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국민의힘의 '윤석열 내란재판과 부정선거 의혹 관련' 정치적 계산] 권력의 궤적을 읽는 자들 - 배신인가 전략인가

배셰태 2026. 2. 15. 20:29

□권력의 궤적을 읽는 자들 - 배신인가 전략인가

Jean Cummings, Political Columnist / Former Publisher, The Asia Post February 14, 2026

워싱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2월 19일 선고될 내란죄 재판 결과를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가늠하는 마지막 시험대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나는 국민의힘에 대해 매우 안타까움을 느낀다.

언론과 정치권은 권력의 향방을 감지하는 가장 예민한 촉수를 가진 집단이다. 그들은 여론이라는 표면적 파도에 일희일비하기 보다, 수면 아래 도도히 흐르는 자금의 물길, 지지율의 미세한 굴절, 은밀한 인맥의 재편, 그리고 내부 발언권에 실리는 중량감의 변화에 집중한다.

결국 이들에게 정치는 현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의 축이 이동하며 만들어내는 정교한 거대한 설계도를 읽어내는 일이다. 특히 오랜 시간 그 세계에 몸담아 온 인물일수록 공기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은 도덕적 선언보다, 생존 전략의 차원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정치권과 언론은 항상 기존에 지지하던 지도자의 생명이 언제쯤 끝나는지를 읽어낸 후 어느 시점이 되면 조용히 발을 빼면서, 가능성이 살아 있는 쪽에 미리 한 발을 걸쳐 두는 일에 탁월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유형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로 흔히 거론되는 사람이 미국의 '터커 칼슨'이다. 그는 한때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트럼프 지지층의 열렬한 호응과 후원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정치적 시간표가 종반으로 향하고, 권력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계산이 달라진다고 판단되는 순간부터는 언어의 결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노골적 지지 일변도에서 벗어나, 비판과 거리두기를 교차시키며 반대 진영과도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포지션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더 이상 단선적 진영 인사가 아니라, 스스로를 ‘중도적’ 혹은 ‘독립적’ 관찰자처럼 위치시키는 묘한 행보를 보인다. 겉으로는 균형을 유지하는 객관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종종 ‘버리는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충성의 언어가 분석의 언어로, 확신의 어조가 조건부의 어조로 바뀌는 순간, 이미 내부 계산은 끝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치 분석의 핵심은 화자의 표면적 수사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며, 진정한 단초는 발언의 내용이 아니라, 어조가 굴절되는 변곡점, 생략되거나 새롭게 삽입된 키워드, 그리고 메시지가 조준하는 대상의 변화라는 패턴 속에 숨어 있다.

특정 인물의 메시지에 균열이 생기는 지점은 단순한 심경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수면 아래 권력 지형이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선제적 신호이며, 우리와 같은 분석가들은 이 미세한 패턴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정치적 격변의 실체를 예측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치는 구호로만 움직이지도 않으며, 기류로 움직인다는 것은 오랫동안 정치를 관찰하면서 얻게 된 결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류는 언제나 가장 먼저,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의 미묘한 포지션 변화에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한 인물의 스탠스 변화는 단순한 노선 수정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입장 정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 내부 권력 구조의 재배치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감지한 무게 중심이 이미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언제나 공식 선언보다 먼저 사람들의 위치 이동으로 드러난다. 한 사람이 어디에 서느냐를 보면, 그 당의 에너지가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될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당내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인물의 스탠스의 변화는 개인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집단 권력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란 뜻이기 때문에, 그 인물을 읽는다는 것은 곧 당의 미래 방향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토록 권력의 습성을 설명하는 이유는,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수명이 이미 다했다는 냉정한 판단이 끝났으며, 이제는 과거를 딛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기류가 압도적인 것 같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분석가들에게 포착된 이 미세하지만 강렬한 언어적 패턴의 변화는, 야권의 권력 축이 이미 새로운 생존 전략을 향해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정치권은 당의 생명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아 남아야 하지 않느냐는 냉정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선거에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 모든 정치 권력은 이와 같은 생리에 따라 작동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에 감정적인 비난이나 공격을 퍼부을 이유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적인 속성이자, 부정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고 나의 예상일 뿐이지만.. 국민의힘 내부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끝까지 안고 가는 한 결코 '윤석열 딜레마'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제는 과거의 잔상을 정리하고 우리만의 새로운 동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정치적 수명이 다한 전직 대통령을 언제까지 짊어지고 갈 것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그들의 생존 원칙이야말로, 현재 당내를 압도하고 있는 기류라고 예상되는 것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전략적 회피와 소외된 목소리>

