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 정권의 하수인’노릇을 계속할 것인가?
지난 4.15 충선이 끝난 뒤 민경욱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로 비례투표용지 여섯 장을 흔들었을 때 어떤 이들에게는 진지한 뉴스가 아니라 한낱 가십거리였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내 놓겠다”고 한 공언(公言)에 비해 사소한 의혹들만 나열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사안별로 중앙선관위의 해명을 처음으로 듣게 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당시 선관위는 비례투표용지 여섯 장에 대해 ‘어느 동 투표구에서 나온 잔여투표용지’라고 인정했다. 그 다음부터는 자기 위주의 해석이 이어졌다. “잔여투표용지 등이 들어있는 선거 가방을 개표소 내 체력단련 실에 임시 보관했으나 성명 불상 자가 일부러 ‘탈취’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선관위가 이를 ‘탈취’라고 표현한 것은 민경욱 의원이 범법자의 장물로 회견 쇼를 했다는 암시였다. 하지만, CCTV가 설치 안 된 장소에 투표용지를 보관한 것이나, 이를 감시할 경비를 세우지 않은 선관위의 ‘관리책임’은 어디에도 없었다.
개표된 사전투표지가 ‘삼립 빵 상자’에 들어있는 것에 대해서도 대답했다. 개표된 투표지들을 담을 보관상자가 준비돼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선관위는 “사전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 사전에 준비해둔 상자의 수량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일선 직원의 실수로 필요한 상자 숫자를 잘못 계산했을 수는 있지만, 예상보다 높은 사전투표율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고의든 착오든 선관위가 거짓 해명을 한 셈이다.
게다가 투표지 보관상자의 봉인지가 전혀 접착력이 없어 너무 쉽게 떼어진 경우도 있었다. 다른 선거구역의 투표지가 발견된 사실도 인정했다. 투표용지에 발이 달린 것일까. 어떻게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여러 곳에서 사전투표의 선거인 수보다 투표수가 더 많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 공주에서는 투표지 분류기로 나온 득표수가 이상해 재검표해 결과가 뒤바뀐 일도 있었다. 결국 선관위도 설명을 못했다.
이런 사건 하나하나는 선거부정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야당 후보 30여명은 선거소송을 냈으나 아직까지 법원은 어느 한 곳에서도 재검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전적으로 선관위의 책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4.15 총선은 주요 결정을 내리는 선관위원 9명 중 2명이 결격한 상태로 치러졌다. 이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야당이 추천한 국회 몫 선관위원 후보를 여당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선관위는 당시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 힘)의 위성비례정당 명칭을 퇴짜 놓았고, 민주당의 ‘투표로 70년 적폐청산’현수막은 허용해 주고,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라는 야당 측의 현수막은 불허(不許)했다. 선관위가 정권의 하수인(下手人)이라는 인상을 준 것이다. 선거는 ‘대표자 선출’ 못지않게 ‘사회통합’이라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맞붙었다가도 선거를 통해 승복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선거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힘이 센 자(者)가 다 갖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선거의 ‘사회통합’ 기능이 이번에 또 와해되고 있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잇따른 편파시비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선관위는 지난 19일 서울시장 야권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한 시민의 신문광고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 93조 1항을 위반했다면 소환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엊그제는 ‘서울시장 위력 성(性) 폭력 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이라는 시민단체가 성(性)평등을 주제로 하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캠페인을 하는 것은 선거법위반 소지가 있다며 불허했다.
공동행동은 ‘우리는 성 평등에 투표한다’는 문구를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선관위로부터 이 역시 불가(不可)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해당 문구가 모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떠올리도록 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공동행동은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여는 등 피해자를 지원해온 단체다. 서울시 선관위는 이 단체의 캠페인이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에 영양을 미칠 수 있는 시설물 설치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90조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던 것이다. 선관위의 이 같은 판단은 성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같다.
서울시 선관위는 최근 예산 2,150만 원을 들여 서울택시 550대에 투표 독려를 위한 홍보물에 더불어 민주당 상징 색과 유사한 파란색을 써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TBS(교통방송)의 “일(1)합시다“ 캠페인이 기호 1번 정당인 민주당을 홍보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서 ” 선거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부산 가덕도를 방문해 ”신(新)공항 예정지를 보니 가슴이 뛴다‘는 등 발언을 한 것이 ’선거 개입‘이라는 지적에도 선관위는 “직무수행의 일환”이라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이러니 선관위가 보선(補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서울. 부산 시장의 보궐선거는 왜 하는 것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범죄를 저지른 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퇴해서 치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 전 시장의 죽음 뒤에 박 전 시장을 도왔던 세력들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고 해대고 있다.
특히 친문단체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죽게 만들려고 일부러 고소한 살인자’라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했다. 피해자와 가족이 “2차 가해를 제발 멈춰 달라”고 절규하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당도 2차 가해에 가담했다. 민주당은 당헌을 깨고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냈다. 만약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그 이상으로 피해자를 짓밟는 것이 될 것이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용어로 불렀고, 그들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켐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 등으로 합류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자 물러갔다.
어쩌다가 가해자 측이 으르렁대고 피해자는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됐는가. 잘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개를 바짝 처 들고 화를 내는 꼴이라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지난 4년 내내 여러 곳에서 반복돼 왔다. 인륜과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어제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민들에게 당선 즉시 1인당 10만원씩 주겠다고 공약했다. 여당이 일색인 서울 구청장들까지 선거 전에 1조원을 푼다고 한다. 대놓고 돈 봉투 선거를 하겠다는 것이다.
관권 금권선거가 눈에 보이는데도 선관위는 못 본체 한다. ‘4.7선거’는 그냥 보궐선거가 아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걸린 선거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고, 그래서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당은 사활을 걸고 총력 경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내거티브 공세가 심해진다. 특히 투표일이 가까워 오면서 수세에 몰린 여권은 의혹이란 의혹은 우선 질러놓고 본다. 이미 오래 전에 판명이 난 것도 재탕 삼탕 한다. 온갖 흑색선전으로 선거판은 날이 갈수록 혼탁해진다.
이런 때일수록 경기진행을 맡은 선관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만큼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선거를 관리해야 한다. 가짜뉴스들을 생산 하는 범죄자들을 발본색원하여 고발하고, 행여나 오해를 살만한 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 국민들은 양당에 대해 이제 남은 선거운동기간이나마 비방이 아닌 정책경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선관위는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정권 하수인’으로 비쳐지지 않기를 당부한다. 공무원은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고 ‘국민 전체의 봉사자’임을 잊지 말기 바라는 것이다.
출처: 장석영 페이스북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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