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선우정 칼럼] 성남 대장동派의 ‘의리 없는 전쟁’■■

배세태 2022. 10. 27. 20:28

[선우정 칼럼] 성남 대장동派의 ‘의리 없는 전쟁’
조선일보 2022.10.26 선우정 논설위원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10/26/KDJ5SHIK4RAGBKKTSORHC7W7FA/

이재명 대표는 그의 유동규 발언이 이 폭풍을 몰고온 나비효과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듯하다.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말 국정감사에서 유동규씨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주장을 듣고 “이래도 괜찮은가” 싶었던 때가 있다. “제가 무슨 주군이니, 그가 무슨 핵심 측근이니 하는데 그랬다면 사장을 시켰을 겁니다. 그런데 8년 동안 안 시켰잖아요. 소규모 산하기관을 맡겼는데 사표 던지고 나가버린 다음에 대선 경선에도 전혀 나타나지도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냥 나의 측근이 아니라고 하면 됐다. 그런데 유씨의 직무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이런 사람이 측근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다음 발언이 더 심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유씨가 작년부터 이혼 문제 때문에 집안이 너무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아마 체포당할 때 자살한다고 약을 먹었다고 해요. 그걸 제가 둘러가면서 한번 들어보니까, 자살한다고…” 이 대표의 측근이 체포 직전 유씨와 장시간 통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측근이 왜 전화했는지 변명하기 위해 유씨의 사생활인 이혼과 극단적 행위를 생중계하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런데 1년 뒤인 지금 이 대표 측근이 당시 통화에서 유씨에게 휴대전화를 버리고 체포를 피할 방법을 알려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의리가 사라지면 내분이 일어난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의리를 외면했다. 1년 뒤 나비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발언의 진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유씨는 10년 이상 이 대표를 곁에서 섬겼다. 2010년 성남시시설관리공단에 들어가 위례 개발과 대장동 개발을 주도하고 수천억원의 공공 자금을 당시 이재명 시장을 위해 만들어준 사람이다. 이 대표 선거 때마다 공직을 버리고 도왔다. 이래도 측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다. 친소 관계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멀어졌다고 한때 신세진 사람의 인격과 사생활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인간에겐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의리(義理)는 아이들도 쓰는 말이지만 실은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도의(道義)와 비슷하지만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책 ‘국화와 칼’에서 일본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기리(의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설명에 난항을 거듭했다. “의리는 의무와는 다른 유형의 일련의 의무”라고 하더니 “이에 상응하는 영어를 찾을 수 없다”며 정의 내리기를 포기했다. 그의 설명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안 받아도 주는 게 의무라면, 받은 만큼 주는 게 의리다. 충과 효는 의무다. 다른 관계는 의리가 기본이다. “세상의 형식적인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란 사전적 설명도 있다. 베네딕트는 “의리만큼 힘든 일이 없다”고 했다. 순간순간 지켜야할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욕설 논란을 여러번 TV 앞에서 사과했다. 허공에 사과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욕을 한 형수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베네딕트가 말한 ‘힘든 일’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럴 때 의리가 없다고 한다. 김문기씨는 성남도개공에서 개발팀장으로 오래 일하면서 이 대표의 숙원인 대장동 사업을 도왔다. 그런데 그가 숨지자 이 대표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설사 기억에 없어도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던 분”이라고 했어야 한다. 그에겐 의리가 부족한 것이다. 때만 되면 고개를 드는 여배우 논란 역시 본질은 이 대표의 의리 문제로 돌아간다. 모든 사례에서 그는 받은 만큼 안 준 것이다.

드라마틱한 이 배신의 시대를 읽으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의리가 중요한지에 대해 꽤 공부가 된다. 일본 사무라이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말은 근세 들어 급조된 믿음이다. 직전까지 하극상과 배신의 아비규환이었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배신으로 권력을 잡았다. 배신은 상하(上下)의 역학이 변할 때 주로 일어난다. 하지만 돌출적으로 일어날 때가 더 많다. 주군이 부하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다. 오다 노부나가를 포함해 많은 무장이 그러다 허망하게 최후를 맞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015년 1월 7일 뉴잴린드 오클랜드 알버트 공원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사진=고 김문기 처장 유족 측 제공

이 대표는 그의 형수가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을 추궁하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숨질 때까지 그를 괴롭힌, 그리고 그가 괴롭힌 형에 대해선 정신 이상이라고만 생각할 뿐 그 이상 받아들일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를 비판하는 여배우의 행동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김문기씨 유족이 그를 비난하는 이유는 물론이다. “의리? 이 세계엔 없다”는 유동규씨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하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작년 그의 국정감사 발언이 지금의 폭풍을 몰고온 나비효과라는 것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모두 그가 일으킨 파도다.

깡패도 의리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의 의리가 세상의 평범한 의리와 다른 점은 이익에 따라 의리가 흔들리고, 의리가 사라졌을 때 혈투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대장동 일파의 의리는 깡패의 의리다. 먼저 의리를 내던진 사람은 누구인가. “의리 없는 전쟁”이란 야쿠자 고전 영화가 있다. 지금 벌어지는 성남 대장동파(派)의 내전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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