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안에 무엇이 담겼을까?
1949년 이후 한반도 정세와 남북한 관계를 규정하는 큰 ‘판’은 자유 진영의 세계질서와 중국 사이의 관계에 의해 정해져 왔다. 한국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판에서 최선을 다해 최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첫째, 대한민국 건국이다. 애초 대한민국은 세계질서가 공산진영과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 ‘냉전의 최전선 국가’로서 태어났다. 한국인은 냉전 구도를 이용해, 냉전 구도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해 냈다. 주어진 ‘판’ 안에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작품을 담아낸 것이다.
둘째, 6.25 남침 격퇴다. 1950년에 스탈린과 모택동이 사주해서 무지막지한 남침이 시작됐다. 1970년대말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까지 간헐적으로 일어난 ‘공산 블록의 군사 침공’ 중에 6.25보다 큰 것은 없다. 당시 북한군은 소대 단위까지 2만 명이 넘는 소련군의 직접 지휘를 받았다. 중국은 135만 명의 병력을 참여시켜 그 중 20만 명이 죽고 40만 명이 부상했다. 만약 중국과 소련이 다른 신생국을 이런 식으로 침공했더라면 미군과 UN군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공산화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피와 땀으로 공산블록의 군사팽창을 격퇴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판’은 멸망을 가리켰지만 그에 담긴 것은 ‘기적’이었다.
셋째, 전후(戰後) 부흥이다. 6.25 전쟁통에 온 천지가 폐허로 변했다. 자칫하면 절망, 체념, 범죄, 약탈이 악순환을 일으키는 ‘저주 받은 땅’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폐허 속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내면서, 엄청난 출산율을 보였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이 1950년대에 전후 7~8년 동안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다. 또한 이들은 악착같이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판’은 ‘저주받은 땅’을 향해 기울었지만 그에 담긴 것은 ‘생명’이었다.
넷째, 한강의 기적이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원조는 해가 다르게 줄어들어갔고 1972년 이후에는 (나중에 살펴 보듯) 미국 스스로 ‘반공’을 조롱하고 코미디로 취급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중국에 내줄 기세였다. 한국인은 이 같은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판’은 한국인의 방향감각 상실과 대한민국 패망을 가리켰지만, 그에 담긴 것은 ‘눈부신 경제성장’이었다.
자유진영의 세계질서와 중국 사이에 ‘판’이 정해진다. 그 판을 뒤바꿀 길은 없다. 그러나 그 판 안에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이는 한국인의 선택이다.
앞서 살펴 봤듯이 세계질서가 한반도에 부여하는 역할도 변화하고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달라지기에 ‘판’은 매우 다이내믹하다.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2017년까지 세계질서 및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의해 결정되는 ‘판’은 네 번 바뀌어 왔다. 그런데 2018년에 들어서자 세계질서와 중국 사이의 관계는 급속하게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새로운 판이 깔리고 있다.
2018년부터 형성되어 가고 있는 판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기 전에 우선 1949년에서 2017년까지 펼쳐졌던 4 개의 판을 살펴 보자.
1) 중국은 극좌 공산 체제로서 세계질서와 전면 대립했다
1949년에서 1971년까지 23년 동안 세계질서와 중국 사이엔 전면 대립이 펼쳐졌다. 이 시기 중국은 극좌 공산혁명 국가였다. 내부에서 끔직한 극좌 공산혁명을 실험하느라 5천만명을 굶겨 죽였을 뿐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6.25 개입, 원폭 개발, 소련과의 분쟁 등 살벌한 도발을 계속 저질렀다.
우선 내부를 살펴 보자. ‘한 방에 공산주의를 완성한다’라는 망상에 취해서 대약진운동을 일으켰다. 가족을 파괴하고 경제 자원을 낭비했다. 사회적 분업관계가 몽땅 단절되고 경제가 순환을 멈추어서 무려 5천만명이 굶어 죽었다. 대약진운동은 극좌 공산주의의 발작이었다.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군사도발과 원폭 개발을 자행했다. 6.25에 무려 135만명을 보내서 이 중 20만명이 죽었고 40만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원폭 개발을 둘러싸고 소련과 마찰을 빚었다. 마침내 독자 기술에 의해 1964년에 원폭을 손에 넣었다.
이 시기에 세계질서는 한국인에게 ‘냉전의 최전선에서 공산 블록과 맞서는 운명’을 부여했다. 한국인은 이 같은 운명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 남침을 격퇴하고, 전후(戰後) 부흥을 이루어냈다. 반공은 국시(國是)였을 뿐 아니라 생존전략이었고 도덕이었다.
