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NO’라고 말하지 않는 사회가 곧 헬조선...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셰태 2016. 5. 9. 17:08

`NO’라고 말하지 않는 사회가 곧 헬조선이다

미디어오늘 2016.05.08(일)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9776

 

[김국현 칼럼] 한 기업의 제품 발표회를 보며

 

7년 전 한국형 운영체제를 만든다며 물의를 일으킨 업체가 올해 또다시 비슷한 제품을 들고 나와 제품 발표회를 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멈춰버린 소프트웨어를 앞에 둔 무대 위 침묵도 7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 기업의 제품 발표회건만 소비자로부터 이렇게도 일방적이고 적나라한 야유가 쏟아지는 제품은 처음 본 것 같다.

 

오픈소스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아니라고 자랑하니 도덕성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미완성 제품으로 무대 위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쩔쩔매는 기술직 직원들의 표정은 연민을 자아냈다.

 

조악하나마 어떻게든 보여주고 외산 타도를 외치는 이벤트를 벌인다. 그러면 한국형이니 토종이니 완장을 달아주고 판로가 보장된다. 무리한 일정에 수상스러운 라이센스. ‘한국형’ 제조업 조달의 철 지난 성공 방정식을 21세기에 다시 한 번 재연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원래 운영체제는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들이 응원해주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따라서 운영체제 업체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로의 납품과 언론 플레이가 아닌 시장에서의 평판과 다른 기술자들의 인정이다.

 

모르긴 몰라도 투입된 개발자들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오픈소스도 떳떳하게 쓰고 또 그만큼 공개하고 기여하면 된다. 게다가 하려는 일이 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픈소스를 조립하여 윈도우 프로그램이 돌아가게 하는 시도는 많았고 아직 개선의 여지도 있다. 얼마든지 긍정적 응원을 받으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체기술, 원천기술을 강조하며 애국을 하자는 무리수를 뒀다. 창피한 일임을 구성원이 몰랐을 리 없다.

 

“누구도 노(No)라고 말을 하지 않았구나. 왜?”

 

이 소동을 보며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 침묵. 지금 조직적으로 벌이는 그 일은 모양 빠지는 일이라고, 내 삶의 기준과 철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략>

 

평범한 우리는 가끔 멈춰서 물어봐야 한다. 누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그게 두려워 무슨 애를 쓰고 있나. 그렇게 애써서 결국 나는 무엇으로 변하고 있나. 호구지책이니 ‘먹고사니즘’이니 괴물이 된 우리는 구차한 핑계 뒤에 숨는다.

 

“옳은 줄은 안다. 하지만 그 사정 봐주다가 내가 옷 벗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나.” 이런 식이다.

 

오픈소스의 문화는 내가 한 이바지를 공동체가 인정하고 나에게 평판이라는 귀한 자본을 준다. 그러나 개인 중시의 합리주의가 없는 이 땅에서는 이를 믿지 못한다. 대신 남의 오픈소스를 가져다 뚜껑 덮고 납품해 버린다. 불합리하다 말하고 싶지만 여기서 밀려나면 다단계 하청 밑자락에서 다시 그 일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 것만 같다. 말도 안 되는 일은 늘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헬조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