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디지털 시대 '文字 콘텐츠'의 활로

배셰태 2014. 9. 16. 03:08

디지털 시대 '文字 콘텐츠'의 활로

조선일보 2014.09.15(월) 이철민 뉴미디어실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4/2014091402353.html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스마트 클라우드 콘퍼런스에 연사로 나온 제이슨 머코스키의 목에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마이크가 걸려 있었다. 그는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 3종을 초창기부터 개발한 사람이다. 국내 소개된 책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Burning the Page)'의 저자이기도 하다. 머코스키는 "이 마이크로 최근 5~6년간 발언을 녹음했고 어디를 가든지 고프로(GoPro) 카메라로 녹화한다"고 소개했다. 이를 자신이 클라우드 컴퓨터에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나중에라도 당시 상황과 기분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라도 그의 조언이 그리울 때면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서광(讀書狂)임에도 그는 "앞으로는 책보다 트위터·페이스북 등을 통해 사람 간에 배우는 것이 더 많아지는 세대"이고 "전자책 다음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를 계속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책을 사랑하지만, 종이 책은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저자이자 1인 미디어가 된 지금, 종이 책 소멸 자체를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다. 이미 국내서도 많은 이가 자기만을 위한 전자책을 손쉽게 발간한다.

그러나 주로 문자로 표현되던 콘텐츠가 디지털 시대로 옮아가면서 맞는 '질적(質的) 위기'는 짚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전자책은 무협 만화와 성애(性愛) 소설들이다. 미국 출판 시장에서 팔리는 많은 전자책도 이런 '에로티카(erotica)'다.

문자 콘텐츠는 이전에도 우리의 주목도에서 라디오와 영화관, TV, 각종 스포츠 경기에 계속 밀렸다. 그러나 스마트폰 스크린이라는 한 공간에서 SNS·메시징 앱, 이메일, 게임 앱 등과 경쟁하는 순간 '읽기'가 들어설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지난 6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편집국장 로버트 쉬림슬리가 "FT의 주(主) 경쟁자는 블룸버그나 월스트리트 저널이 아니라, 캔디 크러시(Candy Crush·게임 앱)"라고 말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장시간 집중해서 읽어야 할 장편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형편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내 출판업계의 생산·판매·소비 지수는 2010년 이래 학습·수험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계속 낮아졌다(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3년 동향). 영국 작가들의 이익 단체인 ALCS가 조사한 작가 2500명의 작년 중간(median) 소득은 2005년보다 29%나 떨어졌다. "모든 난해한 표현에 대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저항으로, 소설이 진짜로 죽어가고(가디언 5월 2일)"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문자 콘텐츠가 겪는 수난을 걱정하는 것은 디지털의 이기(利器)를 파괴하려는 '디지털 러다이트(Luddite)'적 발상이 아니다. 오늘날 지식인들이 쏟아내는 고급 문자 콘텐츠는 바로 디지털을 가능하게 했고 그 이후를 상상하게 하는, 사회의 중요한 지식 기반이다. 이를 살리고 육성하려는 사회적 고민이 앞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만간 수억 명이 쏟아내는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니의 '스토리텔링' 콘텐츠 홍수를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