2) 극좌 공산 체제가 미국과 손을 잡고 반소(反蘇) 전선 파트너가 되다
1972년에서 1981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은 국내적으로는 극좌 공산 체제였음에도 국제정치에 있어서는 미국이 이끄는 반소(反蘇) 전선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전체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미국은, 공산진영 내부에 균열을 일으킬 목적으로, 중국을 반소(反蘇) 파트너로 삼았다. 닉슨과 키신저가 벌인 일이다. 극좌 공산국가가 자유 진영의 세계질서에 참여한다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당시 미국은, “인도차이나가 적화되는 경우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인도차이나 장악을 둘러싸고 대립관계가 생겨난다”라고 계산했다. 미국은 그 전에도 이런 계산을 한 적 있다. 1950년 겨울, 중국이 6.25에 참전하자 강경 매파 전략가 조지 캐넌(George Kennan)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포기해야 한다. 한반도 전체가 적화되면 소련과 중국 사이에 한반도 장악을 둘러싸고 틈이 벌어진다. 대한민국을 뼈다귀 삼아 던져주면 소련과 중국은 이를 독차지하려고 개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다.”
1972년에 닉슨과 키신저는 중국을 반소(反蘇)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여차하면 대한민국도 포기할 수 있다는 언질을 중국에 내비치곤 했다. 1950년 겨울 조지 캐넌이 주장했던 위험한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국인은 미국의 급작스런 방향선회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위기로 내몰렸다. 미국과 세계질서가 스스로 반공을 코미디로 만들어 버렸다. 박정희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반공 권위주의 체제 아래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완성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것이 유신체제이다. 대한민국이 ‘죽을 자리’에 들어선 치명적 위기였기에, 절대 다수의 한국인은 유신체제로의 이행에 대해 찬성했다.
3) 중국이 극좌 공산체제를 포기하고 ‘군당복합체 국가자본주의’로 변신하여 글로벌 제조업 기지로 번영했다
1982년에서 2012년까지 31년이다. 등소평이 권력을 잡은 다음에 군부와 공산당 ‘범털’들이 지배하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로 이행했다.
‘국가자본주의’란 정부가 수많은 국영기업을 거느리고 경제 정책 전반을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국가자본주의는 통상 소수가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체제가 된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엔 이 ‘소수의 권력 장악 집단’이 특이하다. ‘국가 위의 국가’로 군림하는 군부 인맥과, 혁명 최고위 원로들의 자제로 구성되는 태자당(太子黨) 인맥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군당복합체’’(MPC, military party complex, 군부와 당의 범털들로 이루어진 복합체)라고 부른다. 중국은 군당복합체가 이끄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이다. 저자는 이를 줄여서 ‘MPC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중국의 군부, 즉 인민해방군은 내놓고 설치지 않기 때문에 흔히 ‘공식적 국가 기구 밑에 종속돼 있는 조직’이라고 착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의 군부는 실세 중의 실세이며 중국 최대의 기업 집단이다. 알짜배기 기업들을 직간접적으로 소유ㆍ운영하고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모택동의 말은 “농민 게릴라 군사력이 혁명의 주인공이다”란 소리다. 모택동은 ‘농민 게릴라 투쟁을 통해서 공산 혁명을 이룬다’라는 노선을 창시하고 관철시킨 인물이다. 이 노선을 처음으로 표방한 글이 바로 모택동의 대표작인 호남농민운동보고서(1927)이다.
농민 게릴라 노선 덕분에 모택동은 1935년 대장정 때에 이미 중국공산당의 절대적 지배자가 됐다. 흔히 구름잡는 국제정치 혹은 자못 철학적으로 들리는 헛소리를 잔뜩 폼 잡고 주어섬긴 ‘모순론’이니 ‘실천론’을 모택동의 핵심 저작으로 꼽는 풍조가 있다. 이는 지적(知的) 허영이다.
모택동의 정수는 군사에 관한 저작물에 들어 있다. “농민들로 공산 게릴라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창한 ‘호남농민운동보고서’ 뿐 아니다. ‘유격전’(On Guerrilla Warfare, 1937) ‘지구전 전략’(On Protracted War, 1938), ‘신민주주의’(On New Democracy, 1940) 같은 책들은 모두 농민 게릴라 간부 중에 ‘학습ㆍ사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졌다. 한편으로는 군사 이론을 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택동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정신과 혼을 벼려낸 사람이며 인민해방군의 오너였다.
이렇듯 중국 공산혁명의 특징은 첫째, 농민 반란이며 둘째, (게릴라) 군사 전쟁이라는 점에 있다. 인민해방군은 그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총사령관이 될 필요조차 없었다. 인민해방군의 모든 간부들이 모택동의 책과 이론과 사상을 추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택동의 타이틀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Chairman of the Communist Party)이었다. 그는1945년에서 1976년까지 무려 31년 동안 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모택동이 1976년에 사망한 다음 6년이 지나서 이 자리는 철폐됐다. 죽을 때까지 무려 31년 동안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인민해방군의 오너가 당을 지배하는 구조’였음을 뜻한다.
