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권순활 칼럼] 박근혜 대통령 ‘엉터리 탄핵' 3년, 한국 언론의 죄를 다시 묻는다★★

배세태 2019. 12. 10. 16:32

[권순활 칼럼] ‘엉터리 탄핵' 3년, 한국 언론의 죄를 다시 묻는다

펜앤드마이크 2019.12.10 권순활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776

 

'박근혜 죽이기’ 거짓-선동-선정적 보도와 ‘촛불시위’ 인원 부풀리기의 참담한 기억들

日 패망 초래한 태평양전쟁前 일본 언론 선동과 흡사했던 3년 전 한국 언론

수많은 기자와 PD들 중에 ‘탄핵 오보’ 반성과 책임지는 모습 지금도 찾기 어려워

계속 책임지지 않고 지금처럼 뭉개면 독자-시청자 감소와 매출 추락 불 보듯 뻔해

'탄핵정변 왜곡보도의 잘못' 용기 있게 반성하고 참회하는 언론사 한 곳도 없나

 

권순활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변이 본격화한 2016년 10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석 달간은 개인적으로 32년 넘는 언론계 생활 중 가장 고통스런 시간들이었다. 10월 하순 ‘손석희 JTBC’가 이른바 태블릿 PC보도를 통해 최순실(개명 후 이름 최서원)이 박근혜 정부의 전반적인 국정(國政)을 모두 쥐락펴락한다는 식의 선동적 보도를 쏟아내고 거의 전 언론이 이 프레임에 갇혀 매일 마녀사냥식 광기(狂氣)와 말도 안 되는 촛불시위 인원 부풀리기에 빠져 있던 시점이었다. 극좌 운동권의 찌라시 성격 대자보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몇몇 매체들이야 으레 그렇다 치더라도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에 입각한 정론지(正論紙)를 표방하던 주요 신문과 그 계열 종편 방송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자적 양심에 비춰 그런 ‘미친 보도 행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공과(功過)를 확인된 팩트에 입각해 따져서 비판할 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의 언론 행태는 그런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마저 무너진 뒤틀린 한국 언론 현실에 분노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필자 외에도 적지 않았다. 당시 소위 '최순실 사태'를 취재하던 한 젊은 신문기자는 아니면말고식 기사가 판을 치던 그해 11월 자기 페이스북에 이런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온갖 의혹이 판치는 상황에서 하나둘씩 의혹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뒷감당 어찌하려는지. 아. 그냥 의혹 제기였지 사실이라고는 안했다고 하면 끝나기는 함. 내가 믿고 싶은 게 진실이 되고 있는 현실." 현장취재와 데스크 경험이 풍부한 각 언론사 고참 언론인 중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꽤 있었다.

 

광풍(狂風)의 계절에 누군가는 "이건 아니다!”라는 반박과 저항의 기록을 어떤 형태로든 남겨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그해 11월과 12월 개인 페이스북에 이례적으로 장문의 글을 잇달아 썼다. 2016년 11월 10일의 <오보에 엄격한 일본 언론, 오보 넘치는 한국 언론>, 11월 18일의 <언론의 일탈, 도를 넘은 것 아닌가>, 12월 6일의 <시바 료타로의 글을 다시 읽으며> 등의 글들이었다. 11월 22일 당시 이신우 서울경제 논설실장의 <언론이 사실을 외면하면>이란 제목의 칼럼을 페북에 공유한 것도 비슷한 문제의식에 입각한 것이었다. 당시 몸담고 있던 신문에 게재되는 개인 칼럼에서도 <‘식물 대통령’의 한국, ‘1강 총리’의 일본>이나 <'대통령 즉각 下野‘가 미칠 충격들> <’짧았던 번영‘ 이대로 막 내릴 순 없다> 등을 통해 당시의 지배적인 언론계 분위기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또 각종 사내(社內) 회의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루머를 바탕으로 쏟아내는 일방적인 ’박근혜 쫓아내기‘와 ’박근혜 죽이기‘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정상적인 저널리즘의 판단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초유의 상황‘이었다. 불필요한 인간적 마찰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 판단보다는 상당부분 수위를 낮춘 이런 수준의 이의제기마저도 쉽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사설과 칼럼이 일반 기사와 함께 연일 소위 정론지의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채우고 외부 필자들의 원고도 '박근혜 때리기'라는 한쪽 목소리만 나가던 상황에서 그런 왜곡된 제작방식에 종종 이견(異見)을 제기하는 모습이 아마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어거지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평생직장‘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고 국내외 주요 보직들을 거치면서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신문사를 그해 연말 떠나기로 결심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사직서를 낸 것도 비정상적 시국 및 언론상황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소위 ‘박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종합적인 공과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박근혜 탄핵’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탄핵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모든 언론이 공범으로 참여했기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 당시 탄핵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정치인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사와 판사들도 대다수 언론의 일방적인 거짓과 선동 보도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다. 명색이 언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시 박근혜 탄핵이 정당했다고 지금도 주장한다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수없이 많은 실정(失政)과 권력남용 의혹이 농후한 문재인 현 대통령은 단 하루도 더 청와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매일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마땅하다.

