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이태원 압사 사고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달라”… ‘사망자 명단’ 공개 민들레, 법적 책임은

배세태 2022. 11. 14. 20:14

“이태원은 세월호와 달라”… ‘희생자 명단’ 공개 민들레, 법적 책임은
조선일보 2022.11.14 양은경 기자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2/11/14/OAYWR36EDFCWNDOHAXJJM3BSHA/

시민언론 민들레가 14일 더탐사와의 협업으로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실명 명단./ 민들레

온라인 매체 ‘민들레’가 14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매체는 이날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목 아래 사망자 155명 전체 명단이 적힌 포스터를 게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희생자 명단 공개’를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친(親)민주당 성향 매체가 전격 공개를 감행한 것이다.

민들레는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피해자 동의 없는 명단공개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교조 명단공개 사건, ‘16억 배상’ 확정

‘명단 공개’가 문제된 대표적인 사건은 2010년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해 총 16억원의 배상 책임을 지게 된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의 사건이다. 조 전 의원 등은 법원의 공개금지 가처분에도 불구하고 홈페이지에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했고, 해당 교사들은 조 전 의원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5년 대법원은 총 16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공개한 경우 이로 인해 침해되는 (공개 대상자의) 인격적 법익과 표현행위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비교해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원고(전교조 교사)의 법적 이익이 더 우월하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한 “공적 생활에서 형성됐거나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 대상인 이상, 교원에 관한 정보라거나 정보주체가 과거에 스스로 해당 정보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거나 타인에 의해 정보주체 의사에 반하는 정보공개 행위가 이미 존재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교원의 신상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공공성이 인정되는 영역이고, 또 몇몇 교사들이 스스로 ‘전교조 소속’을 밝힌 적이 있더라도 동의 없는 공개 행위는 손해배상 대상이 된다는 취지다.

◇ “피해자가 성인, 2차 가해 우려..세월호와 달리 유족동의 필요”

이번 ‘민들레’의 명단공개 또한 이 판례에 비춰 위법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교원에 관한 정보와 같이 ‘공공성’ 이 인정되는 영역도 아니고 정보 주체가 과거에 스스로 정보를 공개한 적도 없기 때문에 정보 공개로 인한 공익보다 희생자 내지 유족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세월호 사건 당시 사망자 명단이 공개된 전례에 비춰 이번 사건 희생자도 명단공개를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갔던 학생들이 희생자인 데다, 해난사고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신원 확인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반면 이번 참사는 희생자가 성인이고, 사건 이후 희생자들에게 핼러윈 축제 참여 등에 대한 2차 가해가 있었기 때문에 유족 동의 없는 명단공개는 민법상 불법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유족이 반대하지 않으면’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유족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만 적은 것을 ‘공개’로 볼 수 있을까. 언론법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익명을 쓰더라도 전후 사정에 비춰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며 “이 같은 일반 법리에 비춰 ‘이름만 적었다’ 는 주장으로 면책되기는 어렵다. 성명을 적은 경우 동명이인의 가능성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전교조 사건과 같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로 고액의 배상을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다. 또다른 법조인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며 “사망자 명단을 공개한 이번 사건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법조인은 “전교조 사건은 소송에 앞서 법원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가처분을 받아들였고, 위반시 1일당 3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정했기 때문에 고액의 배상이 가능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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