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스크랩] 3·1 태극기집회는 “의분의 대폭발이었다”

배셰태 2017. 3. 2. 17:15

놀랐다. 그 인파, 그 함성, 그 애국열정, 그야말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흔들린 경천동지(驚天動地)였고 상상초월의 천지개벽이었다. 그 역사의 한 복판에 기자가 섰다. 구름인파에 떠다녀야했고 고막이 찢어지는 함성에 정신이 몽롱했다. 눈이 시리고 가슴이 터지도록 감격하며 지켜봤다. 그야말로 장엄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일찌감치 3·1 태극기집회를 제23·1독립운동으로 규정했었다. 여기에 기독교와 불교계가 대거 동참하면서 광화문과 남대문 사이 16차선의 방대한 광장은 거대한 태극기물결로 차고 넘쳤다. 종각과 동대문 사이와 서울역 광장은 물론 서울시청 광장과 대한문 골목까지 빼곡히 태극기 인파로 메웠다. 항공기 공중촬영이 아니고서는 그 웅대한 울분의 대폭발 장관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탄핵기각 민심은 그렇게 4·8킬로미터 거리에 요동치며 대한민국을 일깨웠다.

 

오전 10시부터 운집하기 시작한 성난 민심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졌고 대한독립만세, 자유민주주의수호, 탄핵무효·탄핵기각, 국회해산, 박영수 특검 처단구호는 강도 6.0 강진의 진동이었다. 하나같은 격정의 요구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발을 동동 굴리는 모습도 예사였다. 미국에서 24시간 비행기를 타고 방금 도착했다는 교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들도 동참했다, 심지어는 애완견도 몸에 태극기를 둘렸다. 그야말로 의분의 대폭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65회 생일에 맞춰 전달됐던 박 대통령님 사랑해요. 힘내세요. 우리가 지켜드립니다등으로 요약되는 백만통의 러브레터가 말해주듯 이날의 핵심도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막아내는 것이 백척간두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양아치 국회와 쓰레기 언론·검찰을 이 땅에서 영원히 퇴출시키지 않고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도도히 표출된 것이다.

 

이날 공식집회는 오전 11시 기독교 총연합과 한국교회연합 주최의 '3·1절 구국기도회'와 불교계의 제 98주년 3·1절 민족공동행사에서부터 시작됐다. 촛불집회의 본거지에서 개최돼 보는 이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러나 그랬다. 국민은 더디어 진실에 눈떴고 그 힘은 요원의 불길이었다. 그래서 놀랐다. 대한민국은 그 어떤 세력이 파괴하려 달려들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다.

 

탄기국의 본집회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탁기국은 "일제보다 참혹한 불의로 무장한 세력이 단돈 1원도 받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해 우리가 태극기를 들게 했다"고 정의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 최종 변론일에 제출한 의견서가 대형스크린에 비춰지면서 이를 주최 측이 낭독하자 집회참가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흐느끼는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듣는 이의 가슴을 옥죄었고 울분의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 태극기 애국심은 그렇게 나타나며 전의를 불태웠다.

 

헌재의 명변론으로 스타 변호사가 된 김평우·서석구 두 변호사는 "조선시대 정적을 잡을 때 쓰던 연좌제를 적용해 최순실 일당의 잘못을 박 대통령 잘못으로 덮어씌웠다"고 주장했다. 태극기집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날 제15차 집회마다 참석한 의리의 사나이 김진태 의원은 박영수 특검은 망나니다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외쳐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탄기국 공동대표로서 서울·지방가리지 않고 매회 참석해 개회사를 하던 권영해 전 국방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가 약속한대로 헌재가 지난달 27일자로 변론종결을 선언하자 다음날 28일부터 헌재 앞에서 항의 단식농성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탄기국은 이날 처음으로 청와대 행진도 오후 4시부터 시작했다. 촛불집회 단골메뉴를 쳐부수고 박 대통령을 근접거리에서 응원하고 위로하는 뜻을 담았다. 전체 참가자들은 도로여건상 도저히 모두 참여할 수가 없어 극히 일부만 참여했어도 그 인파는 무지무지했다. 참가자들은 헌재 앞에서 텐트를 치고 단식 농성 중인 권영해 전 국방장관을 찾아가 "힘내라"고 격려했다.

