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소비시장 변화] '기호소비'는 소멸을 향해 가고, '기능소비'와 '연결소비'로 양분되다

배셰태 2013. 8. 9. 17:54

 

매스미디어 쇠퇴•••과시적 기호소비의 종언

공감의 '이야기'가 중요한 시대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공유의 시대

 

●연결에 대한 열망이 소비시장을 변화시키다

 

'시선을 받고 싶은 욕구' , '연결에 대한 열망'이라는 요인은 소비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차피 소비라는 것도 개인과 사회 간에 관계성을 확인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항상 사회와의 관계를 확인하면서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형성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취미 활동을 하고, 선거에서 투표하고,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하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얻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름 아닌 사화와의 관계성의 표상인 것입니다.

 

물질적 대상과 자신을 맞춰 나가는 것이 가능하려면, 물건이 가지고 있는 기호로서의 가치가 사회 전체에 공유될 수 있는 기반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호 가치의 공유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일원화되어 흐름으로써 성립됩니다. TV, 잡지, 신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고가 물건의 기호 가치를 높이고, 소비자는 그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소비 관련 정보를 매스미디어를 통해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시대였습니다. 매스미디어와 기호소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이젠, 소셜미디어로 매스미디어는 쇠퇴하고 정보는 비오톱으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작동을 통해 형성된 공통 인식은 순식간에 따로따로 분해되었고, 기호소비도 덩달아 쇠퇴했습니다.

 

소비가 항상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성을 확인시켜 주는 도구라고 한다면, 소비 그 자체도 인정과 접속의 표상으로 바뀌어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소비한다는 행위의 건너편에는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타자와 연결되고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요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정과 접속의 도구로서 소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정과 접속은 서로가 공명할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공명할 수 있는' 토대라는 것은 공통의 콘테스트를 의미합니다. 상품이나 정보나 서비스는 소비하는 대상으로 존재하고, 콘테스트는 그러한 소비를 포괄합니다

 

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상품은 그것을 어떻게 연출해 줄 것인가? 소비를 통해 우리는 어떤 세계와 연결되고 어떤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가?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새로운 세계인가, 아니면 그립고 따뜻한 장소인가, 아니면 투명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인가?

 

콘테스트는 '문맥'이라고 번역되는데, 이렇게 소비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기 위한 공간과 권역을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도 콘테스트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콘테스트라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접속합니다.

 

●인정과 접속의 도구로서의 소비

 

사회와의 관계는 접속과 인정이 중심이 되고, 소비사회의 이러한 커다란 지각 변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광고나 정보 유통에 관해 말을 꺼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가 연출했던 `기호소비`가 사라지는 세계에서는 이제 두 가지 방향으로 소비의 형태가 분화되고 있습니다. 소비가 본래부터 생식하고 있던 장소, 즉 심플한 '기능소비'로 돌아가는 것이 첫 번째 방향성이라면, 새로운 '연결소비'의 세계로 가는 것이 또 다른 방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쇠퇴와 더불어 기호소비는 소멸을 향해 가고, '기능소비'와 '연결소비'로 양분된 새로운 세계의 막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소비는 더 이상 물건을 구입하는 행동과 필연성을 맺을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기능'이 필요하다면 딱히 물건을 사지 않고도 빌리거나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연결'이 필요하다면 하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이어질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한다면 충분하지 않는가요. 이는 진화의 당연한 방향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