부정선거 의혹을 대하는 국민의힘의 태도 역시 이러한 '정치적 계산'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은 겉으로 "선거 공정성과 제도 개선, 투명성 강화"라는 원론적 수사를 반복하며 명분을 세우지만, 정작 이재명의 당선 과정의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유권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부정선거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부정선거론자'로 낙인찍힌 세력의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이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말은, 이들과 함께한다고 하지만 부정선거론자들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이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이제 부정선거이든 윤어게인이든 이런 구호를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오해받지 않도록 구호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말을 돌려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 기반이 위축된 근본적 원인을 더 깊이 들여다 보면, 그 배경에는 국민의힘의 부정선거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사실상 방관에 가까운 대응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인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보수층 국민들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받는 국면에서 침묵을 선택하고, 갈등의 한복판에서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을 유보한 선택이 반복되면서 지지층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그런데 이제 와서 윤어게인이나 부정선거 세력의 구호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책임을 돌리는 태도에 대해서는, 그 이전에 진심 어린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문제는 국민의힘 내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기되는 보수 국민들의 비판에 대해, 마치 이것마저 윤어게인 세력에게 분열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윤어게인이라는 구호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주장, 부정선거 의혹 제기 세력 때문에 보수 국민들이 ‘음모론 집단’처럼 비쳐져 안타깝다는 말들은 그동안 이 문제로 거리에서 싸워왔던 국민들에게는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보수 분열의 원인인 것처럼 분위기를 형성하는 방식은 책임의 방향을 바꾸는 정치적 선택에 가깝다.

물론 선거를 앞둔 정당이 서울과 부산에서 승리하기 위한 외연 확장을 위해 논란을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버리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은 알겠다.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승리를 도모하기 위한 정치권의 현실적 계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계산이 지지층을 향한 도덕적 단죄의 형식으로 비춰질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정치 분석의 세계에서, "지지층 세력들을 단절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윤어게인이라는 구호, 부정선거라는 구호가 문제다", "이런 말을 한 의도를 파악해라",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었을 뿐이다. 결코 윤어게인을 버린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주장은 논리적 파탄에 가깝다.

그 단어만 보지 말고, 전체 의도를 파악하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선거 승리를 위한 일시적 전술이었다는 변명은 '윤어게인' 세력을 실질적으로 폐기했다는 사실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구호는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 아니다. 그들의 구호는 그 세력이 투쟁하는 목적이자 존재 이유 그 자체다. 투쟁의 목적을 담은 심장을 떼어내고 행동만 하라는 것은 결국 그 움직임을 무력화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핵심 가치를 부정하면서 지지층을 버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어떤 정치 분석가의 시선으로 봐도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궤변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목적(구호)을 부정하면서 수단(행동)만 취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그 세력의 정체성을 거세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윤석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지지층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차갑게 잘라 내려는 전형적인 토사구팽의 논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발언들은, 국민의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전략이라고 결정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2월 19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죄 재판 선고를 앞두고 당 지도부가 윤어게인 세력에게 혼란을 주는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중간선거 승리 문제를 핑계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패배를 미리 확정했다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만약 재판에서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선고를 코앞에 두고 이러한 발언으로 분란을 일으킨 의도를 굳이 보수가 승리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것이 본래 정치의 더러운 실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발언이 '윤어게인' 세력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이미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층의 비판을 두고 '말을 왜곡하여 분열을 조장한다'는 식의 논리로 대응하는 것은, 믿음을 주었던 이들에게 가하는 명백한 이차 가해다.

비판 받아야 할 행보라면 마땅히 그에 합당한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최소한 국민의힘을 믿고 '윤어게인'과 '부정선거 진실 규명'을 위해 헌신했던 국민들에게는, 그들이 느낀 깊은 배신감과 울분을 쏟아낼 정당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 분노를 외면하거나 왜곡하여 오히려 다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당이 국민에게 보여줄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리는 처사다.

국민의힘의 판단은, 부정선거 문제는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한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면, 계속 매달리다가는 오히려 함께 침몰하는 ‘물귀신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또한 당의 생존이 우선이라는 현실주의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 또한 안다. 분노해 이탈하는 지지층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버렸을 때도 결국 지지층은 재결집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 끝난 카드를 붙들고 있지 말고 세력을 재정비하자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기류를 이렇게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정도는 알아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인가?>

정치는 냉혹한 계산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정당이라는 존재는 결코 수치상의 계산만으로 지탱되지 않는다.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순간은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는 결집을 만든다. 그러나 이들이 떠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믿었던 대상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찰나에 이루어진다.

배신감으로 인해 환멸을 느끼고 떠난 민심은 결코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이 투표장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그 마음을 되돌리는 데는 단순히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수차례의 정권이 바뀌는 긴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 박근혜 탄핵 당시의 상처는 보수의 재결집을 부르는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지지층에게 '반복된 배신'이라는 회복 불가능한 환멸을 안기고 있다.

이미 한 차례 겪었던 붕괴를 다시 마주한 지지자들의 피로감은 질적으로 다르며, 이는 정당을 향한 분노를 넘어 정치적 허무주의와 영구적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지자의 헌신을 소모품으로 취급한 대가는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한 것이다. 정치는 숫자로 계산하지만, 역사는 민심의 화인(火印)으로 기록된다. 국민의힘이 지우려는 '구호'는 누군가에게는 '신념'이었음을 망각한 크나큰 실책이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은 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죄 재판 선고라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굳이 이러한 지지층 분열의 분란을 자초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하고 책임 있는 대답은 이제 국민의힘이 지지자들과 역사 앞에 내놓아야 할 차례다.

출처: Jean Cummings 페이스북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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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자유일보/차명진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