이렇듯 통상 급진 지식인들이 도시 노동자를 조직해서 도시 폭동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공산혁명과 달리 중국 공산혁명은 배운 것 없는 농민들에 의한 반란으로 진행됐기에 농민반란 민초 지도자들이 성장해 나왔다. 예를 들어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이며 6.25 정전협정 서명자인 팽더화이(彭德懷)는 서당 3년, 초등학교1년의 교육만 받았으며 거지로 몰락한 영농 집안 출신이다. 또 다른 인민군 총사령관인 헤롱(賀龍)은 극빈층 출신으로 무학자이다.
중국 공산혁명의 뿌리가 농민반란군, 즉 군대에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혁명의 뿌리가 군사이기 때문에 군부 인맥이야말로 중국의 핵심 실세이다. 최고위 당간부의 자제들로 구성된 태자당(太子黨)의 몸통은 군부 인맥이다. 만약 군부 인맥이 아니었다면 태자당은 ‘지 아버지 후광을 업고 설치는 상류층 2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군부와 당의 범털이 결합한 군당복합체—이것이 바로 중국의 핵심권력부이며 시진핑을 내세운 권력 몸통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등소평이 이끄는 상해파와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수천만명으로 이루어진 느슨한 조직이다)을 앞세우고, 군당복합체가 뒷배를 봐주며 실속을 챙기는 ‘군당복합체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다름 아니다. 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시진핑 이전의 모든 ‘표면에서 뛰는 지도자’들은 상해파(장쩌민)이거나 공청단(후야오방, 자오쯔양, 후진타오) 출신이었다.
군당복합체가 뒷배를 봐주고 상해파와 공청단이 앞에서 뛰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1982년에서 2012년까지 31년 동안 대성공을 거뒀다. 중국은 세계질서가 마련해 준 기회를 십분 살려서 압도적인 글로벌 제조업 기지로 성장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경제가 됐다.
한국인을 사로잡아 온 치열한 반공 대결 의식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됐다. 중국이 극좌 공산주의를 버리고 ‘군당복합체 국가자본주의’로 변신해서 세계질서의 ‘총아’가 됐기 때문이다. 동구와 구(舊)소련 지역은 아예 다당제 정치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세계질서의 사랑을 듬뿍 받는) 중국이 거느린 위성국가가 됐기에 더이상 ‘북진ㆍ흡수통일의 대상’으로 삼을래야 삼을 수 없는 상대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북한’이라는 화두는 ‘3중 분열을 일으키는 단어’가 됐다. 세계질서만 생각하면 북한은 ‘영구적인 분단 체제 아래에서 공존해야 할 대상’이다. 체제 속성만 생각하면 북한은 ‘인류 최악의 호전적인 대량학살 사교(邪敎)’이기에 공존하고 싶어도 공존할 수 없는 대상이다. 역사적 경험만 생각하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3조가 명시하듯) ‘북진ㆍ흡수통일의 대상’이다. 이 세가지 규정은 서로 따로 따로 놀기에 통합될 수 없다. 3중 분열이다.
한국인은 이 같은 난처한 상태를 직시하지 못 했다.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이고, 중국은 군당복합체 국가자본주의로서 세계질서의 총아가 됐다는 것은 일체의 도덕과 가치판단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딜레마이다. 선(善)과 악(惡), 시(是)와 비(非) 분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위기이다.
이 같은 난처한 상태에서 한국인은 오직 ‘민주주의’라 불리는 ‘제도’와 물질적 ‘풍요’에만 매달렸다. 관념은 공허해지고 가치관은 붕괴했으며 가족제도는 약화됐다. 젊은 세대는 점점 더 돈, 커리어, 섹스에만 몰두하는 존재로 변해갔다. 정신이 황폐해졌다. 이 정신적 황무지를 친북, 친-전체주의 세뇌가 파고들었다. “전체주의면 어때? 우리민족이잖아? 무조건 평화가 좋은 거 아니야?”—이 같은 풍조다. 인류최악의 전체주의 대량학살 사교(邪敎)에 대해 일체의 도덕적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 상식이 됐다. 아우슈비츠를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미 정신이 붕괴한 것이다.
