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원근법] 기본소득, 미래의 역사
한국일보 2016.06.16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http://www.hankookilbo.com/v/b7532bf80c0946b8af36cfee17ad53c3
기본소득’이 화제다. 지난주 스위스에선 기본소득 규정을 담을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77%의 압도적인 반대였다. 그 주요 이유는 재정 조달의 의문과 쇄도할 이민자의 우려에 있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이 지구적 차원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높은 관심의 배경을 이룬 것은 ‘알파고 현상’이다. 알파고 현상을 통해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진전이 노동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생생히 실감했다. 앞으로 일자리 감소는 가속도로 진행되고, 그 결과 실업이 일상화된 상태가 될 터인데, 그런 가까운 미래에서 경제적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갈지 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란 노동ㆍ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이 제도의 목적은 국가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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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다. 복지 사각 지대를 없애고, 복지 관리 비용을 줄이며, 선별 복지에 따르는 낙인 효과를 방지하는 것을 포함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용한 해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본소득 제도는 일하려는 의욕을 줄이고, 재원 확보를 위해선 불가피하게 세금을 올려야 한다.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의 경우 기본소득이 낮게 책정된다면 평균 복지급여 수준이 하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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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은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중장기적 결과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계가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다. 고르가 강조했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현재의 부(富)’가 비약적으로 증가함에도 국민 다수가 ‘미래의 곤궁’에 놓인다면, 기본소득과 같은 심플하면서도 래디컬한 대안을 결국 도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핀란드,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추진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선 녹색당, ‘녹색평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이 기본소득 제도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올 일자리 감소와 불평등 증대를 복지제도의 강화로만 해결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기본소득이 예정된 가까운 미래의 역사이지는 않을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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