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모의 옥중카페
#47 내가 왕이로소이다
2016.06.14 박성현(뱅모) 뉴데일리 주필/자유통일유권자본부 대표
http://m.ubon.kr/bangmo/view.php?b_idx=441
감옥에 앉아 있으면 배짱이 커지고 속이 편해지는 종자들이 있다. 이를 두고 '타고난 빵잡이'라고 한다. 굳이 영역하자면 'a born jail-bird' 정도? 내게도 약간 이런 기질이 있다. 요즘 터무니없을 정도로 낙관적이 된 것도 이 기질 덕분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섰을 때 나는 이런 글을 올렸다.
"안보나 대북관계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문재인 정부를 만들어낸 386 전대협 인맥들이 평양을 버리고 미국과 손잡는 수도 있어... 평양과 함께 했다간 골로 간다는 걸 알 거야... 이를 절감하면 가차 없이 평양을 버려... 걔들, 원래 그래. 30년 전 김일성주체사상을 따랐던 것도 김일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캠퍼스 권력, 운동권 내부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함이었어. 스무살 무렵부터 이미 '타고난 권력투쟁가들'이야... 그게 전대협 인맥의 민낯이야..."
이렇듯 터무니없이 낙관하는 구석이 있어서 속 편하게 산다. "내가 ㅇㅇ을 해야지..."라는 생각만 버리면 된다. 누가 하든 '그 일'이 이루어지면 된다는 식으로만 보면 된다. 그러면 감옥은 갑자기 '웰빙 라이프스타일' 시설로 바뀔 수 있다.
그렇다. "내가"를 버리면 된다. "내가"를 급진 정치 철학에서는 '주체성(subjectivity)'이라고 부른다. 김일성 '주체' 사상의 '주체'도 여기서 따왔다. 단 김일성의 경우는 '내가'가 아니라 '수령이 이끄는 조선민족이'라는 점이 다르다. 서유럽을 기준으로 지난 2백여 년은 ‘주체성’ 게임의 시대였다. 거의 모든 급진적 정치철학이 ‘주체성’을 부르짖었다. 공산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나 공산주의 문학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계급투쟁 피바다 속에 뛰어들어! 계급사회를 끝장낼 마지막 계급, 궁극의 계급인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 뛰어들어! 그게 네가 ‘너다운 존재’가 되는 길이야! 그게 네가 ‘주체’가 되는 길이야!”
히틀러(독일), 무솔리니(이탈리아 파시즘), 텐노 군국주의(일제)는 이렇게 세뇌했다.
“계급투쟁은 환상이야! 투쟁의 단위는 계급이 아니라 민족이지! 봐! 민족과 민족 사이에 약육강식의 가차 없는 몬도가네가 벌어지고 있잖아. 민족을 떠나면 아무 것도 없어. 다른 민족을 지배할 운명을 타고난 민족 - 이게 우리 민족이야. 이 운명에 너를 던져! 다른 민족에 대한 정복 과업에 너를 바쳐! 그때 너는 ‘주체’가 되는 거야!”
20세기 후반에는 ‘막가파 주체’도 등장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동구권과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이 땅의 ‘좌파’는 1990년대 초반에 이 ‘막가파 철학’을 수입해서 자신의 사상적 기초로 삼았다. 이 막가파 철학의 이름은 포스트모더니즘. 1990년대 초반 5년 동안 제목 혹은 부제에 ‘포스트모더니즘’ 이라고 박힌 책이 거의 2천 권이나 나왔으니… 우리 사회의 깡통진보가 이 ‘막가파 철학’을 얼마나 열심히 들이켰는지 알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산지 프랑스에선 1980년대에 이 철학이 망했는데…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 이래 거의 30년째 성업 중이다. 한국 깡통진보의 사상적 기풍은 프랑스의 ‘끝물 좌파’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막가파 주체’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진실이란 없어. 있다 해도 알 도리가 없어. 불태워! 부숴! 세상을 흔들어! 오직 그 파괴의 순간이 의미 있을 뿐이야. 흔들고 부수는 것을 통해 너는 ‘너다운 존재’ 즉 ‘주체’가 되는 거야!”
