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공유·사회적 경제外

공유경제와 나눔경제

배셰태 2015. 3. 2. 15:01

[한겨레 프리즘] 공유경제와 나눔경제

한겨레 2015.03.01(일) 음성원 기자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680226.html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①동네 사람들끼리 카풀을 시작한다. 몇몇이 모여 시간만 맞춰 이용하니, 교통비를 엔(n)분의 1로 줄일 수 있게 됐다. ②카풀을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동네 사람들끼리 손쉽게 시간을 맞춰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편리함 때문인지 카풀에 참여하는 동네 사람이 크게 늘었다. ③이제 동네 바깥으로까지 눈을 돌리게 됐다. 스마트폰 덕에 차량이 쉬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자, 동네 밖 사람들에게도 이용료를 받고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공유’란 개념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모든 행태를 공유경제라 부른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쓰고, 사물인터넷(생활 속 사물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 시대가 열렸다. 자동차와 같은 자원을 공유해 잉여를 남기지 않고 ‘풀타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경제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의미는, 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위의 가상 사례에서 든 ①, ②와 ③의 단계는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둘 모두를 똑같이 공유경제라 부른다. 여기서 혼란이 시작된다. 그래서 공유경제의 하위 개념을 하나 더 만들어봤다. ①과 ②는 ‘나눔경제’다.

 

나눔경제는 방어적이다. 성장이 지체된 사회에서 싼값에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구입하기가 쉽지 않으니, 남는 것을 나눠 쓰자는 개념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사람들은 수요자 입장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갖게 됐다. 카풀로 자동차를 나눠 써 교통비를 줄인다거나 셰어하우스로 집을 나눠 써 주거비용을 낮추는 노력 등이 그 사례다. 협력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는 품앗이 같은 개념이다.

 

반면 공유경제는 공격적이다. 공급자 위주로 절묘하게 틈새시장을 노린다. 사례의 ③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이 가진 차량으로 손님을 태우고 돈을 받는 ‘우버엑스’다. 협력보다는 잉여를 남기지 않고 자본이득을 최대화하겠다는 ‘효율성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본주의의 극단이다.

 

<중략>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으로 새로운 공유지가 대거 생겨났다. 누군가가 명확한 기준으로 적절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개인에 의해 ‘공유지의 비극생겨날 것이다.

 

법과 제도가 바뀌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돈을 벌겠다고 뛰어드는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횡행한다면 결국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무법의 도시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공유의 시대를 외면할 경우 각종 혁신을 놓치고 뒤떨어진 도시로 남을 수도 있다.

 

<중략>

 

공유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눔경제를 추구하면서도 혁신은 허용하는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제레미 리프킨은 공유경제를 다룬 <한계비용 제로 사회>란 책에서 “적절한 거버넌스와 민주적 지배구조만 갖추고 있다면 ‘공유지의 희극’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