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신경경제학의 탄생] 우리는 왜 설현의 손짓과 송중기의 눈빛에 무너지나

배세태 2016. 4. 23. 18:10

우리는 왜 설현의 손짓과 송중기의 눈빛에 무너지나

한겨레 2016.04 23(토) 정재승 KAIST 교수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5&oid=028&aid=0002315613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40936.html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11) 신경경제학의 탄생


 


왼쪽부터 설현, 송중기. 사진 씨네21 한국방송 제공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게리 마커스 교수는 인간의 뇌를 클루지(Kluge)에 비유한다. 클루지란 사전적 의미로 ‘고물이지만 애착이 가는 컴퓨터’란 뜻인데, ‘서투르고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체계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할 만큼 영리한 종족이지만, 동시에 주의 깊게 짠 계획을 순간의 쾌락이나 즐거움 때문에 내팽개칠 만큼 어리석은 존재라는 얘기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며, 우리의 뇌는 수만 년 동안 지금 당장의 생존을 최대한 추구하도록 설계된 비합리적인 컴퓨터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략>

 

‘딴생각’하느라 입는 손실만 15조

 

<중략>

 

이렇게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서 안전을 지향한 초기 인류 시절의 사고방식 위에 지금의 판단 체계가 세워졌다는 것은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이다. 세상은 ‘코어i 7-6세대’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뇌는 1만년 전 원시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안달이 나도록 디자인돼 있다. 그래서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를 계산하지는 못한다.”

 

인간 두뇌는 애물단지 컴퓨터

당장의 생존과 쾌락 좇도록 설계

자연선택은 장기이익 안 따져

1만년 전 사바나 생활 때의 유산

진화란 이전 결점 고치는 ‘땜장이’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가설로는

충동구매·이타행위 설명 못해

마케팅 분야 행동경제학 인기

뇌 접목한 신경경제학 시대로

‘인간 마음’을 주요 변수로 고려

 

경제학 가정 맞다면 상품비교에만 수십년

 

1만년은 우리의 몸이 그사이에 등장한 사물들에 적응하려고 변화하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1만년도 더 전에 우리 조상이 지닌 것과 똑같은 진화된 심리적 기제를 아직까지 지니고 있다. 이것을 ‘사바나 원칙’(Savanna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뇌는 아직도 사바나 원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세상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중략>

 

쾌락의 중추가 요동치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덜 요동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이때를 대비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비장의 무기인 설현과 송중기가 있으니까. 설현이 통신사 대리점 입구에서 손짓하고 송중기가 화장품을 쓰라고 권하면 우리의 쾌락의 중추는 여지없이 요동을 칠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는 자신이 설현 때문에 쾌락의 중추가 자극받은 것인지 제품 때문에 쾌락의 중추가 자극받은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멋진 이성이 우리의 원시 뇌를 자극하듯이 현대 소비사회에선 ‘명품 브랜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이 21세기 초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Homo economicus), 그러니까 ‘주어진 정보가 충분하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이익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알며,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두루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행동은 하지 않는 존재’로 가정해왔다.

 

그러나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중략>이미지

 

합리적인 존재만으로 가정한 20세기 주류 경제학의 틀은 당연히 재고되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이 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의사결정만을 하는 것은 아닌가? 친구를 위해 보험을 들어준다거나 타인의 삶을 위해 내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는 기부행위처럼 사회적 의사결정은 왜 일어나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방법론을 차용해, 실제로 경제적인 선택의 상황을 주고 어떻게 선택하는지 보는 학문이다.

 

1980년대 주류경제학이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치우치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일었고, 그 무렵 행동경제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주식시장이나 주택시장의 거품, 금융회사들의 파생상품 판매 등 현실 사례를 통해 인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물론 고전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애덤 스미스도 1759년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손실 회피 성향을, 1776년 <국부론>에서 과잉 확신 경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 교수는 금융시장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다룬 행동금융론의 뼈대를 세우기도 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모스 트베르스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대부로 꼽힌다. 그들은 지난 50년 동안 잘 교육받은 이성적인 인간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많이 하는지 행동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논문들을 쏟아냈다. 그들의 제자이자 동료인 리처드 탈러 교수는 경제학 이론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을 정리하고 행동경제학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경제학의 뉴턴 공식’ 풀어줄 신경경제학

 

<중략>

 

이처럼 인간은 경제학자들이 가정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자가 아니라, 때론 감정적이며(그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때론 수학적으로 꼼꼼히 따지지 않으며(그것이 어리석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때론 내 이익만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먼저 챙기기도 한다. 이런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 마케팅은 일찌감치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을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했지만, 아직 주류경제학은 아름다운 수학적 이론에 매달려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복잡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채, 지난 400년간 ‘풀 수 있는’ 간단한 시스템에 몰두해온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변수로 해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경제학의 뉴턴 공식’을 어떻게 찾으려고 할까? 아마도 그 실마리는 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신경경제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음 회에 좀더 자세히 논의해 보자.

 

▶ 정재승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크로스>(공저) 등의 책을 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영혼을 조종하는 뇌의 탐구를 통해 자연과학과 공학·인문학·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