 

광화문거리 한편의 경찰차벽을 지나던 태극기 엄마들은 차벽 틈으로 보이는 촛불집회 주최자들을 향해 태극 깃발을 흔들어 보이면서 하루속이 자수하여 광명 찾자고 했다. 더욱 가관인 장면은 태극기집회의 대형 스크린이 촛불집회의 본거지 코앞까지 설치되면서 포위 점령해버린 것이다. 스피커에서는 태극기집회 연사들의 종북세력 때려잡자연설이 잇따랐고 ~대한민국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6·25노래가 광화문과 경복궁을 뒤흔들었다. 촛불집회는 영락없이 경찰차벽에 의존한 포박의 신세가 되었다. 아마 혼비백산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경찰차벽을 결사적으로 뚫고 촛불집회의 본거지에 잠입했다. 오후 5시에 예고됐지만 1시간 전에 시작되고 있었다. 그 때까지도 참가인원은 수백 명으로 미미했다. 손에 든 촛불과 종이피켓마다 박근혜 퇴진 구속이 주류였다. 인간적인 비애와 두 동강난 분열의 참상을 실감하게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원은 불어나고 있었다. 현장 사진을 몇 컷 담고 철수했다. 끝까지 지켜보려던 당초 계획이 무산돼 아쉬웠다.

 

필자는 앞서 광화문에서 남대문(숭례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도보로 취재했다. 종각으로 되돌아가면서 골목의 태극기 현상과 태극기집회 뒤풀이로 상권이 살아난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나 힘들지 않았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골목마다 태극기 군중이었고 식당과 상가는 붐볐다. 필자는 다행히도 기자들의 포토존에 합류하면서 연단에 오를 수 있었고 그래서 태극기집회의 생생한 장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기상예보대로 오전은 구름이 많다가 오후 4시부터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3월을 알리는 꽃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회 군중은 바로 비닐 옷으로 재무장해 탄핵기각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카메라 때문에 더 이상의 현장취재는 불가능했다. 애국 논객들의 모임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역사의 현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감격의 여운은 더욱 맹렬히 나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생명을 싹틔우는 희망의 메시지 봄비가 박근혜 대통령의 환한 미소로 승화되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랬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지킴으로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사수하겠다는 애국천막을 보면서 울컷 했다. 저 빗속에서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행동하는 애국심에 오로지 경의를 표할 뿐이었다.

 

애국논객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MBC 방송 채널을 고정했다. 예상대로 태극기집회의 상보가 여과 없이 집중보도 됐다. 현장에 있었던 우리 모두가 놀랄 정도의 인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일어서 박수쳤다.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인파는 점과 점으로만 표현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촛불은 듬성듬성 한산했다. 사상 최대의 인파로 세 대결을 펼치겠다던 양측의 호언장담에서 태극기가 압도적 우세로 촛불을 꺼버린 것이다. 그것은 비단 MBC 보도만이 아니었다. 허위.왜곡보도의 대표적인 쓰레기 언론으로 추락한 조선일보도 32일자 기사에서 태극기집회를 제목 앞자리에 내세우고 “(태극기 집회는) 남쪽으로 숭례문 앞까지, 동쪽으로 종로2가 근처까지 들어찬 인파라며 참가자들은 촛불집회 장소인 광화문 광장 양쪽 인도를 통해 청와대 앞 신교동 사거리까지 행진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이날 주최측이 발표한 300만 애국 태극기 물결은 21세기의 대사건이었고 자손만대에 걸친 애국의 피가 어떤 것인지를 명쾌히 기록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촬영하고 있었다.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다.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 험준하다. 헌재의 탄핵기각을 확신할 수 없고, 다가오는 대선에서 태극기의 염원인 애국지사가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애국 태극기집회가 소홀히 주적거리거나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아래는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사진이다. 














▲ 촛불집회 앞마당까지 점령한 태극기의 위용-왼쪽은 태극기집회의 대형 스크린이고 오른 쪽은 경찰차벽에 의지한 촛불집회, 스크린에서 붉은 자막이 뜨고 있다.


▲ 태극기집회 이후 첫 청와대 행진에 참가하고 있는 엄마가 경찰 차벽 사이에서 보이는 촛불집회 주최자들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어보이고 있다.


▲ 70세 할아버지가 99세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태극기집회에 다녀오면서 촛불집회 뒤쪽을 돌고 있다. 그 옆에는 젊은 엄마도 보인다. 


▲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바로 앞에 설치된 태극기집회 상황이 방영되고 있는 대형 스크린을 물끄럼이 바라보고 있다.


▲ 촛불집회에 참가한 노인이 황교안 탄핵 손피켓을 들고 있다. 참가자가 적어 초라한 모습이다.


▲ 애국 논객들이 뒤풀이를 하던 중 MBC 8시 뉴스에서 태극기집회 소식이 비교적 상세히 보도되자 환호하고 있다.


▲ 지하철 서울역 입구에는 밤 9시인데도 젊은 청년들이 탄핵반대와 언론 사망 등이 쓰인 '탄핵정국'의 모든 문제점이 담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호국미래논단
글쓴이 : 남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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