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왜 지금 지도 전쟁인가
중앙일보 2016.08.03 이정재 논설위원
http://mnews.joins.com/Reporter/1246?cloc=joongang|marticle|reporter
국토지리정보원은 2001년 초정밀 전국 지도를 디지털화했다. 축척 5000대 1. 축척 숫자가 작을수록 더 세밀한 지도다. 1993년부터 9년간 1000억원 넘는 예산이 들었다. 세계에서 이런 초정밀 전국 지도 데이터를 가진 나라는 10곳이 채 안 된다. 미국·일본도 1만 대 1이 고작이다. 이 지도에 건물·지하철·가스관·교통량 등의 정보를 추가하면 초정밀 지리정보시스템(GIS) 데이터가 된다. GIS 데이터를 조금 손질하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강력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지도를 쥐는 자, 21세기를 쥘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구글이 이 GIS 데이터를 탐내고 있다. 구글은 8년 전 허가 권한을 쥔 국토지리정보원에 데이터 반출을 신청했다. 지리정보원은 ‘국가 안보상 이유’로 불허했다. 그런다고 물러날 구글이 아니다. 2011년엔 도로명 새주소 데이터를, 지난 6월에 다시 GIS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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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다. 구글은 전 세계 지리 정보를 무료 개방하고 있다. 닌텐도의 ‘포켓몬 고’나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성공신화도 구글의 지리 생태계가 밑거름이 됐다. 구글 생태계는 이미 대세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무인차·사물인터넷 같은 갖가지 신산업들이 구글을 통하면 쉽고 빠르지만, 구글을 통하지 않으면 어렵고 막힌다. 구글은 지도를 내주는 것이 ‘관광과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등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니 더 골머리를 앓게 된다.
구글은 왜 한국 지도를 탐낼까. ①한국 GIS 데이터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②한국은 테스트베드로 안성맞춤이다.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밀집한 인구, 복잡한 대도시 공간은 무인차·드론 같은 신산업 시험에 최적이다. ③무한한 양의 빅데이터를 수집해 입맛대로 가공할 수도 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 현재로선 예측 불가능한 엄청난 사업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④한국은 그 자체로도 알짜 시장이다. 앱 장터에서만 연간 3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지리 데이터까지 손에 쥐면 실시간 광고·쿠폰 서비스 등 더 풍성한 수익원을 만들 수 있다.
구글은 이만큼 필요하고 절박하다. 우리는 어떤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세계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구글 생태계에 올라타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면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되 ①개인 위치 추적 및 개인 데이터 축적 금지 ②안보·보안 시설 가리기 ③ 국내에 서버 두기 ④한국에서 번 만큼 세금 내기 등 조건부 허용이 답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네 가지 요구에 대해 구글은 “그럴 수 없다”는 쪽이다.
더 중요한 건 장기적으로 우리 스스로 구글 같은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며칠 전 우버는 구글로부터의 지도 독립을 선언했다.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70조원이 넘는 기업을 일군 우버지만 더 이상 구글 생태계에 안주하다간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18~19세기 제국주의의 문을 연 첨병은 지도였다. 바다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 육지의 버턴과 스피크에 이르기까지 15~17세기 유럽인들이 지구촌 곳곳을 누벼 만들어 낸 ‘지리상의 발견’이 그것이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패권을 가름할 열쇠는 지리 데이터다. 지도는 내줘도 좋다. 그 지도로 만들 세상까지 내줘선 안 된다. 거기에 우리 미래가 달렸다. 우버가 괜히 독립 선언을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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