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공유·사회적 경제外

영국인이 창조경제를 쉽게 받아들인 까닭-류준호 서울과기대 연구교수

배셰태 2014. 3. 8. 10:54

영국인이 창조경제를 쉽게 받아들인 까닭

노컷뉴스 2014.03.07(금)

 

<중략>이미지

 

영국의 창조경제는 창조산업에서 거둔 성공적 모델을 모든 산업으로 확산시키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창조경제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됐다. 영국 국민들은 창조산업에서의 생산핵심이 무엇보다 '창의성'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창조경제'(creative economic)는 1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실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나온다. 심지어 창조경제를 위해 만든 미래창조과학부조차 창조경제의 모호성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중략>

 

국민들은 창조산업에서의 생산핵심이 무엇보다 '창의성'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영국의 창조산업 육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세가지다

 

첫째, 생산의 중심이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이란 점이다. 인류에게는 기존의 아날로그 세상과는 또 다른 디지털 세상이 존재하고, 그 세상의 모든 걸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창의성은 무한대의 가치가 있는 무한자원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모든 자원은 유한성이 있고, 유한성이 클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경향을 갖고 있다. 반면 창의성은 무한자원으로 그 끝이 어딘지 모르고 특정 소수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이는 곧 보편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의 이념과 상통하는 가치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인 계급성의 타파와 직접 관련돼 있다.

셋째,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구조가 필요하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개인의 중요성은 물론 창의성이 상품화되는 전 과정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창의성은 발휘될 수도 없고 상품화의 길은 요원해진다. 용어 차이는 있겠지만 개념적 측면에서 볼 때 창조산업이 21세기 핵심 분야라는 데 이견을 달 이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마리를 토끼를 벅차게 잡아 온 우리나라가 이제는 '창의화'의 길마저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콘텐트는 그 해답을 주는 가장 좋은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