1982년에서 2012년까지 31년 동안 세계질서와 중국 사이에 만들어진 ‘판’은 무도덕(amorality), 몰가치(value-free)의 소용돌이였다. 한국인은 이 무시무시한 무도덕의 중력, 몰가치의 경향에 저항하는 ‘정신의 금자탑’을 세울 엄두도 못 냈다. 오직 제도와 풍요에만 넋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무도덕ㆍ몰가치의 소용돌이 ‘판’에 담겨진 것은 한때 ‘한국인의 정신과 넋’이라 불렸던 시체였다. 한국인은 이 소용돌이 속에 자기 자신을 함몰시킨 것이다.
4) 군당복합체가 세계질서에 도전하다
2013년에서 2017년까지 (군부의 세습 범털과 당의 세습 범털로 이루어진) 군당복합체는 시진핑을 내세워서 세계질서에 도전했다. 중국제조2025, 일대일로, 남사군도 등은 이들의 망상이 어떠한 것인지 보여준다. 세계질서 속에서 글로벌 제조업 기지로 살고 있는 나라가 세계질서 자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이게 정말 현실일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수르레알(surreal, 초현실)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발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중국 군당복합체가 이 같은 짓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최악의 ‘정치위선 완장질’(PC, political correctness, 정의, 복지, 소수자인권, 동성애, 성전환, 양성애, 불법이민자 보호, 3류 글로벌리즘을 내세우는 풍조) 정권인 오바마 행정부가 똬리 틀고 있었다. 한마디로 중국의 군당복합체의 눈에는,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이 ‘정신이 썩어 문드러진 호구’ 로 보였다. 세계질서를 옹위하고 강화해야 할 미국이 오히려 중국의 군당복합체에 놀아나고 있는 상태였다.
북한은 이 시기에 한층 더 완벽한 중국 위성국가가 되어갔다. 이는 시진핑 집권 1년쯤 됐을 때인 2013년 말에 일어난 장성택 처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장성택은 온건 개혁노선으로서 후진타오 권력 말기에 중국과, 북한의 체제 변경 및 개혁개방에 대해 논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은 시진핑 체제에서 무려 4번이나 핵실험을 했고 25 차례나 미사일 실험을 했다. 이 시기 이전에는 핵실험은 두 번 밖에 하지 않았다. 또한 그 이전에 4차례밖에 없었던 탄도 미사일 실험은 모두 실패했었다. 북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시진핑 체제 이후에 급가속 됐다. 이는 시진핑 체제가 세계질서에 도전하면서, 북한을 ‘겁 없는 특수무력부대’로 양성한 것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이 시기에 중국은 두 개의 정체성을 섞어서 사용했다. 하나는 ‘세계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글로벌 제조업 기지’라는 정체성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중화 패권주의’라는 정체성이다.
한국인의 마비와 혼란은 이 시기에 극에 달했다. 미국조차도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중국의 도발에 대해 사실상 눈 감고 방치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인이 중국의 두 얼굴을 꿰뚫어 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라고 막연히 느낄 뿐 그 배후가 중국의 군당복합체라고는 전혀 감지하지 못 했다. 한국인의 정신과 영혼은 이미 1982년에서 2012년에 이르는 시기에 마비되어 죽어버렸기에 이 같은 엄중한 상황을 꿰뜷어 보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 할 일이었다.
한국경제가 중국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는 사정이 한국인의 장님 상태를 더욱더 악화시켰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대중투자액 누계는 600 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한국 전체 수입물량의 21%에 해당하는 연간 약 900 억달러를 수입한다. 전체 수입에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타이완 다음으로 세계2위이다. 또한 한국은 중국에 대해, 한국 전체 수출 물량의 약 25%에 해당하는 연간 약 1,300 억달러를 수출한다. 전체 수출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이 역시 타이완 다음으로 세계2위이다. 이 결과 한국은 중국에 대해 연간 약 4백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다. 이같이 한국은 중국과 ‘한 배를 탄 상태’이기에 중국이 세계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은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수 밖에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요약해 보자. 첫째, 이 시기에는 중국이 세계질서를 능멸하고 파괴하려 시도하는 상황임에도 (세계질서를 이끄는) 미국이 이를 방치하는 해괴망측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둘째, 한국인은 이 시기 이전에 이미 정신이 마비된 상태였기에 중국의 이 같은 도발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지 못 했다. 셋째, 한국인은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로서, (아마도 중국 군당복합체의 지원을 받아) 핵과 미사일 기술을 급속하게 완성시켜 가는 상태를 넋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판은 ‘중국의 도발, 미국의 방치,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 가중’이었다. 이 ‘판’에 한국인은 과연 무엇을 담았을까? ‘무개념, 마비, 무대응’을 담았다. 덤으로 박근혜 탄핵까지 저질렀다.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출처: 박성현(뱅모) 페이스북 2018.09.24
(이선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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