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애줌마·영포티… 이제 '나잇값' 매기지 마세요
조선일보 2016.01.11(월) 변희원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1/2016011100051.html?outlink=facebook
- 어른 같은 아이 '애줌마'
맞벌이 늘며 조부모와 함께 생활… 어른보다 말투·행동 어른스러워
- 어려지는 어른 '영포티'
취직 늦어 부모에게 경제적 의존, 자녀와 같은 옷입고 게임도 공유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나잇값을 한다"고 한다. 아이는 아이다운 것, 어른은 어른다운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이에 '값'을 매기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애줌마'('아이'와 '아줌마'의 합성어)와 40대이지만 10대 자녀와 옷을 공유하는 '영포티(young forty)'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보다 어른스러운 '애줌마' '애저씨'
"유치원 애들이 감기에 걸려서 아주 난리가 났어, 난리가. 이를 어쩌면 좋아." 할머니 말투를 천연덕스럽게 쓰는 네 살짜리 주아의 동영상은 최근 인터넷과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주아는 '애줌마'란 별명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주아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반응은 "우리 애도 저런데…"였다. 맞벌이 부모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더 그렇다. 회사원 백성종(41)씨는 "여섯 살짜리 딸이 '바람' '복수' '애인' 같은 단어들을 불쑥불쑥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 동화가 아니라 아침드라마 줄거리였다. 아이가 장모님과 함께 TV를 보면서 무심코 배운 말"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걷거나 헛기침을 하는 남자 아이들은 '애저씨'로 불린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10대가 되면 더 성숙해진다. 또래인 아이돌 스타들이 어른과 같은 행색으로 무대에서 성적 매력을 강조하기 시작한 데서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포털사이트 네이트의 10대 게시판을 보면, 다이어트·성형·화장·연애 등에 대한 고민이 대다수이다.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인 이성진(34)씨는 "화장부터 성관계까지, 예전엔 20대 때 시작한 고민을 요즘엔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다. 애라고만 생각하면 대화가 안 된다"고 했다.
◇서른아홉은 넘어야 어른이다?
'애줌마'와 '애저씨'라고 해도 막상 커서는 어른 구실을 하기가 쉽지 않다. 민법 제4조는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한다"라고 나온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어른'은 취직과 결혼, 출산을 일단락 짓고, 가정을 형성하면 '어른'으로 인정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이 과정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거쳤다. 최근에는 어른이 되는 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있다. 어른이 되는 첫 관문인 '취직'을 20대에 통과 못 하고, 이 때문에 결혼과 출산은 더 미뤄지기 때문이다. 20대 중후반이라고 해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10대의 연장선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소비 세대로 떠오른 40대가 '영포티'로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전에는 40대가 되면, 자녀의 대학 입학식을 갔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제는 나이에 0.7을 곱해야 진짜 나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셈법에 따르면 40세의 진짜 나이는 28세. 이전 세대에서 어른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나이와 비슷하다. tvN의 토크쇼 '어쩌다 어른'이 '39세 미만 시청금지'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운 것은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이제 막 어른이 된 부모가 벌써 어른이 된 자녀를 키우면서 나타나는 현상도 있다. 주부 김선영(46)씨는 열다섯 살짜리 딸과 같은 옷을 입는다. 이들이 공유하는 옷은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을 겨냥한 브랜드에서 나온 것이다. 김선영씨는 "딸과 나의 패션 취향이 비슷하다. 얼마 전에는 딸이 수지가 발랐다는 립스틱을 갖고 싶다는데, 때마침 내가 샀다. 지금의 40대는 사고나 취향이 이전 세대의 40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다"고 했다.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은 80세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이를 각색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더 잘 알려졌다. 어렸을 때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어 어려지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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