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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90%·꿈 70%를 읽어내는 뇌과학, ‘텔레파시 소통’에 도전

배셰태 2013. 4. 20. 08:08

마음 90%·꿈 70%를 읽어내는 뇌과학, ‘텔레파시 소통’에 도전

경향신문 2013l.04.19(금)

 

ㆍ뇌 활동상태로 심리·꿈 내용 분석, 초음파로 쥐꼬리 조종 성공
ㆍ미 하버드대, 감정·기억 등 뇌 기능 영역 전모 담은 ‘뇌 백과사전’ 제작 나서


기원전 15세기 무렵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투트모시스 4세는 왕자일 때 사막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꿈속에서 만난 스핑크스는 그에게 “나는 모래 속에 묻혀 있다. 괴로워 죽겠으니 모래를 파내고 나를 꺼내다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너를 이집트의 왕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잠에서 깬 왕자는 즉시 부하를 불러 꿈에서 본 곳의 모래를 치우도록 명령했다. 몇 년 후 스핑크스는 약속대로 그를 왕으로 만들어주었다. 스핑크스의 앞발 사이에 서 있는 ‘꿈의 비문’의 내용이다. 왕자는 꿈에서 본 장소를 혼자만 알고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잠을 자고 있던 왕자의 꿈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가 왕자보다 먼저 스핑크스를 구해줘 왕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뇌과학의 발전으로 꿈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일본 과학자들은 지난 5일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꿈을 읽는 기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스캔을 이용해 사람들이 꿈을 꾸는 동안 보게 되는 영상을 60%의 정확성으로 맞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교토 ATR 컴퓨터신경과학실험실의 유키야스 가미타니 교수는 BBC에 “나는 꿈을 해독하는 것이 최소한 꿈의 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가능하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며 “연구 결과가 그렇게 놀랍지는 않지만 매우 흥분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먼저 MRI 스캐너 안에서 피실험자 3명을 잠들게 한 뒤 뇌를 스캔하고 꿈에서 무엇을 봤는지 물어보는 과정을 200번 이상 되풀이했다. 이후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호텔이나 집과 같은 건물은 ‘구조’로 묶는 식으로 꿈에서 본 영상들을 비슷한 시각적 범주로 유형화했다. 그 뒤 건물, 사람, 문자 등 실험 참가자들이 꿈속에서 가장 많이 본 20가지 종류를 파악해 인터넷에서 유사한 사진을 찾아 깨어 있는 동안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뒤 꿈속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을 때 나타났던 뇌활동 변화와 비교했다. 이런 방법으로 연구진은 영상 이미지와 관련된 뇌활동의 특정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뇌 스캔을 진행하면서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이 꿈에서 무엇을 봤는지 물어보지 않고 뇌 스캔 자료를 근거로 꿈에서 본 영상을 맞힐 수 있었다.

외부자극에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의 뇌 스캔 사진. 하버드 의대의 유승식 교수는 fMRI 장치와 뇌파검사기를 이용해 쥐의 행동을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 출처: 하버드대 SPL


■ 뇌 촬영한 자기공명영상 통해 특정 패턴 알아내

연구진은 사물을 실제로 볼 때와 꿈에서 볼 때의 뇌활동 패턴이 일반적인 사물에 대해서는 60% 정도, 사람·문자·책 등 15가지 특정 사물에 대해서는 70% 정도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향후 렘(REM)수면 동안의 꿈을 연구할 계획이다. 렘수면 상태에서는 두뇌활동이 깨어 있을 때와 거의 유사해, 연구자들은 이 동안 가장 생생한 꿈을 꿀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뇌 스캔이 사람이 잠자는 동안 경험하는 감정과 냄새, 색깔,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지도 알아볼 계획이다.

이번 연구와 비슷한 것이 ‘마음을 읽는 기계’ 실험이다. 2011년 미국 버클리대 재크 갤런트 생리학 교수 연구팀은 사람의 시각 경험을 언제라도 필요할 때 영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뇌 해독기’에 관한 논문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먼저 2명의 피실험자가 집, 꽃, 고양이 등 정지 영상 1750장을 바라보는 동안 망막의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뇌의 시각피질 부위를 촬영해 컴퓨터가 뇌활동 패턴을 파악하도록 했다. 다음 단계로 앞서 만든 모델을 활용해 피실험자가 컴퓨터에 입력된 적이 없는 새로운 사진을 봤을 때 피실험자가 본 영상이 무엇인지를 컴퓨터가 알아맞히게 했다. 정확도는 영상 120장을 쓴 실험에선 92%, 1000장을 쓴 실험에선 82%를 보였다.

