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주간조선 2016.08.22 김민희 기자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20100007&ctcd=C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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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와 B씨는 2016년 대한민국 50대 중년남성의 전형적인 자화상이다. A씨는 퇴직했고, B씨는 아직 퇴직 전이지만 심리적 공허감은 같다. 한창 잘나가는 B씨 또한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며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다. 한국의 중년남성들은 ‘은퇴’를 ‘심리적 자살’과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인생 2막’이나 ‘새로운 무대’라기보다 ‘뒷방 늙은이’의 전초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은퇴 남성을 조롱하는 은어도 나날이 진화 중이다. 은퇴 후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는 ‘삼식이’는 옛말이다. ‘영식님’ ‘일식군’ ‘이식이’ ‘삼식놈’이라는 말도 생겼다. 한국보다 ‘은퇴남성증후군’을 한발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관련 서적이 수두룩하다. ‘더 늦기 전에 아내가 꼭 알아야 할 은퇴남편 유쾌하게 길들이기’ ‘아직도 상사인 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 보는 아내’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라는 책에서는 관계빈곤에 시달리는 남자와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여성을 대비해 다룬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관계빈곤에 시달린다. 퇴직 후 가장 먼저 남자가 해야 할 일은 ‘이사 가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역네트워크를 통해 탄탄한 인맥을 다져놓은 아내가 자신과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50대 중년남성의 관계빈곤 문제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최근 서울시복지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고독사한 사람은 서울에서만 모두 2343명. 하루에 6명꼴로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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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는 혼자 쓸쓸하게 죽어간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고독사 확실’과 ‘고독사 의심’ 사례가 포함된다. ‘고독사 확실’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었고 이후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후 발견된 죽음을, ‘고독사 의심’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었고, 부패가 진행되기 전에 발견된 죽음을 일컫는다. 사망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발견된 죽음이므로 사망의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왜 죽어갔는지조차 모르는 죽음이다. 이 중에는 ‘자살’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고립도는 여성이 높은데
왜 50대 중년남성의 고독사가 많을까. 이 통계 결과에 놀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고독사는 ‘나홀로족’에서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측이라면 1인 가구가 많은 싱글족과 노인층, 그리고 ‘사회적 고립도’가 높은 여성에서 고독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가족들 사이에 묻혀 바쁠 것 같은 50대 남성의 고독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50대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65세 이상 독거노인에 대한 다양한 복지정책은 마련돼 있지만 65세 이하는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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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연구위원은 통계에는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으나 경험적으로 봤을 때 ‘50대 남성이/ 이혼한 후/ 직장을 잃고/ 지병이 있는 경우’ 고독사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남성의 관계 맺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여성과 남성은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르다. ‘중년의 배신’(덴스토리)을 쓴 김용태 한국심리치료상담학회 회장은 “남성은 ‘파워 관계’를 중시하지만 여성은 ‘정서적 관계’를 중시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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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냥꾼의 속성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남자들에게 사냥터는 일터다. 사냥터를 잃으면 존재의 위기를 겪는다. 모든 관계는 사냥터에서 맺는다. 사냥터를 잃어버리면 모든 관계가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속성은 유전자이기 때문에 제거하기 힘들다. 여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지만 남자들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 OECD국 중 꼴찌
그렇다면 모든 남성은 나이 들수록 고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인의 관계빈곤이 유독 심각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OECD 주요국 사회적 관계 수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관계’ 면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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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0대 중년남성은 불쌍한 세대다. 죽도록 일만 했는데, 은퇴 시점에 와서 보니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 정서적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으니 대화를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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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이상 남성의 관계빈곤은 대한민국 현세대의 초상이라는 얘기다. 한국 남자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약하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은 따로 또 같이 보내는 법을 일찌감치 훈련받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고 참아내는 법을 체득한다. 하지만 한국은 집단문화다. 집단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 회사, 집 등 어딜 가나 지켜보는 시선이 널렸다. 특히 50대 이상 가장에게 집은 하숙집 같은 경우가 많고, 아내나 아이들과 대화가 원활한 경우가 거의 없다.