 

미혼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에게 음습하고 칙칙하고 불결한 성적 이미지를 뒤집어씌워 여론을 들끓게 하거나 기본적 판단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몰고 간 그 수많은 기사와 논평 중에 사실로 밝혀진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 일산신도시 전체를 포함한 경기도 고양시 전체 인구가 103만 명,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인 청주시의 전체 인구가 84만 명, 대한민국 육해공 군인을 모두 합쳐도 60만 명인 현실에서 강성 좌파단체인 소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주최한 박근혜 퇴진 촉구 서울 도심 촛불시위에 100만 명이 참석했다는 주최측 주장을 버젓이 유력 신문의 1면 톱과 사설 제목에 붙인 신문제작 태도가 과연 제 정신이었던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언론의 폭주는 거의 매일,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반복돼 국민여론을 오도하고 3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나라꼴을 이렇게 형편없이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오죽하면 온건한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인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가 당시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제는 평균적인 지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신문과 방송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정상”이라고까지 질타했겠는가.

 

일본에서 국사(國師), 즉 국가의 스승으로까지 불리는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는 생전에 시사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오랫동안 권두 에세이를 썼다. 이 에세이들을 묶어 4권의 문고판으로 출간한 것이 <이 나라의 형상(この国のかたち)>이란 제목의 책이다. 시바 료타로 특유의 깊이 있는 지식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이 책은 문고판이긴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들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시바 료타로는 이 책에서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을 초래한 중요한 계기로 러일전쟁 승리 이후 잘못 흘러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꼽으면서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러일전쟁의 강화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신문이 일본의 국력을 냉정하게 보지 않고 “강화조약을 파기하라” “전쟁을 계속하라”고 선동했다. 당시 언론의 선동 영향 등으로 군중들은 폭도화해 2개 경찰서, 219개 파출소, 13개 교회, 민가 53채가 불탔고 도쿄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어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바 료타로는 선동만 하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은 신문에도 큰 책임이 있었다며 만약 당시의 신문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선동만 일삼았다면 이후의 역사에 대해 커다란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질타했다.

 

태평양전쟁 과정에서도 일본 언론은 적극적으로 군부에 협력해 전쟁 수행을 위해 사실과 다른 선동에 열을 올려 국민을 오도했다. 결국 1945년 패전 후 당시의 보도 행태에 책임이 있는 언론인들은 대거 언론계에서 퇴출됐다. 전후(戰後) 일본의 주류 언론계가 회사마다 논조와 성향은 달라도 기사의 정확성을 매우 중시하고 오보에 엄격한 책임을 묻는 풍토가 정착된 것은 이런 쓰라린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3년 전 한국의 '엉터리 탄핵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언론인은 한둘이 아니다. 거의 모든 신문 방송 뉴스통신사에서 위로는 고위 간부들부터 아래로는 일선 취재기자와 PD들까지 수없이 많은 언론인들이 말도 안 되는 마녀사냥과 거짓선동에 가담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현실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함께 범죄행위에 가까운 ‘미친 보도’에 연루돼 있다 보니 3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거짓보도의 실상이 드러난 뒤에도 공개적으로 반성하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의 언론계를 되돌아보면 한국인들이 흔히 일본 사회의 특징을 비판할 때 인용하는 '빨간 신호등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냉소적 지적을 떠올리곤 한다. 누구나 한때 판단을 잘못 해서 실수를 저지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나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뭉개기만 한다면 다시는 정론(正論)을 말할 자격이 없다. 정말 내면의 양심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가.

 

탄핵 정변을 거치면서 한국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기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상실하는 국민이 늘어나면 저널리즘의 본령이 흔들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길게 보면 독자와 시청자 감소와 매출 추락 등을 통해 상업적으로도 해당 언론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탄핵 정변 과정에서 홍수처럼 쏟아진 왜곡된 보도와 관련해 상당수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죽을 무덤을 스스로 팠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때 우리들의 보도는 잘못됐다”며 용기 있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다짐하는 언론사는 대한민국에 과연 한 곳도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