꿈과 마음을 읽는 기계는 모두 피의 흐름을 추적해 뇌활동 상태를 보여주는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했다.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면 그곳에 피가 몰리게 되는데, 피에 산소를 공급하는 헤모글로빈의 이동을 자기장으로 추적할 수 있어 뇌 기능과 구조를 함께 파악할 수 있는 장치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한 실험실에서는 이와 또 다른 차원의 이색적인 실험이 성공했다.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단지 마음을 이용해 쥐의 꼬리를 흔들게 한 것이다. 구조는 간단했다. 실험에서 쥐의 꼬리를 흔들기 위해서는 단지 컴퓨터 화면에서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만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뇌에 연결된 전극이 그의 두뇌 속에서 일어난 활동을 감지한다. 컴퓨터는 이를 전기신호로 바꿔 쥐의 머리에 올려놓은 초음파 기계로 전송한다. 이 기계는 다시 일련의 낮은 에너지의 초음파를 쥐의 뇌에 전달해 쥐의 운동을 관장하는 중추신경을 자극한다. 신호가 쥐의 꼬리를 조종하는 쌀알 크기의 영역에 정확히 전달되면 쥐는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실험 성공률은 94%였다. 사람이 깜빡이는 빛만 쳐다보면 쥐는 거의 언제나 몇 초 후 꼬리를 흔들었다.

이는 매우 간단한 구조이지만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뇌를 연결해 생각과 행동을 공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원초적 형태일지 모른다.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나 <엑스맨>의 인물들처럼 어떤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이나 감각기관의 사용 없이 마음을 읽고 생각을 전하는 ‘텔레파시’ 소통이 언젠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엑스맨>에서 ‘프로페서 X’로 불리는 찰스 사비에 박사(사진)는 전신이 마비됐지만 텔레파시로 인간의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다. 천재 과학자인 그는 비슷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를 모아 X맨을 결성해 그들의 능력을 인간을 위해 쓰도록 지도한다. | 출처 : 20세기폭스사


■ 행동 신경회로 연구 활발… 치매 치료 활용도 높아

쥐의 꼬리를 흔드는 것은 물론 인간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원격 명령을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텔레파시 소통이 가능하려면 그 첫 번째 단계로 누군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신경과학자들은 뇌활동의 패턴에서 사람이 보는 영상을 해독해내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읽어내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뇌와 기계를 연결해 두뇌활동으로 기계를 통제하는 기술도 마련됐다.

그렇다면 내가 머릿속에서 하는 말과 내가 느낀 감정이나 감촉, 혹은 기억을 공유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는 매우 복잡한 일이다. 사람마다 특정 기억과 언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부분이 미세하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감촉을 해독하는 뇌의 신경 단위인 뉴런은 일반적으로 서로 뇌의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정확한 지점에 위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뇌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해독하고 이를 다른 이의 뇌에 인식시키려면 두 사람의 뇌의 정보 처리가 정확히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과 쥐의 두뇌 연결 실험을 성공시킨 하버드대의 유승식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 ‘뇌 백과사전’을 완성해 뇌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신경활동과 다양한 개념 혹은 감정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그것을 개인별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별로 두뇌 백과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위한 기초는 마련돼 있다. 뇌를 스캔해 뇌의 어떤 부분이 특정 기능을 할 때 활성화하는지를 조사해 ‘기능 지도’를 만드는 시도이다. 실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4시간 정도 뇌 영상을 촬영한다. 이 동안 기술과 능력을 평가하는 수학 문제를 풀거나, 이야기를 듣고, 혹은 도박을 하거나 몸의 일부를 움직인다. DNA 표본도 제출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통해 음악을 듣거나 사교행위를 하거나 과학 혹은 수학과 같은 기술적 활동을 할 때 개인의 뇌에서 어떤 부분이 관여하는지를 알게 된다.

인간케넥톰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작업은 첫 단계로 성인 68명의 뇌를 스캔한 결과를 국제 공동 연구를 위해 공개했다.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팀 버렌 교수는 이 연구가 “어떤 신경회로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지를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 데이비드 판 에센 교수는 BBC에 “문제는 사람마다의 특징적인 능력을 주는 뇌의 신경회로를 더 많이 해독하는 것”이며 “자료를 국제 연구 공동체와 공유하는 것이 뇌과학의 빠른 진전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연구 자료 공유로 유전학 발달을 가속화한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뇌과학과 영상·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적 질환을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연구진은 기능자기공명영상을 활용해 어떤 자극이 있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발전시키면 조울증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들의 뇌 영상을 분석해 증상을 진단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뇌과학의 발달은 의도치 않게 기존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인간 행동의 심리적 측면을 뇌의 생화학적 활동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일부 뇌신경학자들의 주장과 이를 지나친 물질주의적 입장이라고 받아들이는 심리학자들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