공병호 소장은 CEO를 대상으로 특강을 종종 한다. 강연 후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나는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집에서는 성공한 가장이 아닙니다. 집에만 들어가면 갑갑합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존중과 이해를 받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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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제2의 성인기’
전문가들은 ‘중년’이라는 시기에 주목한다. 인류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100세 시대의 중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5060은 성인기도, 노년기도 아니며 별도의 시기로 분리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를 ‘세 번째 무대(the third stage)’ ‘세 번째 인생(the third age)’ ‘세 번째 장(the third chapter)’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제2의 성인기’로 명명하기도 한다. 남경아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은 5060을 ‘제2의 자유학기제’와 같은 시기로 본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기제다. 청소년이 진로탐색을 위해 시험도 안 치르고 집중적으로 진로를 탐색하듯, 5060은 인생의 학제가 개편되는 시기다. 이 전환기에 탐색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남은 40~50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년은 은퇴 이후의 삶을 ‘경제적인 문제’로만 국한해 생각한다. 이는 지엽적인 문제다. 중년은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시 세팅하는 시기다. 중년은 ‘상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젊음과 에너지, 권력과 지위 등이 하나둘 상실되는 시기. ‘상실이 시작되는 시기’와 남성의 ‘파워지향적 삶의 충돌’이 중년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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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자명하다. 행복한 중년 이후를 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관계’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김용태 박사는 ‘스몰 토크(small talk)’를 권한다. 말 그대로 ‘작은 대화’, 흔히 말하는 수다다. “일만 하던 사람들은 회사, 국가, 인류가 대화의 소재였다. 이제는 작은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며, 그 음식을 누구와 나눠야 행복한지 등이다. 스몰 토크는 정서적으로 중요한 대화다. 그래서 여자들이 건강한 거다.”
스몰 토크의 대상은 누구라도 좋다. 아내도 좋고, 친구도 상관없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하면서 마음 편히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 이 작은 노력이 중년 이후 관계빈곤에 시달리지 않는 최고의 처방전이자, 나아가 은퇴 이후 수십 년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열쇠다.
전문가 tip
50대 이후 외롭지 않으려면…
1. 자기 세계를 가져라
회사 세계, 가족 세계와 별도로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내면 세계를 찾아 들어가는 시간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수시로 점검하라.
2. 가족과의 시간에 투자하라
일에 투자하면 당장 효과가 나오지만 가족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당장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아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일종의 투자다. 가족과의 시간은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따로 시간을 내라. 젊은 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년 이후의 정서적 유대감의 뿌리다.
3. 인생도 기획이 필요하다
중년이 되면 ‘성취지향적 삶’에서 ‘의미지향적 삶’으로 바뀐다. 의미지향적 삶을 잘 살려면 길을 잘 헤쳐간 선배들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롤모델이 쓴 글과 인터뷰, 방송 등을 보고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받아보는 것도 좋다.
4. 젊게 살아라
외모를 젊게 가꾸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SNS, 이미지, 동영상 등의 활용법도 모르면서 어떻게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하나. 젊게 살다 보면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 ‘내가 과거에는 어땠는데’ 식으로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면 소위 꼰대가 된다.
5. 거대담론 말고 스몰 토크(small talk)를 하라
회사, 국가, 인류 등 거대담론만 하던 사람들은 중년 이후에 외롭고 공허하기 쉽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스몰 토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스몰 토크는 수다다. 자신의 감정과 사소한 취향을 표현하고 상대방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라.
6. 부부 관계, ‘머슴, 하녀’가 아닌 ‘남자, 여자’로
일 지향적인 ‘머슴’ 남편과 자신을 잘 도와주는 ‘하녀’ 같은 아내로 내내 살면 중년에 큰 위기가 온다. 만약 그렇다면 대대적으로 관계를 바꿔야 한다. 남자와 여자로서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공감적 부부관계’가 되어야 한다.
7. ‘기능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
‘기능적 삶’은 소유와 명성, 필요성 등 외부 조건에 따라 존재감이 왔다 갔다 하는 삶이고, ‘존재적 삶’은 외부 조건에 관계 없이 자신이 인생의 중심가치를 다잡고 흔들리지 않는 삶이다. 존재적 삶은 과하게 탐하지 않는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고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못한다고 한다. ‘존재적 삶’을 살아야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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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6082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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