이렇듯 지난 2백여 년은 ‘주체’에 환장한 시대였다. 레시피는 여럿이었다. 공산-전체주의, 극우-민족-전체주의, 짬뽕-전체주의(김일성 체제), 막가파 철학(프랑스 좌파 포스트모더니즘).. 그러나 레시피들을 꿰뚫는 핵심 메시지는 공통이다. ‘나다운 존재’, 즉 ‘주체’가 되자!... 이게 이 레피시들이 부르짖는 ‘복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체팔이’ 비즈니스가 폭망했다. 촌스런 깡통진보의 케케묵은 레시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고장 난 LP판이 똑 같은 홈을 뱅뱅 돌 듯… 예를 들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같은 슬로건… 한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쥐어뜯었던 슬로건이지만 이제는 공허하고 진부할 뿐이다.
주체팔이 비즈니스가 왜 망하게 됐을까? 우리 각자 ‘왕’이 됐기 때문이다. 왕의 궁극적 힘은 상징, 기도, 소통에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 조공국의 임금은 ‘하늘 제사’를 못 드린다. 하늘 제사, 즉 하늘에 대고 올리는 ‘제대로 된 기도’는 오직 중국의 ‘천자’(하늘의 아들)만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 ‘나’의 관점에서 본 세상 모습을 컨텐츠(상징물)로 담아내어 멀티미디어 인터넷에 띄운다. 신앙인이라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존재에게 기도한다. 상징, 기도, 소통에 관한 절대적 자유… 오직 왕만이 누리던 권한이요, 자유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PPIM(Personal Perspective + Interactive Media : 나의 관점 + 인터랙티브 미디어)라고 쓴다. PPIM이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이제 5~6년밖에 안 된다. ‘스마트폰과 ‘SNS’에 의해 자리잡았다. 지나 2백 년 동안은 CPPM의 시대였다. Collective Perspective + Mass Media : 집단 관점 + 매스미디어… 처음엔 신문, 그 다음엔 라디오(20세기 전반), 마지막엔 TV. 각 집단이 (급진적이면 급진적일수록)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를 따라! 우리야말로 너에게 ‘너다움’을 제공할 거야. 우리야말로 너에게 ‘주체성’을 제공할 거야!”
이번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진보 진영이 분열한다. 한쪽은 “평양을 중심으로 뭉치자!”라는 자못 간첩스러운 입장을 고집하고, 다른 한쪽은 평양을 디스하고 미국에 협력하고… 이제까지 ‘친북’은 이른바 ‘진보’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이젠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 지경인 만큼 이른바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상당한 정신적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혼란이 과연 이른바 ‘진보’에만 국한된 증상일까?
아니다… 이른바 ‘우파’니 ‘보수’니 하는 사람들 역시 고민 좀 하게 생겼다. 이제까지는 ‘반북(反北)’만 치켜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반북’이 상식이 되면??? 한마디로 진보든 보수든 이제 “나는 누구지? 나는 무엇을 지지하지? 왜 지지하지?” 이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좀 더 솔직하고 화끈하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승리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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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치는 좌우 아닌 '개방’과 ‘폐쇄’에서 성패 좌우
국민일보/중앙일보 2016.10.18~20
http://blog.daum.net/bstaebst/18827
“앞으로 세계는 좌파와 우파로 나뉘지 않을 겁니다. 미래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를 고수할 것인가. 이른바 ‘개방’과 ‘폐쇄’로 나뉘게 될 겁니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이렇게 예견했다.
“유럽의 정치고립 현상(브렉시트)이 미국 선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정당정치의 종말이다. 좌파와 우파의 차이는 줄어들었다. 대신 옛것을 고집하는 정당과 새것에 문을 여는 정당 간 차이가 커지고 있다.” 그는 4차 산혁 시대의 정치는 좌우가 아니라 폐쇄적이냐, 개방적이냐의 태도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무슨 사생결단식 전쟁이나 권력 비즈니스로 여기는 한국형 정치풍토에서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다. 정치인은 진영의 폐쇄성 속에 갇혀 있는 쪽을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느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치는 그런 비겁함에서 벗어나야 열린다. 용기를 내어 정치혁신을 이뤄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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