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김대중 칼럼] 속국으로 사느냐, 동맹으로 가느냐...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배세태 2022. 1. 18. 11:26

[김대중 칼럼] 속국으로 사느냐, 동맹으로 가느냐
조선일보 2022.01.18 김대중 칼럼니스트

https://www.chosun.com/people/kim-daejoong/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존재인가? 역사는 우리가 중국을 벗어나지도, 중국을 이기지도 못하고 몇 백년을 조공 바치며 숨죽이고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단어는 ‘속국’이고 ‘사대(事大)’였다. 지난 한 세기 가까이 한반도는 남북의 둘로 갈려 각각 다른 이념적 배경으로 중국을 대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즐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는 근자에 문재인 정권이 한중관계를 ‘속국’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심각히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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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방중한 문재인 대통령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뉴시스

중국의 시진핑은 지난 2017년 플로리다에서 미국 트럼프를 만났을 때 “코리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했다. 6·25 전쟁은 ‘중국이 승리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서 조선을 돕는다) 전쟁’이라고도 했다. 문 정권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중국의 ‘속국’론을 수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임기가 다 돼 가면서 마지막으로 중국 시진핑의 방한을 학수고대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무대로 한중 정상회담을 희망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중국과 시진핑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는 문 정권의 말기(末期) 노선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도 북중관계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거나 중국 공산당에 심취한 사대적(事大的) 접근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멸공(滅共)’ 논란은 한국 좌파정권의 사상적 경도와 우리 사회의 이념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대기업의 오너가 했다는 몇마디 말(공산당이 싫어요)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논란을 벌이게끔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야당 대통령 후보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선제공격’ 운운했다고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대든 좌파들의 반격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런 논란들 자체가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좌향 좌’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배경에 북한 못지않게 중국 공산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 정권의 친중 노선이 대북용(用)이 아니라면 우리의 역사의식을 뒤집는 접근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북한은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중국에 덜 종속적이다. 북한 지도부에는 중국 예속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서쪽에서는 신장 위구르를 아우르는 서북공정을, 티베트에는 서남공정 작업을, 그리고 동쪽에서는 고구려를 중국역사와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동북공정 작업을 벌여 왔다. 또 홍콩을 공산화하고 남중국해를 장악함으로써 이른바 중국몽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벌어지는 인종탄압 인권유린 등은 인류의 공통된 양식을 배반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이 ‘중국몽’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고려·조선) 중국의 지배 하에 살았다. 중국의 ‘속국’처럼 살았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36년 간 일본에 병탄됐다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에 이끌려 대륙을 벗어나 태평양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70여 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백 년을 한반도에 갇혀 살다가 미국의 안내로 세계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사는 것은 우리 노력과 지혜의 결산이지만 미국이 기회를 제공했음은 사실이다.

이 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서고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와 민족을 보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오늘의 지리적, 무역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우리를 속국쯤으로 인식하는 중국 쪽에 붙어 있는 한, 우리는 번영은커녕 숨을 쉴 수도 없는 세상을 맞게 된다. 이것은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의 이념적 차원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가 군사대국에 빌붙어 영토를 보존하고 몇 푼의 경제적 이득을 얻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강대국의 영향력에 힘입어 남북한을 통일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류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홀로서기가 가능하면 왜 안 하겠는가. 하지만 세계의 정세는 지금 홀로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중국을 선택하면 중국의 속국이 되고 미국을 선택하면 동맹국으로 산다. 3·9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