의 세상인가’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진짜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